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준수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서울대병원 제공

우울하거나 불안감, 강박감을 느끼는 사람의 상당수는 이를 단지 ‘기분 탓’이라고 막연하게 여기고 방치한다. 일상에서 이러한 기분이 지속적으로 반복되거나 생활에 불편함을 느낄 정도까지 도달한다면 이는 질병이자, 인간의 생각과 행동을 관장하는 ‘뇌(腦)’ 상태의 변화다. ‘정신질환은 뇌의 병이자, 마음의 병’이라고 말하는 의사가 있다.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권준수 교수가 그 주인공이다.

지난 8일 서울 종로구에 있는 서울대병원에서 만난 권준수 교수는 “기분이 우울하던지 불안하다는 등 겉으로 보이는 정신현상과 뇌의 변화는 동시에 일어나는 ‘동전의 앞·뒷면’과 같은 것”이라면서 “내 마음이 아프다는 것을 인지하고 조기에 적절한 치료를 한다면 정신질환은 극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권 교수가 정신질환을 뇌과학과 연계시켜 본격적으로 연구를 시작하게 된 것은 1996년 하버드대 정신과 교실에서 연수를 하면서부터다. 그는 ‘정신질환을 앓는 환자의 뇌에도 문제가 있을 것’이란 생각에 착안, 조현병 환자의 뇌를 뇌파와 뇌 자기공명영상(MRI)으로 분석했다. 이후 그는 환자 뇌파에 정보 전달에 핵심 기능을 하는 감마(γ)파에 문제가 발생했다는 사실을 세계 최초로 밝혀냈고, 국제학회에서도 발표를 했다. 그는 귀국해서도 MRI, PET 등 뇌영상술을 이용해 정신질환 기전이나 치료에 대한 연구를 이어오고 있다. 그는 뇌 영상을 이용해 정신질환자 뇌의 구조적, 기능적 이상을 밝히는 연구와 정신질환 고위험군의 예방적 치료에 기여한 바를 높이 평가받아 ‘제6회 아산의학상’을 수상한 바 있다.

한국인에게서 가장 흔하게 발병하는 정신질환은 우울증이다. 지난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우울증 유병률(병에 걸릴 확률)은 36.8%로 1위다. 우울증 환자들은 뇌 기능도 우울하다. 권 교수는 “우울증 환자들의 양전자단층촬영(FDG-PET)을 보면 뇌전반에 걸쳐 포도당 대사가 감소되어 있다”면서 “뇌도 우울한 상태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조현병 환자의 경우에는 전두엽 기능이 감소돼 있다. 그는 “뇌MRI로 조현병 환자의 각 부위 용적을 측정해보면 측두엽, 전두엽, 해마, 편도 등이 정상인에 비해 감소되어 있다”고 했다.

한국은 OECD 회원국 중 자살률도 1위다. 보건복지부와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이 발간한 ‘2021 자살예방백서’에 따르면 지난 2019년 우리나라 자살률은 인구 10만명 당 26.9명으로 전년 대비 0.2명 증가했다. OECD 회원국 평균 자살률보다 2배 이상 높다. 우울증은 자살과 깊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울증 환자는 일반인보다 자살 위험이 약 4배 높다. 권 교수는 “자살 시도자의 80% 이상이 우울증, 조현병이 20%, 나머지가 그 외의 정신적인 문제로 인한 것으로 볼 수 있다”면서 “극단적 선택을 막기 위해서는 조기에 적절한 치료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권준수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가 조선비즈 기자와 만나 인터뷰를 하고 있다. /장윤서 기자

권 교수는 강박증과 조현병 치료의 최고 권위자다. 지난 1998년에는 국내에서 최초로 강박증클리닉을 개설했다. 많은 사람이 강박증을 단순한 성격 문제로 가볍게 여긴다. 그는 강박증을 ‘뇌의 딸꾹질’이라고 비유한다. 강박증이 생기면 의지와 상관없이 불안을 느끼고, 그 불안을 없애기 위해 특정 행동을 반복한다. 손톱을 자주 뜯거나, 손을 자주 씻기, 또는 하루에도 몇 번씩 샤워하는 것도 대표적이다. 그는 “내가 나를 피곤하게 하는 것이 쉽게 말해 바로 강박증이다”라고 정의했다.

권 교수는 2011년에는 ‘정신분열병’이라는 병명을 ‘조현병(調絃病·현악기의 줄을 고르다)’으로 바꾸는데 기여한 인물이다. 정신의 부조화를 현악기의 줄을 맞추듯 치료하면 정상생활이 가능함을 알리고자 해서 조현병이라 명명했다. 권 교수는 “현악기의 줄이 적절한 음을 내기 위해서는 조율이 잘 돼야 한다”면서 “우리의 뇌도 적절한 사고나 감정을 가지기 위해 신경세포 연결이 적절해야 한다는 상징적 의미에서 명칭을 바꾼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신질환은 치료가 어렵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조기에 치료한다면 완치가 될 수도 있을까. 하지만 당뇨 등 다른 질환과 마찬가지로 정신질환도 늦게 발견돼 병원에 오거나, 치료 도중 약을 끊어 재발하는 경우 치료가 더 어려워지는 것이 현실이다. 결국 조기 발견 및 치료가 최선의 치료법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권 교수는 “현대 의학은 4P를 중요하게 본다”면서 “정신질환도 가장 최선의 치료는 ‘예방’이며, 일찍 발견해 치료하면 얼마든 정상적 사회생활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정신질환 전 단계에 있는 ‘고위험군’을 찾아내 발병 전 미리 예방 치료를 하는 것도 중요 과제”라고 덧붙였다. 여기서 4P란 ‘Prediction(예측), Prevention(예방), Precision(정밀), Participatory(참여)’를 말한다.

우리 사회에서 정신질환에 대한 편견은 여전히 존재한다. 권 교수는 “과거보다는 많이 좋아졌다”면서도 “아직도 병원을 찾기를 꺼리는 이유 중 하나가 사회에서 낙오자가 될까 우려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정신질환을 앓는데도 병원을 방문하는 사람은 약 22%에 불과하다”면서 “정신질환은 특별한 사람이 걸리는 것이 아니고 누구나 걸릴 수 있는 뇌의 질환이라는 점을 받아들이는 것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1년간 8명 중 1명은 정신질환이 걸렸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됨에 따라 정신적으로 고통받는 사람도 많아졌다. 그는 ‘코로나 블루’를 이겨내기 위한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권 교수는 “이러한 시기일수록 규칙적인 생활, 운동 등을 지속적으로 해야 한다”면서 “조급한 마음을 비우고, 복잡한 생활을 잠시 쉬어간다고 생각하고 책도 읽고 자신을 돌아보기도 하면서 자신만의 의미 있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