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은경 질병관리청장(중앙방역대책본부장)이 지난 14일 오전 충북 청주시 질병관리청에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50대 예방접종 사전예약 오류 개선 등과 관련한 긴급 브리핑을 마친 뒤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코로나19 예방접종대응추진단(추진단)은 오는 16일부터 다음 달 말까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약 3500만회분이 국내에 공급된다고 15일 밝혔다. 추진단에 따르면 이번 달에만 약 800만회분이 더 들어오고, 8월엔 약 2700만회분, 9월에는 4200만회분의 백신이 공급된다.

다음 달까지 들어 올 백신은 아스트라제네카(AZ), 화이자, 모더나, 얀센 등 4종이며, ‘코백스’를 통해 들여오는 아스트라제네카 83만5000회분을 제외한 나머지는 제약사 직접 구매 계약 물량이라고 추진단은 전했다.

그동안 제약사와의 ‘비밀 유지 협약’을 이유로 공급 일정을 공개하지 않았던 정부가 이날 ‘월별 일정’을 공개한 것은 다음 달 18~49세 대량 접종을 앞두고 국민들 사이에서 ‘깜깜이’ 논란이 커진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17일 정부는 7월에 백신 1000만회분이 도입된다고 밝혔지만, 7월 절반이 지난 현재까지 국내에 도입된 백신이 약 288만회분에 불과하면서 정부에 대한 불신이 커졌다.

◇ 정부, 백신 구입비 5조 보고하고 공급 일정은 ‘모르쇠’

2차 추경안 심사 자료를 보면 보건복지부가 해외 백신 도입을 위해 지금까지 받아 간 예산은 총 3조5617억원으로 나타났다. 정부는 여기에 지난 4월 24일 “추가 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힌 화이자 백신 4000만회분 구입 비용과 내년에 쓸 부스터샷 5000만회분 선급금 목적으로 1조4516억원을 2차 추경으로 더 요구했다.

2차 추경에서 요구한 1조4516억원에 지금까지 받아 간 3조5617억원을 더하면 정부는 올해와 내년 코로나19 해외 백신 총 구매비용으로 5조854억원을 쓰겠다고 계획했다는 계산이 나온다.

2021년 2차 추가경정예산 분석 보고서. /국회예산정책처

정부가 국회에 백신 구입비로만 5조원 이상을 보고했지만, 당장 다음 달 어떤 백신이 언제, 얼마나 들어오는지 국민들은 알 수 없었다. 정부는 그동안 백신이 국내에 도착하기 며칠 전에 ‘인천 공항에 모더나 백신이 들어온다’는 식으로 알려왔다. 4차 대유행으로 백신 접종에 대한 갈증이 큰 18~49세 국민 사이에서 “세금을 얼마나 냈는데, 정부는 제대로 백신 확보에 나선 것이 맞느냐”는 볼멘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 mRNA 백신 수요 폭증으로 전 세계 치열한 백신 확보전

제약·바이오업계에선 정부가 일부러 세부 일정을 공개하지 않는 게 아니라, 정부도 도입 물량을 확신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화이자와 모더나의 mRNA(메신저리보핵산) 백신 수요는 폭증한 상태다.

방역 선진국으로 꼽혔던 호주와 대만 등 주요국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속출하면서 백신 확보 전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대만에서는 반도체 대기업인 TSMC와 폭스콘이 정부를 대신해 화이자 백신 1000만회분 확보에 나섰다.

중국(시노팜 시노백) 백신을 접종했던 국가를 중심으로 mRNA 백신을 부스터샷으로 마련하려는 수요도 생겼다. 백신접종률이 세계 최고(74%)인 아랍에미리트(UAE)는 시노팜을 주로 접종했으나, 코로나19 확진세가 계속되자 화이자와 모더나를 긴급 승인했다.

외신 등에 따르면 벨기에 화이자 공장에서 생산된 백신은 창고로 향할 틈도 없이 항공편에 실려 나간다고 한다. 더욱이 화이자와 모더나가 생산하는 mRNA 방식의 백신은 전통적인 바이러스 벡터(전달체) 방식의 백신과 비교해 보관 및 관리가 쉽지 않다. 생산 과정, 공정 관리도 상대적으로 까다로울 수밖에 없다.

공급은 부족하고, 수요는 폭증한 상황에서 ‘중장기’ 계약을 체결한 한국 정부로서는 제약사에 배정된 백신을 독촉하기 힘들 것이란 추측도 있다. 마상혁 대한백신학회 부회장은 “화이자 백신은 구매 일정에 따라 일정하게 들어오는데, 모더나 백신은 그렇지 않다”며 “백신을 수조원을 들여서 구입하는데 (구매 일정을 확정하지 않은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했다. 마 부회장은 “정부가 (국내 위탁생산을 조건으로 모더나와) 불리한 계약을 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