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전쟁이 중동 석유 카르텔에 과도하게 의존해 온 글로벌 에너지 공급망을 재편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지난달 27일(현지 시각) 프랑스 서부 브레스트의 해양정보·협력·감시센터(MICA)에서 한 관계자가 화면에 표시된 호르무즈 해협 내 선박 위치를 가리키고 있다. / AFP=연합

12일(현지 시각) 미국 CNN은 "이번 전쟁은 세계가 에너지 공급망을 더욱 강화하고 다변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할 것"이라며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축소되거나 해체될 가능성도 있으며, 이는 석유와 가스 가격을 낮추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보도했다.

이란 전쟁 발발 이후 글로벌 석유 및 천연가스 수송량의 약 20%가 지나는 호르무즈 해협은 두 달 넘게 봉쇄 상태다. 이란이 기뢰와 드론, 고속정을 동원해 해협을 지나는 유조선을 위협했기 때문이다. 이에 원유 수급에 차질이 발생했고, 중동산 원유 의존도가 높은 아시아와 유럽 시장은 큰 타격을 입었다.

그러나 CNN은 이번 사태가 오히려 글로벌 에너지 공급망의 구조적 취약성을 드러내는 계기가 됐고, 장기적으로 긍정적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분석했다. 특정 해협 하나가 세계 경제의 병목 지점이 되는 상황을 해소하고, 이란이 세계 원유 시장을 좌우할 수 있는 위험을 줄이는 방향으로 공급망 재편이 이뤄질 수 있다는 것이다.

가장 유력한 시나리오는 중동 국가들이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UAE)를 경유하는 석유·가스 파이프라인을 건설해 호르무즈 해협을 우회하는 방안을 추진하는 것이다. 미국 자산운용사 인프라스트럭처 캐피털 어드바이저스의 제이 해트필드는 "이 국가들은 어리석지 않다. 앞으로 파이프라인을 개발하고 운송 능력을 대폭 확대할 것"이라며 "누구도 다시는 미래를 호르무즈 해협에 걸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전쟁이 장기적으로 에너지 공급을 더 안정적이고 저렴하게 만드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글로벌 투자은행 베어드의 투자 전략가 로스 메이필드는 "이 전쟁이 없었다면 이런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다"며 "보통 충격적이고 예상치 못한 외부 사건이 있어야 변화의 필요성이 강화된다"고 말했다.

중동 에너지 의존도가 낮아질 경우 미국이 상대적으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천연가스는 현재 세계 전력 생산의 핵심 에너지원인데, 미국은 막대한 천연가스 매장량과 확대된 수출 능력을 보유하고 있어서다. 여기에 OPEC 내 주요 산유국인 UAE가 이달부터 탈퇴 절차에 들어가면서 OPEC의 시장 지배력도 흔들리고 있다.

자산운용사 토터스 캐피털의 선임 포트폴리오 매니저 롭 서멀은 "OPEC 의존도를 줄이고 미국 같은 더 신뢰할 수 있는 공급처로 생산을 다변화하면 세계 에너지 안보가 개선되고 가격 안정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미 컨설팅업체 RSM의 수석 이코노미스트 조 브루수엘라는 "일시적인 경제 혼란이 있더라도 (전쟁) 이후 항행의 자유가 회복되고 석유·천연가스·정제연료 공급이 원활해지며 카르텔이 붕괴된다면, 결국 긍정적인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며 "이런 변화는 보통 10~20년이 지나야 드러난다. 전쟁의 안개 속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실제 글로벌 공급망이 외부 충격을 계기로 재편된 사례는 여러 차례 있었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러시아산 천연가스에 의존하던 유럽은 공급망을 다변화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 역시 글로벌 원자재 조달 구조에 대규모 변화를 불러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