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백신 제조기업 A사는 최근 원료 수급 문제로 고민에 빠졌다. 주요 원료인 QS-21의 수요가 올해 들어 100배쯤 늘면서 수급에 난항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전만 해도 해당 원료를 사용하는 백신 생산량은 연간 2000만회분이 채 되지 않아 공급에 여유가 있었지만 오는 3분기 출시를 예정하고 있는 노바백스 백신에 QS-21이 들어가게 되면서 수요가 20억회분으로 급격히 뛰었다.

원료 수요가 늘어나자 QS-21를 글로벌 시장에 독점 공급하고 있는 칠레 기업 데저트킹인터내셔널(DKI)은 최근 납품처 등에 예전 가격으로는 원료를 줄 수 없고, 소량 주문도 받지 않겠다고 통보했다고 한다. A사 관계자는 “지난해는 이맘때 쯤 공급 계약을 마쳤지만, 올해는 아직 협상 중에 있다”라며 ”돈을 이전에 비해 2배 이상 줄 각오도 하고 있으나, 수요가 늘어 적기에 물량을 받을 수 있을지 걱정이 된다”라고 했다.

그래픽=송윤혜

◇ 코로나19에 수요 100배 증가한 QS-21, GSK에 생산 기술 특허

1일 바이오업계와 외신에 따르면 노바백스 백신에는 효능을 높여주는 면역증강제 ‘매트릭스M’이 첨가된다. QS-21은 이 매트릭스M의 주성분이다. 중남미 안데스 산맥에서 자라는 ‘퀼라야 사포나리아(QS·Quillaja Saponaria)’라는 나무의 껍질에서 남반구의 봄인 매년 9~12월에 추출된다. DKI는 QS를 가지고 QS-21로 가공해 백신 제조업체에 공급하고 있다. A사 관계자는 “GSK가 QS-21 전체 수요의 95%를 차지하고 있다”고 했다.

원료 추출부터 가공, 공급은 DKI가 장악하고 있지만, 공급 사슬의 정점에는 영국 대형 제약사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이 존재한다. QS-21의 가공 기술 특허를 GSK가 보유하고 있고, DKI는 GSK의 외부 생산 공장 정도로 여겨지고 있는 것이다.

QS 추출물은 원래 치약과 탄산음료 등에 첨가돼 거품을 내는 용도로 쓰였지만, 지난 2017년 GSK가 추출물 중 한 종류인 QS-21을 면역증강제로 응용하면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기존 제품과 비교해 효능이 2배 이상 높아진 GSK의 대상포진 백신 ‘싱그릭스(shingrix)’에 이 QS-21이 들어간다고 알려지면서 다른 백신의 원료로도 수요가 발생했다.

의약전문매체 피어스파마(Fierce Pharma)에 따르면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 기준 GSK의 연간 싱그릭스 최대 생산 능력은 1000만~2000만회분(high-teen millions of doses)으로 추정됐다. 때문에 QS-21 수요도 당시엔 그정도 수준일 것이라고 알려졌다. 하지만 코로나19 백신인 노바백스에도 QS-21이 쓰이게 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코로나19 백신은 연간 수십억명을 접종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QS-21의 수요 역시 크게 늘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스탠리 에르크 노바백스 최고경영자(CEO)는 직접 DKI에 연락해 “QS-21의 생산을 100배 늘려 공급해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노바백스 백신의 매출 중 GSK의 몫이 얼마인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업계는 백신의 주요 재료인 만큼 적지 않은 비중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 언론매체 애틀랜틱에 따르면 QS-21 1g의 가격은 10만달러(약 1억1100만원) 이상이고, 백신 1회분에는 5달러(약 5500원), 50㎍(마이크로그램・0.05㎎)의 QS-21이 들어간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싱그릭스 백신 1회분에도 QS-21가 50㎍이 들어간다고 설명한다. 그렇게 본다면 역시 백신 1회분 당 5달러의 수익이 발생하고, 이 수익은 GSK와 DKI가 가져가게 된다.

칠레 안데스산맥에서 자라는 QS 나무. /위키
칠레 안데스산맥에서 자라는 QS 나무. /위키
칠레 안데스산맥에서 자라는 QS 나무. /위키
칠레 안데스산맥에서 자라는 QS 나무 숲. /위키

◇ 까다로운 생산·통제된 공급·늘어나는 수요에 물량 부족 우려

2000년대에 들어 칠레 숲의 11%가 개간됐고, 이에 따라 QS-21을 뽑아낼 수 있는 QS 나무도 귀해졌다는 게 애틀랜틱의 보도 내용이다. 칠레 정부는 현재 QS 나무를 벨 경우 별도 허가를 받도록 규정하는 한편, 나무 한 그루당 베어낼 수 있는 양을 전체의 35%까지로 제한하고 있다. 베어낸 부분이 100%로 다시 재생되면 또 35%를 자를 수 있다.

나무 수량이 줄어들었음에도 DKI는 현재 시장 수요를 감당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벌목 허가와 벌목 비중 제한 등 까다로운 공급 방식 탓에 언제라도 QS-21의 공급 차질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특히 코로나19 백신용으로 개발하고 있는 여러 합성항원 백신 가운데 절반은 면역증강제로서의 QS-21가 필요한 상황이고, 노바백스 이후 비슷한 방식이 백신들이 줄줄이 출시를 예고하고 있어 수요 역시 크게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성백린 백신실용화기술개발사업단장(연세대 의과대학 교수)은 “QS-21을 사용해 백신을 개발하려면 공급권을 가진 GSK에 (공급을) 요청해야만 한다”며 “(독점 구조는) 불안한 공급을 우려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바이오 업계 관계자는 “QS-21은 미생물 배양으로 대량 생산할 수 없고 오직 한정된 식물에서만 추출해야 하기 때문에 공급 불안이 생길 수 있다”며 ”QS-21의 수급 상황을 정부가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정부는 노바백스 백신의 국내 생산을 맡은 SK바이오사이언스가 원활하게 백신을 생산할 수 있도록 원료·부자재 17개 품목의 수급 상황을 살펴보고, 수급 문제가 발생할 경우 공급업체와 협상해 해결해 주고 있다. 다만 현재 SK바이오사이언스는 QS-21이 들어간 면역보조제 매트릭스M을 직접 생산하지 않고 있어 정부 관리망에서 QS-21는 빠져있는 상황이다. 정부 모니터링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노바백스 백신의 위탁생산을 맡은 또 다른 국가인 인도 또한 QS-21 수급 불안을 우려하고 있다. 지난 19일(현지시각) 현지 매체 ‘머니컨트롤(Moneycontrol)’은 “노바백스 백신 생산은 인도의 코로나19 대응에 중요하다”며 “(하지만) 노바백스 백신에 들어가는 매트릭스M 등 면역증강제 대부분은 특허가 걸려 있고, 공급도 엄격히 통제돼 있다”고 했다. 이어 “게다가 미국은 자국 기업의 생산을 위해 백신 원료 수출을 규제했다”며 “이 규제가 (위탁생산) 기업들의 (코로나19 대응) 노력을 방해하고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