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1월 취임 이후 '마약과의 전쟁'을 선언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정작 마약 사범들에게는 사면권을 남용하는 모순적 행태를 보이고 있다고 워싱턴포스트(WP)가 지적했다.
8일(현지 시각) WP는 트럼프 대통령이 두 번째 임기 시작 후 마약 관련 범죄자 최소 10명을 사면하거나 감형했으며, 첫 번째 임기 동안에도 4년간 약 90명의 마약 사범을 사면하거나 형을 줄여준 것으로 분석됐다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월 취임 직후, 마약 거래와 자금 세탁 혐의로 종신형을 선고받은 온라인 암시장 '실크로드'의 창립자 로스 울브리히트를 사면했다. 이어 5월에는 시카고 지역 최대 갱 조직의 두목 래리 후버와 볼티모어의 마약왕 가넷 길버트 스미스 등에게도 사면을 단행했다.
지난 2일에는 마약 밀수 혐의로 복역 중이던 후안 올란도 에르난데스 전 온두라스 대통령을 사면해 논란이 됐다. 같은 날 트럼프 대통령은 베네수엘라를 통한 마약 유입을 차단하기 위해 "육지 공습을 곧 시작할 것"이라며 사실상 '마약과의 전쟁'을 선언했는데, 역설적으로 그와 동시에 마약 사범 사면을 감행한 셈이다.
이 같은 모순적 행태를 두고 야당은 즉각 비판에 나섰다. 민주당 소속 팀 케인 상원의원(버지니아)은 상원 본회의에서 울브리히트와 에르난데스를 언급하며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으로 유입되는 마약을 막기 위한 조치를 취하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이런 결정이 어떻게 국민을 마약 위험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겠느냐"고 비판했다.
공화당 내부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공화당 톰 틸리스 상원의원(노스캐롤라이나)은 지난 3일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에르난데스 사면에 대해 "끔찍한 메시지"라며 "한쪽에서는 마약 밀매업자 때문에 베네수엘라 침공까지 고려해야 한다고 하면서, 다른 한쪽에서는 그런 인물을 풀어줘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미 법무부에서 사면 업무 책임자로 일하다 트럼프 대통령에 의해 해고된 리즈 오이어 변호사는 최근 일어난 마약사범 사면에 대해 "전통적인 사면 심사 체계가 약화되고, 그 자리를 돈과 인맥, 정치적 영향력에 좌우되는 절차가 대신하게 되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비판했다.
비판이 이어지자 백악관은 트럼프 대통령이 단지 헌법이 부여한 권한을 행사했을 뿐이라고 반박했다. 애비게일 잭슨 백악관 대변인은 "비판받아야 할 사면은 폭력범, 아동 살해범, 대량 살인범에게까지 사면과 감형을 제공한 '오토펜 대통령'의 사면뿐"이라며 오히려 조 바이든 전 대통령을 비판했다.
WP는 트럼프 대통령이 대통령에게 주어진 가장 강력한 권한 중 하나인 사면권을 첫 임기 때보다 올해 훨씬 더 적극적으로 행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2021년 1월 6일 미 의회 난입 사건의 피고인 약 1500명을 전원에 가깝게 사면했으며, 최근에는 뇌물·자금세탁·공모 혐의로 기소된 헨리 쿠엘라 하원의원도 사면했다. 첫 임기 동안 약 230명에게 사면을 허가한 것과 비교하면, 2기의 사면 규모는 거의 7배에 달한다.
케이토 연구소의 마약 정책 전문가 제프리 싱어는 트럼프 대통령이 마약 정책에서 상반된 행동을 보인 것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고 평가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에는 플로리다의 오락용 마리화나 합법화 투표안을 지지했지만, 지난달에는 대마초의 한 형태인 대마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는 법안에 서명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