서울대병원, 연세의료원, 서울아산병원 등 국내 주요 대학 병원들이 인천 청라, 경기도 하남 등 수도권에 분원 설립을 본격화하고 있다. 내년 지방 선거를 앞두고 지역 표심 공략 용으로 대형 병원 유치에 적극 나선 지방자치단체들과 미래 사업 확장 기회를 모색하던 대학 병원의 이해 관계가 맞아 떨어졌다. 의료계에서는 대학 병원의 무분별한 세(勢) 확장은 지역 중소 병원의 줄도산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2일 의료계에 따르면 서울아산병원과 HDC현대산업개발이 구성한 ‘서울아산병원 컨소시엄’은 지난달 인천 경제자유구역 26만여㎡ 터에 들어설 청라의료복합타운 우선협상대상자로 최종 선정됐다. 청라국제도시 내 800병상 규모 종합병원과 의료바이오 관련 산·학·연, 상업시설 등을 조성하는 이 프로젝트는 올해 11월 인천경제청과 사업협약 이후 오는 2023년 9월 착공을 목표한다.
서울대병원이 총 5312억원을 들여 경기도 시흥 정왕동에 짓는 800병상 규모의 시흥배곧서울대병원(가칭)은 지난달 26일 입찰공고를 내고 사업자 선정 작업에 착수했다. 연세의료원이 주축이 된 연세 송도세브란스병원(가칭)은 지난 2월 첫 삽을 떴다. ‘인천시·IFEZ·연세대학교·(주)송도국제화복합단지개발’ 국제캠퍼스 제2단계 사업 협약에 따른 송도세브란스병원은 총 800병상 규모로 2026년 12월 개원이 목표다.
경기도 김포시가 추진하는 대학병원 유치사업(김포메디컬캠퍼스)에는 인하대가 참여하기로 최종 확정됐다. 경기 안산시는 지난 2월 한양대학교 에리카(ERICA)와 캠퍼스 혁신파크 부지에 종합병원 건설 추진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중앙대 병원은 경기도 광명시에 700병상 규모 분원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경기 하남시에 경희대의료원과 한화건설 컨소시움이 종합병원 설립을 추진한다.
국내 주요 대학 병원이 수도권에 눈을 돌리는 것은 사업 확장의 기회로 보기 때문이다. 서울은 부동산 가격 상승 등으로 병상 수를 늘리는 데 한계가 있지만, 수도권은 아직 여유가 있다. 수도권 인구가 늘어나면서 의료 수요도 급증했다.
광역철도로 전국의 수도권 접근성이 좋아진 것을 지렛대 삼아 서울 대형 병원 진료를 받기 원하는 비수도권 환자를 유치할 수도 있고, 인천 송도, 청라, 김포의 경우 인천 국제 공항과 가까운 이점을 내세워 외국인 환자를 선점할 수 있다. GTX 등으로 서울로 접근성이 좋아진 것도 장점이다.
내년 동시지방선거를 앞둔 지방자치단체들에게도 대학 병원 유치는 큰 호재다. 매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각 지자체들은 ‘대학 병원’ 유치를 단골 공약으로 내세운다. 병원 관계자는 “지자체 입장에서는 브랜드가 있는 상급 종합병원 분원이 설립되면 지역 의료 환경이 개선되기 때문에 매력적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했다.
대형 병원이 지역에 들어오면 지역 주민의 의료 접근성이 개선되는 것은 물론 의사 간호사 등 양질의 일자리가 늘어나 지역 경제 활성화에도 도움이 된다. 대학 병원의 경우 유관 연구 기관과 바이오 기업 등을 동반한 대형 사업으로 확대되는 경우가 많아 주변 환경 효과도 노릴 수 있다.
이 관계자는 “허가 권한을 가진 지자체가 적극적으로 병원 유치에 나서는데, 대학 병원들이 마다할 이유가 없다”며 “대학 병원에게는 지금이 병상을 늘릴 절호의 기회”라고 했다.
하지만 이런 대학 병원 수도권 분원 설립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크다. 대형 병원에 대한 환자 선호가 높은 국내 상황에서, 대학병원들이 무분별한 사업 확대에 나설 경우 지역 중소 병원이 피해를 볼 수 있고, 이는 의료전달체계의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대한의사협회 박수현 홍보이사 겸 대변인은 “대학병원들이 (수도권 분원 설립에 뛰어드는 것은) 중증환자, 희귀환자를 담당하는 상급의료기관으로서 본분을 잊고, (지역 중소 병원들이 담당하는) 경증 환자 진료에까지 나서는 것”이라고 했다. 박 대변인은 “대형 종합병원이 생기면, 주변의 의원급 및 중소병원급 의료기관들은 의료진 이탈로 인력난을 겪을 것이고, (수도권 환자 쏠림 현상을 악화시켜) 줄도산하게 될 것”이라며 “대학병원들의 이런 무분별한 확장은 의료 생태계 파괴에 따른 환자 피해로도 이어질 수 있다”고 했다.
다만, 대학병원들의 분원 설립이 국내 의료 경쟁력 강화로 이어질 것이란 목소리도 있다. 한 병원 관계자는 “대학병원 쏠림 현상이 강한 것은 경쟁력 있는 병원에서 양질의 치료를 받고 싶은 환자들의 수요가 많기 때문”이라며 “대학병원 확대는 한국 의료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