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의 여인’으로 불리며 방글라데시를 오랜 기간 통치했던 셰이크 하시나(76) 총리가 격화하는 반(反)정부 시위에 결국 사임 의사를 밝히고 국외로 도피했다. 이로써 약 20년 동안 방글라데시를 통치해 온 최장수 총리의 시대는 예상치 못하게 막을 내렸다.

'독립유공자 자녀 공직 할당제'를 추진했다가 대규모 반정부 시위에 직면한 셰이크 하시나 방글라데시 총리가 인도로 도피한 뒤 영국으로 망명할 것으로 알려졌다. /로이터

◇방글라 국부의 딸, 정계에 입문하다

하시나는 1947년 9월 28일 방글라데시 수도 다카 인근의 툰기파라에서 태어났다. 다카대학교 재학 시절 정치에 대한 관심을 키우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1971년에 하시나의 아버지인 셰이크 무지부르 라만이 파키스탄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하며 방글라데시의 초대 대통령이 됐다. 그러나 20대 후반이던 1975년 군사 쿠데타로 아버지를 포함한 가족이 몰살됐다. 독일에 머물던 하시나와 여동생 셰이크 레하나는 간신히 목숨을 건졌다.

가족이 전부 살해된 사건은 하시나에게 충격과 함께 정치 입문 의지를 주었다. 인도에서 수년 동안 망명 생활을 하던 하시나는 1981년 방글라데시로 귀국했고, 아버지가 속했던 아와미연맹(AL)의 당수를 맡아 반정부 투쟁을 기획했다. 당시 군부 통치 기간이었던 방글라데시에서 하시나는 민주화 시위를 벌였고, 반정부 투쟁이 인기를 끌면서 하시나의 인지도도 상승했다.

그간 하시나도 여러 차례 암살을 당할 뻔했다. 지난 2004년 수류탄 테러에선 목숨은 건졌지만, 한쪽 청력을 잃었다.

◇고속 성장 주역 vs 독재자

1996년 총선에서 승리하며 하시나는 총리직을 처음 맡았다. 이후 여러 분야에서 개혁을 추진한 하시나는 방글라데시를 남아시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국가로 탈바꿈시켰다. 2001년 총선에서는 정적이었던 방글라데시민족주의당(BNP)의 베굼 칼레다 지아에게 총리직을 내줬다. 지아 전 총리는 하시다 가족을 암살한 지아우르 라만 전 대통령의 부인이다.

하시나는 2009년 총선에서 승리하면서 다시 총리직에 올랐고, 올해 총선까지 승리하며 4연임이자 5선에 성공했다. 하시나 집권 중 방글라데시는 의류 사업을 기반으로 한때 연간 국민총생산(GDP)이 6~7%씩 성장했다.

그러나 시간이 가며 하시나의 이미지는 ‘민주화의 상징’에서 ‘독재자’로 바뀌었다. 하시나는 철권통치로 인권과 민주주의를 억압하고 언론을 통제했다는 비판을 받아 왔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하시나를 ‘아시아판 철의 여인’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로이터통신은 “하시나가 야당 인사와 시민 활동가를 대대적으로 체포하고, 초법적 살인도 자행하며 사실상 일당 통치를 했다”라고 평가했다.

5일(현지 시각) 방글라데시 다카의 총리 관저로 몰려간 반정부 시위대가 셰이크 하시나 총리의 사임 소식에 환호하며 방글라데시 국기를 흔들고 있다. /로이터

◇해외 도피로 막 내린 20년 통치

그러나 절대 권력을 유지했던 하시나도 결국 물러났다. 방글라데시 정부가 6월 말 발표한 ‘다카 고등법’이 도화선이 됐다. 다카 고등법은 파키스탄으로부터 독립을 위해 투쟁한 독립 유공자 자녀에게 공직 30%를 할당한다는 내용의 법이다. 표면적으로는 국가유공자 예우지만, 집권 세력 챙기기라는 말이 나왔다.

구직난의 시달리던 대학생들은 대규모 시위를 벌였고, 방글라데시 정부는 강경 대응으로 맞섰다. 1억7000만명 인구의 방글라데시는 실질적 실업률이 40%에 육박한다. CNN은 “매년 대학 졸업자 50만~60만명이 1000개가 채 되지 않는 공무원 일자리를 놓고 경쟁한다”고 전했다. 대규모 반정부 시위로 300여 명이 사망했고 6만여 명이 체포·기소됐다. 이에 군중들은 더 분노했고, 하시나 퇴진 요구도 거세졌다. 시위가 격화되자 대법원은 할당 비율을 30%에서 5%로 줄이겠다는 중재안을 내놨지만, 시위대를 잠재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결국 수천명의 시위대는 총리 관저를 습격했고, 하시나는 여동생과 함께 5일(현지 시각) 군 헬기를 타고 도피했다고 현지 언론들은 전했다. 하시나는 방글라데시를 떠나 인도에 머무르고 있으며 영국 망명을 위해 접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방글라데시는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무함마드 유누스(84)를 임시 정부 수장으로 임명했다. 유누스는 그라민 은행을 설립해 빈곤층 무담보 소액 대출을 해준 공로로 2006년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유누스는 하시나와 대립해 온 인물이기도 하다.

다만 하시나의 퇴임이 방글라데시의 정치적 불안정을 더욱 키울 수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뉴욕타임스(NYT)는 “하시나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독재적 권력을 축적했고, 그녀의 사임은 엄청난 공백을 남겼다”면서 “방글라데시는 지금 정치적 불확실성에 휩싸였다”라고 전했다. 정치 매체 폴리티코는 “이미 높은 실업률, 부패 문제, 기후 변화 등 여러 가지 문제를 겪고 있는 방글라데시의 상황이 더욱 복잡해질 것”이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