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 사태 이후 미국에서 아시아인에 대한 ‘묻지마 공격’이 크게 늘어나면서 해외에 체류하는 아시아계 미국인들이 미국으로 돌아오길 꺼리고 있다고 미 워싱턴포스트(WP)가 17일(현지 시각) 보도했다.

WP는 시애틀 출생으로 중국계 이민자 2세인 에릭 우(20)의 이야기를 소개하며 “그는 런던의 킹스칼리지 대학교를 졸업하면 미국으로 돌아가려던 당초 계획을 접었다”고 전했다. 매주마다 아시아인이 공격당했다는 기사가 나온다는 것이 이유다. 할아버지, 부모, 삼촌과 숙모, 사촌, 형제, 누이가 피살될 수도 있다는 걱정도 앞선다.

지난 26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에서 아시아인을 겨냥한 증오범죄 중단을 촉구하며 시위를 벌이는 사람들의 모습. /트위터 캡처

실제 지난 13일 뉴욕에서 35세의 한국계 여성이 자기 아파트에서 피살되는 사건도 있었다. 지난달에는 미셀 일리사 고(40)가 지하철에서 떠밀려 숨졌다. 두 사건은 미국 전역의 아시아계 미국인 사이에 큰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

샌프란시스코 경찰국에 따르면 지난달 아시아인 상대 증오범죄가 전년대비 567% 증가했다고 발표했으며 연방수사국(FBI) 자료에 따르면 2020년 아시아인 상대 증오범죄가 전년 대비 73% 증가했다.

이같은 상황이 아시아 각국과 해외 체류 아시아계 미국인들이 미국과의 관계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들고 있다. 이들은 이미 총기사고 등 정치적, 사회적 문제들에 대해 큰 우려를 가진 상태여서 아시아인 혐오범죄 증가가 상황을 한층 악화시키고 있다.

시드니에 사는 에린 웬 아이 추(39)는 미국 출신인 남편을 따라 캘리포나아 남부를 자주 방문한다. 그는 자신이 로스앤젤레스(LA) 길거리를 혼자 걷을 때 무척 조심하곤 했는데 “지금은 훨씬 더 긴장한다”고 말했다. “아시아인, 특히 중국계 아시아인으로 보이는 사람에게 모두가 적대적인 것처럼 느껴진다”는 것이다.

특히 나이가 많은 아시아인이 주 공격대상이 되고 있다. 한국의 한 외교관이 지난주 뉴욕에서 아무런 이유없이 폭행을 당했으며, 지난해 3월에는 아시아 여성 8명이 애틀랜타에서 총격으로 사망했다. 현지 검찰은 범인 로버트 애런 롱에 대해 증오범죄혐의를 적용했다고 밝혔다.

노스이스턴대에서 아시아계 미국인 연구를 하는 유지연 교수는 미국내 반아시아감정은 오래전부터 있었지만 젊은 아시아계 미국인들은 과거의 아시아인 차별을 경험하거나 학교에서 배우지 않았기 때문에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노골적인 인종 차별이 증가하고 반아시아인 발언이 늘어나면서 일부 아시아계 미국인들이 해외로 나가거나 해외 체류를 연장하려 한다”고 덧붙였다.

한국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성장한 뒤 2005년 한국으로 영구 귀국한 제인 정 트렌카는 “미국에서 오래 살아온 사람들은 익숙하다”면서 2013년 미국을 방문했을 때 한 남자가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며” 창문을 주먹으로 치는 일이 있었다고 말했다. “미국으로 돌아가는 걸 생각하면 지금이 얼마나 편안한 지 새삼 느낀다. 다시는 그런 일을 매일 겪고 싶지 않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