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와튼스쿨에서 기술과 기업가 정신을 가르치는 에슨 몰릭 교수는 올해 초 학생들에게 인공지능(AI)’만’을 사용해 짧은 논문을 쓰도록 했다. 오픈AI가 내놓은 생성형 AI인 ‘챗GPT’ 인기에 힘입어 AI를 이용해 신속하게 결과물을 내는 연습을 시킨 것이다.

몰릭 교수에 따르면 생성형AI에 “리더를 선택하는 방법에 대한 5단락 분량의 에세이 작성”과 같은 기본 명령어를 넣었을 때 나온 결과는 지루하고 평범한 글에 불과했다. 그러나 AI에 특정 세부 사항을 수정할 것과 쓸모없는 문구를 버리고, 더 생생한 세부 사항을 넣을 것을 주문한 뒤 최종 수정 사항을 수정하라고 말했을 경우에 나온 결과물은 달랐다.

‘AI로 논문을 작성하고 소설을 쓰는 것이 정당하냐’는 가치문제를 떼어놓고 생성형 AI가 내놓는 결과물만 놓고 생각하면, 어떤 명령어를 넣는지에 따라 완전히 다른 결과물을 받아볼 수 있다. AI에 적절한 질문을 하고 AI가 답하는 내용을 다듬는 일을 하는 ‘프롬프트 엔지니어(prompt engineer)’가 관심을 받는 이유다.

지난해 8월 열린 콜로라도 주립 박람회 미술대회의 디지털아트 부문에서 우승한 ‘스페이스 오페라 극장’. 이 그림은 화가가 아닌 게임 기획자 제이스 앨런이 텍스트를 이미지로 바꿔주는 생성형 AI인 ‘미드저니(Midjourney)’로 만들었다. / 미드저니 홈페이지 갈무리

25일(현지 시각) 워싱턴포스트(WP)는 “기술 분야에서 가장 인기 있는 새로운 직업은 ‘AI 위스퍼러(whisperer)”라며 프롬프트 엔지니어라는 새로운 직업군을 소개했다. 프롬프트 엔지니어는 AI 시스템으로 원하는 것을 정확하게 생산하도록 돕는 이들로 AI에 입력하는 텍스트 프롬프트를 만들고 개선하는 업무를 한다. 기존의 엔지니어들과 달리 프롬프트 엔지니어는 문장을 이용해 프로그래밍을 하기 때문에 코딩 능력은 필요하지 않다. 일반 텍스트로 작성된 명령을 AI 시스템에 보내 작업을 수행한다. 테슬라의 전 AI 책임자인 안드레이 카파시가 지난 1월 “가장 인기 있는 새로운 프로그래밍 언어는 영어”라고 트윗한 것도 프롬프트 엔지니어의 부상을 증명한다.

생성형 AI는 뉴스 기사, 개방형 웹 등에 올라와 있는 수천억 개의 단어를 수집해 훈련한다. 생성형 AI 프로그램은 단어와 구문이 사용되는 방식의 패턴을 분석하도록 설정돼 있다. 입력어를 넣으면 해당 패턴을 모방해 한 번에 한 단어씩 대화의 맥락을 반영하는 단어와 구문을 선택해 답변을 내놓는다. 하지만 동일한 텍스트 명령어를 넣어도 생성형 AI는 수십 개의 상충되는 답변을 내놓을 수도 있다. WP는 “AI가 텍스트 명령어를 이해하는지가 문제가 아니라 이해하지 못하는 단어가 들어가는 것이 관건”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8월 열린 콜로라도 주립 박람회 미술대회의 디지털아트 부문에서 우승한 ‘스페이스 오페라 극장’은 화가가 아닌 게임 기획자 제이스 앨런이 텍스트를 이미지로 바꿔주는 생성형 AI인 ‘미드저니(Midjourney)’로 만든 그림이었다. 앨런은 미드저니에 900번이 넘는 지시어를 입력하며 80시간을 보낸 끝에 ‘스페이스 오페라 극장’이라는 그림을 만들었다. 이 역시 프롬프트 엔지니어의 영역으로, 앨런은 당시 자신이 입력한 프롬프트 공유를 거부했다.

일부 프롬프트 엔지니어는 자신의 명령어, 이른바 ‘프롬프트’를 판매한다. 실제로 ‘프롬프트베이스(PromptBase)’와 같은 명령어 마켓에는 생성형 AI에 입력한 명령어를 판매하고 이를 구매하는 일들이 벌어진다. 구매자는 AI가 만든 그림 등 예술 작품을 보고 이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되는 단어 목록을 비용을 지불하고 구매할 수 있다.

프롬프트베이스 설립자이자 영국 개발자인 벤 스토크스는 2021년 이후 2만5000명 이상이 프롬프트를 사고팔았다고 말했다. 현재 약 700명의 프롬프트 엔지니어가 프롬프트베이스에서 전자책용 프롬프트를 판매 중이다. 미드저니를 이용해 ‘작은 옷을 입은 여성 경찰’을 만드는 50가지 단어는 1.99달러, ‘당신의 꿈을 예술로 그려라’를 주제로 구성된 단어는 5달러에 판매 중이다. 스토크스는 “원하는 것을 설명하는 올바른 단어를 찾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라며 “프롬프트를 잘 작성하는 사람은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더 큰 영향력을 갖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관련 업계에선 이미 프롬프트 엔지니어를 적극적으로 구하는 기업들이 눈에 띈다. AI 스타트업 앤스로픽은 최근 프롬프트 엔지니어 구인 공고를 올리면서 최대 33만5000달러를 주겠다고 발표했다. 보스턴 어린이 병원은 연구 및 임상 실습에서 얻은 건강 관리 데이터를 분석하는 작업을 위해 프롬프트 엔지니어 채용에 나섰다. 법무법인 이쉬콘 드 레야도 법률 정보 제공과 관련한 프롬프트 설계를 위해 ‘법률 프롬프트 엔지니어’를 채용 중이다. 지원자는 챗GPT와의 대화 내용을 제출해야 한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스타트업 ‘스케일 AI’에서 프롬프트 엔지니어로 일하는 라일리 굿사이드는 “프롬프트 엔지니어는 인간과 기계의 마음이 만나는 장소에서 소통하는 방식을 찾는 이들”이라며 “인간이 추론할 수 있고 기계가 따를 수 있는 언어를 만드는 이 직업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