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용 메디데이터코리아 대표. /메디데이터 제공

“디지털로 전환된 임상시험 환경이 없었다면 빠른 기간 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개발이 이뤄질 수 없었을 것입니다.”

홍성용 메디데이터코리아 대표는 최근 서울 강남에 있는 메디데이터 본사에서 조선비즈와 인터뷰를 갖고 “모더나, 존슨앤드존슨 자회사 얀센, 화이자 등 글로벌 제약사들이 코로나19 백신 개발을 위한 대규모 임상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비대면’ 임상 방식을 도입했기 때문이다”이라면서 이렇게 말했다.

1999년 설립된 메디데이터는 다쏘시스템 자회사이자 생명과학 임상연구를 위한 클라우드 기반 솔루션을 제공하는 미국계 글로벌 기업이다. 미국 뉴욕에 본사를 두고 있으며 한국, 일본, 영국을 비롯한 7개 국가에 16개 지사를 보유하고 있다. 제약사와 바이오테크 기업, 임상시험수탁기관(CRO), 의료기관을 포함한 전 세계 1700개 고객에게 스마트 치료법 개발 및 상용화를 위한 임상시험 특화 클라우드 기반 솔루션을 제공한다.

코로나19 팬데믹(감염병 대유행)은 백신 등 신약개발을 위한 임상시험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한국뿐 아니라 대부분의 국가에서 임상시험 참여 환자 혹은 대상자 방문 감소로 임상 진행에 어려움을 겪었다. 국가 간, 지역 간 이동 제한으로 CRA(임상시험모니터요원, Clinical research associate)의 현장 모니터링마저 어려워져, 결과적으로 시험기관 내 임상 데이터 품질 관리에 큰 위협이 됐다.

이런 여건 속에서 대안으로 임상 정보기술(IT) 솔루션의 필요성이 커졌다. 실제 미국 식품의약국(FDA)과 유럽의약품청(EMA) 등 글로벌 규제기관은 임상환경을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 임상 IT 솔루션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것을 권고하는 가이드라인도 발표했다. 메디데이터 클리니컬 클라우드도 이러한 임상 IT 솔루션의 대표적 예다. 이 솔루션은 기업들의 임상시험을 디자인하고 종결하기까지 필요한 모든 과정을 지원한다. 신약 후보의 임상시험 계획부터, 설계, 수행관리, 분석, 보고까지 임상시험 전 과정(end-to-end)의 시간과 비용을 절감하고, 데이터 품질을 개선하는 역할을 돕는다. 홍 대표는 “기본적인 데이터 수집, 관리 솔루션을 넘어서 메디데이터 솔루션들을 시장에 접목하면 진정한 디지털 임상시험을 현실화할 수 있다”고 힘줘 말했다.

그는 코로나19로 제약·바이오 업계 임상시험 환경에 자리 잡은 주요 변화 중 하나로 임상 IT 솔루션 도입 가속화를 꼽았다. 메디데이터가 18만2227개 시험기관을 대상으로 한 분석 자료에 따르면 코로나19 팬데믹 초반인 지난해 4월엔 전년 같은 기간보다 임상시험 참여 대상자수가 74% 감소한 것으로 조사됐다. 홍 대표는 “코로나19 감염자의 급증으로 의료 시스템이 일시 마비돼 임상 개시가 지연된 경우가 많다”면서 “임상에 참여할 수 있는 환자 또는 임상참여자가 급격하게 준 것”이라고 설명했다.

메디데이터는 올해 4월 기준으로 전 세계 186개의 제약, 바이오, 의료기기 관련 업체들이 메디데이터 임상 IT 솔루션 플랫폼을 활용해 전 세계 73개 국가에서 355개의 코로나 관련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특히 지난해 회사는 미국 모더나 코로나19 백신(mRNA-1273) 개발 과정에도 참여했다. 메디데이터 통합 임상시험 플랫폼이 모더나 백신 개발 과정에서 필요한 임상시험 및 연구 전반에 활용된 것이다. 모더나는 임상 연구 효율화와 가속화를 돕기 위해 메디데이터 레이브 플랫폼 내 ▲전자 자료 수집 ▲eCOA(전자 임상 결과 평가) ▲CSA(위해성 기반 모니터링 솔루션) 등 여러 임상 솔루션을 통합적으로 활용했다.

위기는 곧 기회였다. 코로나19 속 비대면 임상 수요가 늘면서, 메디데이터에는 국내 업체들의 협업 문의가 많아졌다. 최근에는 국내 바이오기업 제넥신도 코로나19 백신 임상 1·2상에서 메디데이터의 전자동의서를 활용했다. 회사는 현재 국내에서만 약 145개 제약·바이오 기업과 협업 중이다. 국내 바이오 업체인 셀트리온, 티움바이오, 플랫바이오, SCM생명과학 등도 메디데이터와 파트너십을 맺었다.

홍 대표는 “제약·바이오 기업들은 대체로 보수적이기 때문에 IT 솔루션을 활용한다는 것에 대해서도 우려가 있었고, 임상시험에서의 디지털 전환에 대한 수요가 지금의 5분의 1 수준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코로나19 확산 초기에는 임상이 많이 중단됐고 밀리기도 했지만, 지난해 말부터 밀렸던 임상이 재개되며 체감할만한 성장을 할 수 있었다”며 “한국이나 해외에서 진행되는 코로나19 임상은 대부분 메디데이터 솔루션을 사용하고 있다”고 했다. 코로나19 이후 디지털 솔루션 도입은 국내에서 더욱 확대될 것으로 홍 대표는 내다봤다. 홍 대표는 “비대면으로 임상시험을 진행할 경우, 병원으로 대상자가 방문하지 않아도 증상 확인 등이 가능하기 때문에 임상시험 대상자 등록 속도를 기존의 3분의 1 정도로 단축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고도 했다.

모바일로 증상보고를 진행하는 모습. /메디데이터 제공

회사는 빅데이터와 인공지능(AI)을 활용해 임상시험의 전 과정을 지원하는 ‘에이콘 AI 솔루션’도 보유했다. 에이콘 AI는 유동적인 데이터 활용을 통해 신약 연구개발에서부터 실제 상용화까지 신약의 전체 사이클에 걸친 주요 의사결정 과정에서 실행 가능한 통찰을 끌어내도록 고안됐다. 일례로 항암제를 개발하는 웰마커바이오는 글로벌 1상 시험을 직전에 둔 대장암 치료제(WM-S1)의 시험 기관 선정 및 데이터 관리 최적화를 위해 메디데이터 시험기관 적합성 평가 솔루션 ‘레이브 스터디 피저빌리티(Rave Study Feasibility)’와 통합데이터 솔루션 ‘레이브 EDC(Rave EDC)’를 도입했다. 홍 대표는 “임상 비용을 줄이고 신약 생산 기간을 단축하기 위해서 에이콘 AI 솔루션이 큰 도움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코로나19 속에서 ‘K바이오’는 주목받았다. 하지만 아직 ‘임상 분야’에 있어서는 갈 길이 멀다. 홍 대표는 “신약 개발 및 허가를 앞당기기 위해서는 전임상 및 임상 전반에 대한 전략을 사전에 이해하고 짜는 것도 중요하다”면서 “혁신 ‘블록버스터’ 의약품 개발 성공을 위한 지속적 투자에 연구뿐 아니라 ‘임상 역량’을 키우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신약 후보 개발 과정에서 전임상부터 임상 3상까지 전체적으로 볼 수 있는 통찰, 정부의 전폭적 지원이 뒷받침된다면 ‘K바이오’ 성장이 가속화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홍 대표는 “한국은 우수 의료진과 의료 인프라로 인해 좋은 임상 환경을 갖추고 있지만, 이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2017년에는 서울에서 가장 많은 임상시험이 이뤄졌으나, 현재는 전 세계 임상시험 점유율 순위가 많이 떨어졌다”고 지적했다. 그는 “국내에서도 서울뿐 아니라 지역 등 임상 거점 병원을 확대하고, 임상 활성화가 필요하다”면서 “국내 임상업계가 발전할 수 있도록, 임상 환경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 원격 임상 및 인공지능 기반 솔루션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