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회 선거에서 참패한 뒤 의회 해산과 조기 총선 카드를 꺼내든 프랑스가 위기에 빠졌다. 좌파와 극우파가 경쟁적으로 포퓰리즘 정책을 쏟아내면서 재정 적자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이런 상황이 유럽연합(EU) 탈퇴 요구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프랑스 북서부 렌에서 극우 정당의 부상에 반대하는 시위가 일어나고 있다. /AFP

20일(현지 시각) 미국 경제전문지 포춘(Fortune)에 따르면 투자은행 맥쿼리는 최근 보고서에서 “조기 총선을 앞두고 좌우의 정치 극단주의 부상으로 인해 프랑스의 EU 회원국 자격이 위협받고 있다”라고 평가했다. 맥쿼리의 글로벌 전략가들은 “사실상 극좌파와 포퓰리즘 우파의 경제 정책은 시장 원칙과 재정 책임에서 크게 벗어난다”면서 “해당 정책이 실행될 경우 프랑스와 EU의 관계를 악화시킬 것”이라고 했다.

프랑스에 대한 EU 탈퇴론이 급부상하는 이유는 심각한 재정 적자 때문이다. 이미 프랑스는 치솟는 부채를 감당하기 힘든 지경에 이르렀다. 지난해 프랑스는 재정적자가 국내총생산(GDP)의 5.5%를 기록하며 유로존에서 이탈리아 다음으로 높았는데, 이는 EU가 정한 한계치(3%)의 2배에 달한다. EU는 한 회원국의 재정이 악화할 경우 다른 회원국에도 여파를 미친다는 점에서 각국의 공공부채와 재정적자를 각각 국내총생산(GDP)의 60%, 3%를 넘지 않도록 규정하고 있다.

EU 집행위원회는 전날 프랑스를 대상으로 ‘초과 재정적자 시정 절차(EDP)’ 개시를 이사회에 제안하겠다고 밝혔다. EDP는 방만한 재정을 운용하는 회원국에 EU 규정에 따른 예산 수정을 요구하고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벌금 등의 제재를 부과하는 제도다. 이사회에서 EDP 개시가 결정된 회원국은 4년간 부채와 적자를 줄일 계획을 제출해야 하고 이행 상황에 따라 GDP의 0.1%를 해마다 벌금으로 내야 할 수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현재 지지율 1~2위인 극우 정당과 좌파 연합은 모두 대규모 재정 지출 확대를 공약으로 내세우고 있다. 마린 르펜이 이끄는 극우 국민연합(RN)이 주장하고 있는 경제 정책에는 10만 유로 무이자 대출, 부가가치세 완화, 연금 개혁 등이 포함된다. 마크롱 대통령은 재정 고갈을 이유로 연금을 지급받는 연령을 62세에서 64세로 변경했었는데, RN은 오히려 연령을 60세로 낮추자고 주장하고 있다. 해당 정책들이 실현될 경우 프랑스 재정 적자는 손 쓸 수 없을 지경까지 늘어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포춘은 “좌파와 우파가 내건 공약은 정부 수입을 늘리는 명확한 경로가 없이 재정 지출을 심하게 증가시킬 것”이라며 “그렇게 되면 프랑스는 늘어나는 재정 적자를 메울 수 없게 된다”라고 평가했다. 유라시아그룹의 무즈타파 라만 역시 리포트를 통해 “극우 또는 좌파연합 정부는 (프랑스의) 재정 적자를 확대할 것”이라며 “어느 것도 재정 정책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라고 했다.

골드만삭스는 “극우파가 프랑스 총선에서 승리하고 대규모 재정 확대로 구성된 계획을 실행할 경우 프랑스 부채 부담은 현재 예상보다 더 높아질 것”이라며 “프랑스의 GDP 대비 부채 비율은 2027년까지 120%로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는 기존 전망보다 8%포인트(P) 높은 수치다.

앞서 마크롱 대통령은 유럽의회 선거에서 소속당이 극우 정당에 참패하자, 의회를 해산하고 조기 총선을 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15일 프랑스 여론조사 기관인 엘라이브폴의 발표에 따르면 극우파 RN의 지지율은 32%로 선두를 달리고 있다. 좌파 연합인 신민중전선(NFP)의 지지율은 26%, 마크롱 대통령이 이끄는 중도우파 집권여당인 르네상스당 연합은 17%를 기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