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전자상거래 플랫폼 ‘테무(Temu)’의 모기업인 ‘핀둬둬(PDD) 홀딩스’의 창업자 황정(黃崢·콜린 황). /로이터연합

“우리는 세 살 어린아이에 불과하다. 숱한 도전과 위험이 눈앞에 도사리고 있지만 멈추지 않고 혁신할 준비가 돼 있다.”(황정·2018년 7월 핀둬둬 홀딩스의 미국 나스닥 상장 행사에서)

중국 항저우 출신의 44세 ‘수학 천재’가 인구 14억 중국에서 최고 부자로 우뚝 섰다. 중국 전자상거래 플랫폼 ‘테무(Temu)’의 모기업인 ‘핀둬둬(拼多多) 홀딩스’ 창업자 황정(黃崢·콜린 황) 얘기다.

8월 9일(이하 현지시각) 블룸버그가 자체 집계해 발표하는 억만장자 지수 기준으로 황정의 재산은 486억달러(약 66조4119억원)로 기존 중국 1위였던 중국 생수 업체 눙푸산취안(農夫山泉) 창업자 중산산(474억달러·약 64조7721억원)을 처음으로 제쳤다.

황정의 재산은 2021년 초 715억달러(약 97조원)까지 불어난 적 있지만, 그가 중국 최고 부호 자리에 오른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후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과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주도한 민간 테크 기업 단속 여파로 그의 재산은 1년여 만에 87% 급감했다. 하지만 이후 중국 밖으로 사업을 확장한 역직구 플랫폼 테무가 해외에서 돌풍을 일으키면서 세계적인 부호 반열에 다시 올라설 수 있었다.

데이터 분석으로 물량 예측⋯ 100% 직매입

블룸버그는 전 세계 소비자가 저가 제품에 몰리면서 테무가 급성장했고, 그 덕분에 황정의 재산이 급증했다고 분석했다. 황정은 중국 최고 부자이지만 세계 순위(8월 14일 기준)로는 23위에 머물고 있다. 2350억달러(약 321조1200억원)의 재산을 보유한 세계 최고 부호인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 1930억달러(약 263조7300억원) 재산의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창업자 등 선두권과는 격차가 상당히 크다. 황정의 재산은 연초 대비 6% 감소했는데, 중산산의 재산이 같은 기간 약 30% 줄어들면서 둘의 순위가 바뀌었다. 그만큼 중국 경제가 좋지 않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황정은 2020년 7월 핀둬둬의 CEO 자리에서 내려왔고, 2021년에는 의장 자리에서도 물러났지만, 여전히 최대 주주로 26.5%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1980년 항저우의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난 황정은 저장 외국어학교에 다니던 10대 시절부터 수학 천재로 이름을 날렸다. 이공계 명문 저장대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하고 미국으로 건너간 그는 위스콘신대에서 같은 전공으로 석사 학위를 마친 후 마이크로소프트(MS)에서 인턴으로 경험을 쌓았다.

이후 여러 정보기술(IT) 업체의 러브콜을 받았지만 당시 급부상한 구글을 선택해 2004년 구글에 입사했고, 2006년 귀국해 구글의 중국 시장 진출 과정에서 핵심적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구글은 2010년 1월 해킹 우려와 중국 당국의 과도한 검열을 이유로 중국 철수를 선언했다).

하지만 ‘자기 사업’에 대한 갈증이 심했던 그는 2007년 전자상거래 플랫폼 오쿠(Oku)를 창업해 운영하다가 2010년 220만달러(약 30억630만원)에 매각했다. 예행연습(?)을 마친 그는 2015년 전자상거래 업체 핀둬둬를 창업했다. 핀둬둬를 중국어로 풀면 ‘많이(多多) 끌어모으다(拼)’라는 뜻이 된다. 핀둬둬에서는 혼자 구매할 때 가격과 공동 구매 가격이 함께 표시되고 사람이 많이 모이면 할인 폭이 최대 50%까지 커진다. 서민층을 잡기 위해 공동 구매 방식에 기반한 박리다매 전략이 주효하면서 창업 3년 만에 미국 뉴욕증시 나스닥에 상장했고, 5년 만인 2020년 말 기준 전자상거래 이용자 수 중국 1위에 오르는 등 승승장구했다. 8월 13일 나스닥에서 종가 기준 핀둬둬 홀딩스의 시총은 2000억달러(약 273조3000억원)를 넘어섰다.

수학 천재가 세운 기업답게 정밀한 데이터 분석을 통해 물량을 예측하고 초저가 상품을 제조 업체로부터 100% 직매입하는 전략으로 차별화를 꾀했다. 단기간에 수백만, 수천만 개의 주문 물량 예측이 가능해지면서 초저가에도 경쟁력 있는 조건에 생산 업체를 끌어모을 수 있게 된 것.

핀둬둬는 2022년 론칭한 자회사 테무를 통해 글로벌 시장점유율을 확대하고 있다. 중국에서 배송하는 가격 경쟁력 높은 제품과 공격적인 광고·마케팅이 성장 동력이다. 소셜미디어(SNS)를 활용한 적극적인 초저가 마케팅을 통해 한국과 미국, 독일, 이탈리아, 멕시코 등 50여 개국에 진출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테무는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의 모기업인 메타에만 지난해 광고비로 약 20억달러(약 2조7330억원) 넘게 지출하면서 메타의 최대 광고주가 됐고, 같은 기간 구글에도 거액의 광고비를 지불해 5대 광고주로 자리매김했다.

테무가 광고에 막대한 비용을 쏟아붓는 건 신생 회사로서 미국 소비자를 빠르게 끌어당기고, 전자상거래 기업 간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서다.

어니스트애널리틱스에 따르면, 테무는 미국 내 이커머스 시장에서도 지난해 11월 기준 17%의 점유율을 기록했다. 미국 진출 시기가 2022년 9월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매우 가파른 성장세다. 미국 내 월 이용자도 5000만 명을 넘어서 1위인 아마존(6700만 명)을 바짝 뒤쫓고 있다. 유럽 시장의 월 활성 사용자(MAU)는 7500만 명에 달한다.

핀둬둬 홀딩스의 2023년 매출은 2480억위안(약 47조2192억원)으로 전년 대비 90% 급증했다. 올해 1분기 순이익은 1년 새 약 세 배 뛰어서 280억위안(약 5조3312억원)을 기록했다.

급성장에 따른 그늘도 짙게 드리워져 있다. 제품 품질에 대한 불만, 저작권 침해 혐의, 직원의 극심한 초과 근무, 모바일 앱의 개인 정보 유출 등 문제가 산적해 있다. 초저가 및 엄격한 물품 판매자 관리를 통해 급속히 시장을 확대하고 있지만 지나치게 엄격한 벌금 규정과 과도한 입찰 경쟁으로 판매자들의 불만이 높다는 지적도 많다. 테무는 제품 배송이 지연되거나 고객 불만이 제기되면 판매자에게 제품값의 다섯 배에 달하는 벌금을 부과한다.

Plus Point

IT 뜨고, 부동산 지고 급변하는 中 부의 지형

세계 2위 경제 대국 중국에서 부(富)의 지형이 급변하고 있다. IT와 전자상거래 분야의 재계 리더가 높은 순위로 올라선 반면 과거 상위권을 독점하다시피 했던 부동산 거물은 순위권 바깥으로 밀려났다.

중국 재계 정보 분석 기관인 후룬연구소가 지난해 10월 발표한 ‘후룬 중국 부호 리스트 2023’을 보면, 당시 1위는 눙푸산취안(農夫山泉) 창업자 중산산이었지만, 10위권 부호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IT·이커머스 업계 거물(5명)이었다. 소셜미디어 및 게임 대기업 텅쉰(騰迅·텐센트) 창업자 마화텅(馬化騰)이 2위였고, 황정은 3위였다. 4위는 세계 최대 전기차 배터리 제조 업체 CATL의 쩡위췬(曾毓群) 회장이 차지했다. 20억 명 유저가 사용하는 동영상 플랫폼 틱톡으로 유명한 ‘바이트댄스’의 장이밍(張一鳴) 창업자는 5위 자리를 지켰다.

반면 부동산 거물들의 재산 하락세 또한 뚜렷했다. 완다그룹 소유주이자 한때 중국 최고 부자였던 왕젠린(王健林) 다롄완다(大連萬達) 회장의 순위는 1년 새 57계단 하락해 89위에 머물렀다. 청산 절차를 밟고 있는 헝다(恒大·에버그란데)그룹의 쉬자인(許家印) 회장 역시 한때 중국 부호 1위에 오르기도 했지만, 재산이 전성기 대비 98% 증발하면서 268위에 머물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