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경기 불황 징후가 여기저기서 터져나오는 가운데 미국 대부분의 기업 대표들이 임금 삭감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지난해 여러분야 사무직들의 급여가 줄었고 이제 건설과 제조 등 블루칼라 직군의 신입 급여도 줄어들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29일(현지 시각)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1년전 17만5000달러~20만 달러 사이 급여를 제공했던 직군들이 최근에는 기존보다 수만 달러 낮은 급여로 신입을 채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이 현상이 한두 분야나 직군에서 이뤄지고 있는 현상이 아니다. 직업 구하기에 급급한 구직자들은 이미 급여에 대한 기대를 하지 않고 있을 정도다.

맥도날드 한 지점의 채용 광고판./로이터

채용 담당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기업들은 신입 채용시 비용 절감에 애쓰고 있다. 소비 수준이 낮은 지역에서 직원을 뽑기 위해 그 지역 자체적으로 일자리 공고를 내거나 정직원이 아닌 계약직 조건을 내건다. 정규직 뿐만 아니라 아르바이트에서도 급여 수준이 낮아지는 현상이 목격되고 있다. 여러 파트타임 직원 채용 공고를 분석해 보면 1년 전 대비 더 낮은 시급으로 직원을 구하고 있다.

이는 고용주보다 구직자가 더 간절한 상황이 됐기 때문이다. 직원 급여를 하향할 수 있다는 것은 고용이 얼어붙은 시장에서 구직자들이 늘고 고용주들은 쓸모있는 직원을 골라 뽑을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이 때문에 과거엔 재능있는 직원들에게 급여를 더 줘야 했지만, 이제는 심지어 그럴 필요조차 없다는 게 WSJ의 설명이다.

WSJ가 인용한 고용 데이터 플랫폼 집리크루터 닷컴에 따르면 2만개가 넘는 다양한 고용 분야 중 소매와 운송, 물류, 제조, 식품 등 거의 대부분의 분야에서 신입 초봉이 낮아졌다. 가장 하락폭이 컸던 분야는 소매 분야다. 소매 분야의 신규 채용에 대한 평균 급여는 1년 만에 무려 55.9% 하락했다. 소매 다음으로는 농업(-24.5%), 제조업(-17.3%)이 뒤를 이었다.

오하이오, 펜실베니아 및 웨스트 버지니아 주 세개 주에만 56개의 매장을 소유한 맥도널드 프랜차이즈의 경우 시급은 이전과 동일하게 13달러다. 하지만 팬데믹 당시 계약금과 별개로 채용시 제공했던 인센티브 격려금은 사라졌다. 또한 가맹점주들은 프랜차이즈 관리자들에게 시급을 12달러로 낮출 수는 없는지 끊임없이 물어보고 있다. 한 가맹점주는 그의 식비보다 고용 비용이 더 많이 든다며, 24년 간 매장을 운영하면서 전례없던 일이라고 설명했다.

미국 프랜차이즈 인앤아웃 버거의 직원들./연합뉴스

사무직의 상황도 다르지 않다. 회사 사정으로 해고된 UX담당자 에릭 준데프는 최근 구직활동을 하면서 충격을 받았다. 그가 과거 보던 공고문에서, 해당 직무는 8만달러에서 10만달러 정도의 급여를 제공해왔다. 하지만 최근 구직 활동 중 UX 직무에 대한 급여는 6만달러를 넘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글로벌 컨설팅 기업 맥켄지의 브룩 웨들 수석 파트너는 자신의 고객(기업)들이 이제 더이상 능력있는 사원을 찾지 않으며 비용 절감을 위해 최대한 저렴한 인력들을 고집하는 전략을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더욱이 기업들은 일자리를 해외로 이전하는 방법까지 고려하고 있다. 웨들 파트너는 미국에서 급여가 높은 데이터 분석가를 고용하는 대신, 다른 노동 비용 절감을 위해 멕시코와 폴란드 처럼 인건비가 싼 세계 각지에서 인력을 충원하는 식이다. 또한 미국 내에서도 기업들은 시카고나 샌프란시스코와 같은 비싼 도시 대신 신시내티와 미주리주 세인트 루이스 등 생활비가 싼 지역으로 옮기고 있다. 웨들 파트너는 “고용 문제에서 지리적 이점은 강력하며 이를 이용하려는 기업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줄리아 폴락 크루터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급여 삭감 현상에 대해, 법률과 엔지니어링, 의료 등 특정 전문 분야에서는 임금 인상이 이루어지는 한편 일반 사무직 및 노동 인력에 대한 임금 하락이 이뤄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예컨대 실리컨 밸리에서도 인공지능(AI) 다루는 능력이 필요한 기술직은 여전히 급여가 높지만 다른 기술직 급여는 2년 전보다 눈에 띄게 낮아진 상태다.

한편에서는 코로나 팬데믹이 발발하면서 갑작스러운 인력부족으로 인한 급여 인플레가 정상화되고 있는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팬데믹 당시에는 갑작스러운 퇴사 등으로 노동력이 부족해 보다 높은 급여로 신입을 뽑는 경우가 있었고 이로 인해 기존 직원들의 불만이 높아졌었다. 하지만 1년 새 신입 급여에 대한 조정으로 내부 불만이 해소됐다는 게 WSJ의 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