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미국 대통령 선거에 공화당 후보로 출마하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달러 가치가 너무 높다며 약달러 공약을 주장하면서 금융 시장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과 그의 러닝메이트(부통령 후보) JD 밴스 상원의원은 제조업을 부양하고 무역 적자를 줄이기 위해서는 달러화가 지금보다 약해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로 공식 지명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16일(현지 시각) 위스콘신주 밀워키에서 열린 공화당 전당대회에 참석해 지지자들에게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이고 있다. /AFP

트럼프 전 대통령은 첫 집권 때부터 현재까지 달러화가 너무 강세를 보이면 안 된다는 주장을 꾸준히 하고 있다. 첫 집권 때인 2017년에는 월스트리트저널(WSJ)과의 인터뷰에서 “달러가 너무 강해지고 있다”라고 말했었다. 재선 의지를 밝힌 이후부터는 더욱 강도 높게 강달러 현상에 불만을 드러내 왔다. 지난 4월에는 “달러 강세가 미국의 무역 적자를 키우고 있다”며 “강달러는 미국 제조업에 재앙(a disaster for our manufacturers and others)”이라고 말한 바 있다.

미국 정치 매체 폴리티코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집권에 성공할 경우 유력한 재무장관 후보로 꼽히는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전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가 달러 가치를 낮추는 방안을 고심하고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미국은 1990년대 이후 강달러 정책을 유지해 왔다. 최근 몇 년간 달러화 가치는 더 높아졌는데,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조 바이든 대통령이 2021년 1월 취임한 후 달러화 가치는 다른 주요 통화 대비 15% 상승했다.

트럼프 2기가 될 경우 트럼프 전 대통령이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은 몇 가지가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트럼프 재집권 시 재무부가 외화를 사기 위해 달러를 팔거나 연방준비제도(연준·Fed)에 달러를 더 찍어내도록 설득할 수 있다고 전했다. 또 다른 옵션은 관세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백악관으로 복귀하면 중국 수입품에 60%에 달하는 새로운 관세를 부과하고 다른 나라에서 수입하는 제품들에는 10%의 보편 관세를 부과할 것이라고 선언한 바 있다.

다만 금융시장은 트럼프 전 대통령의 약달러 공약 성공 확률이 매우 낮을 것으로 보는 것으로 나타났다. FT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대선에 승리하면 달러화 가치를 평가절하한다는 구상은 관세와 감세 정책에 막혀 성공할 가능성이 극도로 낮을 것으로 전략가들은 보고 있다”라고 전했다. FT에 따르면 전문가들은 달러화 약세 계획은 비용이 많이 들고 단기적일 것이며 해외 상품 관세 부과와 같은 포퓰리즘 정책으로 인해 효과가 상쇄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모건스탠리의 글로벌 외환 책임자인 제임스 로드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구상하는 수입품에 대한 관세는 달러를 약화하기보다 오히려 강세를 유발할 것”이라며 “특히 상대국이 보복 관세를 부과하면 세계 경제 성장에 위험이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UBS의 G10 외환 전략 책임자인 샤하브 잘리노오스는 “대통령이 달러화 약세를 위해 할 수 있는 확실한 일은 없다”며 “근본적으로 달러화가 고평가됐다는 느낌은 없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달러 평가 절하는 지난 1985년 플라자 합의 이후 시도되지 않았다. 플라자 합의는 1985년 9월 22일 미국 뉴욕에 위치한 플라자호텔에서 미국·일본·프랑스·독일·영국의 재무장관들이 각국 통화 대비 달러화 가치를 인위적으로 떨어트리기로 한 합의를 말한다. 다만 당시에는 미국 금리 인하가 뒷받침됐기 때문에 달러화 가치를 떨어트릴 수 있었다고 FT는 설명했다.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도 트럼프 전 대통령의 주장에 반박했다. 28일 옐런 장관은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매우 강력한 달러는 수출을 억제하지만, 수입에 기여할 수 있다”면서 “강달러의 영향은 더욱 광범위한 맥락에서 평가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강달러 현상을 무역적자의 관점에서만 바라보면 안 되고, 더 넓은 시각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다. 옐런 장관은 지난 25일 기자회견에서는 미국의 강한 경제가 외국 자본을 끌어들이고 달러 가치를 상승시켰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