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 구입을 엄격하게 통제하던 중국 1선 도시(베이징·상하이·광저우·선전)들이 관련 규제를 잇달아 완화하고 있다. 수년째 얼어붙어 있는 부동산 투자 심리를 정상화하고, 부동산이 전체 경제의 발목을 잡는 악순환을 끊겠다는 중국 정부의 의지에 따른 것이다. 중국 내부적으로는 이 같은 정책으로 부동산 시장이 바닥을 치고 올라올 것이란 긍정적 전망이 나오지만, 일각에서는 일시적 효과에 그칠 수 있다는 회의론도 제기되고 있다.

29일 중국 경제매체 차이신 등에 따르면, 지난 28일 저녁 광저우시는 생애 최초 주택 구입자가 내야 하는 주택 계약금 비율을 30%에서 15%로 낮춘다고 발표했다. 두 번째 주택 구입자 역시 계약금 비율이 25%로 이전보다 낮아졌다. 부동산 전문 징젠컨설팅의 장홍웨이 설립자는 “이로써 광저우는 1선 도시 중 주택 계약금 비율이 가장 낮은 곳이 됐다”고 했다.

중국 베이징의 한 건설 현장./로이터 연합뉴스

이 외에도 광저우는 1선 도시 중 최초로 기존 주택 유무와 관계없이 주택담보대출 금리 하한선을 폐지했다. 또 주택 구입에 필요한 사회보장세·개인세 의무 납부 기간을 기존 2년에서 6개월로 줄였다. 이같은 세금 의무 납부 기간을 채운 외지인이 주택을 구입할 수 있는 지역도 확대했다. 광저우는 지난해 9월에도 행정구역 절반에 대해 외지인 주택 구입 제한을 해제한 바 있다.

1선 도시 중 가장 엄격한 부동산 규제를 적용하던 상하이는 광저우보다 하루 빨리 규제 완화를 발표했다. 생애 첫 주택 구매자의 계약금 비율을 30%에서 20%로 낮추고, 두 자녀 이상 가정에 대해 추가 주택 구입을 허용했다. 또 외지인의 주택 구입에 필요한 세금 의무 납부 기간을 5년에서 3년으로 줄였다. 선전도 광저우와 같은 날 계약금 비율(최초 구입시 30%에서 20%로 조정)과 주담대 금리 인하 등을 발표했다.

이들 3개 1선 도시가 부동산 규제를 완화한 것은 지난 17일 중국 인민은행의 발표에 따른 것이다. 인민은행은 생애 첫 주택과 두 번째 주택 구매자에게 적용하던 주담대 금리 하한선을 완전히 폐지하고, 각 지역 시장 상황에 맞춰 자율적으로 금리를 확정하도록 지시했다. 중국 매체 신경보에 따르면, 현재까지 20개 이상의 성, 자치구 등에서 관련 지시를 반영한 정책을 내놨다. 이쥐연구원의 옌웨진 연구총감은 “(1선 도시 중 아직 움직이지 않은) 베이징도 조만간 비슷한 수준으로 정책을 완화할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중국 정부는 부동산 과열을 막기 위해 2020년부터 엄격한 규제 정책을 실시했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인한 경기 부진에 대형 부동산 개발업체들의 디폴트(채무불이행) 우려까지 겹치면서 시장이 급격히 위축되기 시작했다. 중국 부동산은 전체 국내총생산(GDP)의 4분의 1, 중국 가계 자산의 80%를 차지한다. 집값 하락에 가계가 지갑을 닫기 시작하면서 경제 전체가 부동산에 발목을 잡히는 악순환이 지속되고 있다.

중국 내부적으로는 이번 정책이 시장 투자 심리를 끌어올릴 것으로 보고 있다. 부동산 연구기관 중즈연구원은 “더 많은 도시가 계약금 비율과 주담대 금리를 인하해 주택 구입 비용이 줄어들 것으로 전망한다”며 “주택 구입에 대한 신뢰도가 높아져 시장의 기반이 빠르게 복구될 것”이라고 밝혔다. 국투증권의 고선원 수석이코노미스트 역시 “최근 부동산 종목 주가지수가 큰 폭으로 반등하는 등 낙관적인 기대감이 형성되고 있는데, 이같은 시장의 해석은 객관적이고 정확하다고 본다”라며 “이대로 간다면 부동산 시장이 바닥을 치고 반등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반짝 효과에 그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장홍웨이 징젠컨설팅 설립자는 “단기적으로는 1~2개월 내 일부 주택 수요가 시장에 진입할 것으로 보이지만, 7~8월까지 광저우 부동산 시장 거래가 반등세를 이어갈 수 있을지는 지켜봐야 한다”라고 말했다. 실제 광저우는 지난 2년간 1선 도시 중 부동산 규제 완화에 가장 적극적이었지만, 지난해 6월 이후 올해 4월까지 11개월 연속 신규 주택 가격이 하락했다. 중고주택 가격 역시 지난해 5월 이후 12개월 연속 하락 중이다.

소득 인상이 뒷받침되지 않는 가운데 지나친 금리 인하는 대출 부실 등 부작용을 가져올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국제 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보고서를 통해 “중국 부동산 부양책이 수요를 일시 늘릴 순 있지만 대출 원리금을 갚지 못하는 사례가 많아질 수 있다”라며 “지방 소도시 은행들이 위험해질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