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1월 치러질 미국 대통령 선거의 최대 분수령이 될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첫 TV토론이 동부 시각으로 10일 저녁 10시 45분(한국 시각 11시 45분)에 끝났다. 이날 오후 9시에 대선 최대 격전지인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 국립헌법센터에서 시작된 토론은 두 번의 중간광고를 거쳐 예정된 90분을 넘겨 끝났다.

해리스와 트럼프는 미국 경제, 낙태권, 가스 시추, 이민 정책은 물론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전쟁, 이스라엘과 하마스 전쟁과 같은 외교 문제를 놓고 격돌했다. 이 외에도 해리스의 인종, 북한, 2021년 1월 6일 국회의사당 습격 사건을 놓고 논쟁을 벌였다.

ABC 대선 토론회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왼쪽)과 카말라 해리스 부통령이 대결하는 모습. / UPI 연합뉴스

해리스는 자신이 중산층 출신이라는 점을 재차 언급하며 자신이 미국 경제를 위한 적임자임을, 트럼프는 미국을 과거로 되돌릴 인물임을 강조했다. 또한 트럼프가 자신을 조 바이든 대통령과 동일시하려 하자 “나는 조 바이든이 아니다”라며 분리를 시도하는 한편 “새 시대를 열자(Turn the page)”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마무리 발언에서 “우리는 지금 두 가지 매우 다른 비전을 듣고 있다. 하나는 미래에 초점을 맞춘 것이고, 다른 하나는 과거에 초점을 맞춘 것”이라며 “우리는 돌아가지 않을 것(We are not going back)”이라고 했다.

트럼프는 토론 내내 해리스를 바이든 대통령과 연결 지으려 애썼다. 트럼프는 “그녀는 3년 6개월 동안 거기에 있었다”, “바이든 행정부가 인플레이션을 만들었다”, “해리스는 바이든 행정부 정책을 모방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트럼프는 마무리 발언에서도 바이든 대통령과 해리스를 “우리나라 역사상 최악의 대통령, 최악의 부통령”이라며 토론을 마무리했다.

◇ 낙태 문제 놓고 서로 향해 “거짓말 한다” 격돌

이날 토론은 경제 문제로 시작했다. 사회자는 해리스에게 ‘미국 경제가 4년 전보다 나아졌다고 생각하냐’고 질문을 던졌다. 이에 대해 해리스는 자신의 핵심 정책인 ‘기회 경제’를 언급하며 자신이 대통령이 될 경우 주택을 더 저렴하게 만들고, 신생 기업이 활성화할 수 있도록 5만 달러의 세금 공제를 제공할 계획이 있다”고 강조했다.

이번 대선의 최대 쟁점인 낙태 문제를 놓고 이날 격론이 펼쳐졌다. 해리스는 “자기 몸에 대한 결정을 내릴 자유가 정부에 의해 결정돼서는 안 된다”며 “트럼프가 재선되면 미국 전역에서 낙태를 금지하는 법안에 서명할 것”이라고 했다. 또한 해리스는 트럼프가 낙태 합법화를 가져왔던 1973년 ‘로 대 웨이드’ 판결을 뒤집은 판결을 내린 대법관 중 3명을 임명한 인물이라는 점을 상기시켰다.

ABC 대선 토론회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왼쪽)과 카말라 해리스 부통령이 대결하는 모습. / AP 연합뉴스

하지만 트럼프는 “해리스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 나는 낙태를 금지한 적이 없다”며 “낙태 금지법에 서명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이어 “민주당 소속 정치인들은 과거 신생아가 출산한 이후에 아기를 죽일 것이라고 말했다”며 민주당의 낙태 정책을 비판했다. 또한 “대부분의 법학자가 낙태가 주 차원에서 규제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했다”며 “연방대법원이 로 대 웨이드 판결을 뒤집은 것은 각 주가 생식권을 규제하는 것이 옳기 때문”이라고 했다. 트럼프는 낙태권을 언급하다가 갑자기 학자금 대출 공약을 끌어와서 “바이든 대통령이 그랬든 해리스도 낙태권 공약을 지키지 못할 것”이라고 화제 전환을 시도했다.

이에 해리스 역시 “여러분에게 (토론에서) 거짓말을 많이 듣게 될 것이라고 했는데 놀라운 사실이 아니다”라며 “트럼프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트럼프가 다시 선출되면 전국적인 낙태 금지법에 서명할 것”이라고 했다.

해리스가 셰일가스를 시추하는 수압 파쇄법인 ‘프래킹’(fracking)에 대한 금지를 주장했다 최근 입장을 바꿨다는 것도 토론의 중심에 섰다. 해리스는 과거 환경오염을 이유로 프래킹에 반대했으나, 이제는 프래킹에 찬성하는 입장이다. 사회자는 이날 해리스에게 프래킹에 대해 입장을 바꾼 이유를 물었다. 이에 해리스는 “내 가치관은 변하지 않았다”며 “나는 부통령으로 프래킹을 금지한 적이 없다”고 했다. 이어 자신이 조 바이든 행정부가 프래킹 문제가 포함된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통과시킬 때 상원 의장이었고, 캐스팅 보트를 행사했음을 강조했다. 하지만 트럼프는 “해리스는 12년 동안 프래킹에 반대했다”며 “해리스가 선거에서 이기면 펜실베이니아의 프래킹은 첫날에 끝날 것”이라고 했다.

◇ ‘우크라 이기길 바라나’ 질문에 대답 피한 트럼프

이날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에 대한 질문도 나왔다. 사회자는 트럼프에게 ‘우크라이나가 전쟁에서 이겨야 하냐’고 물었지만 트럼프는 질문에 답하지 않았다. 트럼프는 “전쟁은 끝나야 한다”고만 답했고, 사회자가 재차 ‘미국에 중요한 질문이라 묻는다. 우크라이나가 이겨야 한다고 생각하냐’고 했지만, 답하지 않았다. 대신 트럼프는 “24시간 내에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갈등을 해결할 수 있다”고만 답했다.

이어 트럼프는 “바이든 대통령이 모스크바 시장 부인으로부터 350만 달러를 포함해 중국과 우크라이나로부터 돈을 받았다”고 거짓 주장을 했다. 이에 대해 CNN은 “바이든 대통령이 재임 중에 사적으로 외국 기관으로부터 돈을 받았다는 증거는 없다”고 지적했다. 트럼프는 또한 해리스에게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의 책임을 묻기도 했다. 트럼프는 “전쟁이 시작되기 전에 그녀를 평화 협상에 보냈다”며 “3일 후 전쟁이 시작됐다”고 했다. 하지만 이 또한 사실이 아니다. CNN은 “해리스는 평화 협상을 위해 파견되지 않았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만난 적도 없다”며 “해리스는 러시아가 2022년 2월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기 며칠 전 뮌헨 안보 회의에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포함한 미국의 동맹국과 만났으나, 푸틴은 회의에 참석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ABC 대선 토론회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왼쪽)과 카말라 해리스 부통령이 대결하는 모습. / AFP 연합뉴스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을 놓고도 두 후보는 공방을 벌였다. 트럼프는 이날 “해리스는 이스라엘을 싫어한다”며 “해리스가 대통령이 되면 이스라엘은 2년 이내에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했다. 이에 대해 해리스는 어이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절대로 사실이 아니다. 나는 내 경력과 인생을 통틀어 이스라엘과 이스라엘 국민을 지지해 왔다”며 “트럼프는 또다시 국가를 분열시키려 하고 있다”고 했다. 이어 “이스라엘은 스스로 방어할 권리가 있고 이란과 그 대리 세력이 이스라엘에 가하는 위협과 관련해 이스라엘이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한 역량을 지원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트럼프는 바이든 행정부가 2021년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을 철수한 것을 공격했다. 이에 대해 해리스는 “바이든 대통령의 결정에 동의한다”고 했다.

◇ 트럼프, 이민자 개 식용 억지 주장… “해리스 인종 상관없다”고 물러서기

이날 이민, 해리스의 정체성을 놓고는 대선 후보 간 토론이라고는 보기 힘든 주장도 나왔다. 두 사람은 남부 국경을 통한 불법 이민자 문제를 놓고 이야기를 나눴다. 그중 트럼프는 “이민자가 개와 고양이를 잡아먹는다”는 주장을 되풀이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특히 스프링필드 등 일부 지역을 꼽으면서 “이민자들이 거기 사는 주민들의 반려동물인 개와 고양이를 잡아먹는다”며 “이것이 우리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라고 했다. 이에 사회자가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고 있다’고 했음에도 트럼프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고, 해리스는 웃긴다는 듯 입을 크게 벌려 웃어 보였다.

트럼프는 본인이 과거 해리스를 향해 ‘해리스는 자신을 인도계로만 내세우다가 몇 년 전 갑자기 흑인이 됐다고 주장한다. 그녀는 인도계냐 흑인이냐?”이라고 발언한 것에 대한 현재의 의견을 묻는 질문을 받았다. 이에 대해 트럼프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couldn’t care less)”, “난 그녀가 어떤 인종이든 상관없다”며 물러섰다. 이에 대해 해리스는 “자기 경력 내내 인종을 이용해 미국인을 분열시키려고 한 사람이 대통령이 되고 싶어한다는 건 비극”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