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이스라엘과 함께 미국의 대(對)중동 외교의 양대 축을 이뤄 온 사우디아라비아가 중국과 러시아 주도의 경제 블록 ‘브릭스’(BRICS) 회원국 가입을 마쳤다고 로이터 통신과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주요 외신이 2일(현지 시각) 보도했다.

지난해 8월 22일(현지 시각)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에서 개막한 브릭스 정상회의의 각국 대표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브라질 대통령,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시릴 라마포사 남아공 대통령,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

외신 보도를 종합하면, 사우디는 이날 국영TV를 통해 파이살 빈 파르한 외무장관 명의로 브릭스 가입을 공식적으로 선언했다. 앞서 지난해 8월 브릭스 정상회의 때 가입 인증을 받은 뒤 “가입 이전 세부사항을 검토해 적절한 결정을 내리겠다”고 밝혔던 데 따른 후속 조치다.

브릭스는 2009년 중국과 러시아, 브라질, 인도 등 4개국으로 출발해 이듬해 남아프리카공화국이 가입했으며 이번에 지난 1월 1일자로 정회원국 지위를 얻은 나라까지 포함해 신흥 경제 10개국 체제로 확대됐다.

브릭스는 지난해 8월 정상회의에서 사우디를 비롯해 아랍에미리트(UAE), 이집트, 이란, 에티오피아 등 5개국을 새 회원국으로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 당시 아르헨티나도 브릭스 회원국으로 승인됐지만, 4개월여 뒤 새로 취임한 하비에르 밀레이 대통령이 브릭스 가입에 반대하면서 실제 가입 절차는 중단됐다. 현재 브릭스 10개국 인구는 35억명으로 전 세계의 절반에 육박하고, 회원국이 세계 전체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28%에 이른다.

브릭스에는 시간이 지날수록 미국을 필두로 한 주요 7개국(G7)의 대항마 성격이 덧입혀졌다. 브릭스는 이번에 사우디와 함께 이른바 ‘미들파워’로 불리는 아랍에미리트(UAE), 이집트, 이란과 아프리카 인구 대국 에티오피아의 가세로 경쟁력을 한층 더하게 됐다.

사우디와 미국은 석유 자원의 원활한 수급이라는 목적으로 동맹 관계를 유지해 왔다. 그런데 미국의 셰일 에너지 혁명으로 미국과 사우디 관계에 균열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미국이 셰일원유 생산을 늘리면서 사우디가 재정적인 타격을 입기도 했지만, ‘에너지 독립국’이 된 미국이 에너지 안보를 위해 중동에 크게 의존할 필요가 없어졌다는 것도 사우디로선 악재일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 변화 속에서 중국이 사우디에 영향력을 확대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사우디는 자국 석유를 가장 많이 소비하는 중국과의 관계를 강화해 왔다. 사우디의 브릭스 가입은 미국과 중국의 중동 지역에 대한 패권 다툼 속에서 단행됐다. 사우디가 그동안 미국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면서 독자적 행보를 강화한 결과이기도 하다.

우크라이나 전쟁, 대만해협 갈등 등을 계기로 미국과 러시아·중국의 긴장이 고조하는 상황에서 사우디의 브릭스 가세는 중동은 물론 국제 정세에 큰 변화를 몰고 올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석유수출국기구(OPEC) 및 OPEC+(플러스)를 이끄는 사우디와 러시아가 브릭스로 묶이면서 유가 공조가 더욱 견고해질 가능성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