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일본이 전후 복구 과정을 거쳐 선진국에 진입한 연도를 보통 1970년께로 본다. 서방 선진국 수준으로 경제력이 올라온 데다 1964년 도쿄올림픽과 1970년 오사카 엑스포를 계기로 세계적 위상이 높아진 덕분이다. 1970년 일본의 1인당 국민총소득(GNI)은 2014달러(약 277만8900원), 한국은 281달러(약 38만7700원)로 한일 간 격차가 일곱 배를 넘는 때였다. 1980년대 중반 국민소득에서 미국을 앞섰던 일본은 버블(거품) 경제 붕괴로 1990년대 이후 저성장이 이어지고 있다. 그런 일본의 부자 변천사를 살펴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듯하다. 각종 자료를 분석한 결과, 1970년대에는 ‘땅 부자’ 가 많았으나 2024년에는 기업을 창업한 주식 부자가 주류로 조사됐다. 흔히 억만장자로 불리는 거부(巨富)는 현금과 재산을 매우 많이 가진 사람을 지칭한다. 2024년 기준 억만장자(billionaire)는 10억달러(약 1조3798억원) 이상 자산 보유자다.

1970년대 일본 최고 부자는 ‘토지’ 보유자

2005년까지 일본에서는 매년 5월에 나오는 고액 소득자(납세자) 발표가 ‘빅뉴스’였다. 언론은 ‘일본 부자 순위’를 앞다퉈 보도했고, 출판사들이 발간한 ‘전국 고액 소득자 명부’도 불티나게 팔렸다. 하지만 고액 소득자의 주소 공개로 폐해가 커지자 정부는 공개를 중단했다. 그 뒤부터 ‘포브스 재팬’에서 발표하는 ‘일본 부자 랭킹’을 통해 일본 거부들의 실태를 파악할 수 있다. 포브스 측은 증권거래소, 상장사 연차 보고서, 애널리스트로 부터 입수한 주식·자금 정보 등을 기초로 순위를 매긴다. 일본이 경제 선진국에 합류한 1970년 억만장자 수는 전년보다 50% 증가해 사상 처음으로 1000명을 돌파했다. 상위 100위 가운데 92명이 전국 주요 도시에 토지를 보유한 땅 부자였다. 탄소 제품 메이커 쇼와전극(昭和電極)의 오타니 다케치로 사장이 1위에 올랐다. 그해에 효고현 니시노미야의 택지 및 산림 매각으로 소득이 급증했다. 1971년에도 고액 소득자 상위 100인 가운데 95명이 땅 부자로 채워졌다. 전설적인 기업가로 꼽히는 마쓰시타전기를 창업한 마쓰시타 고노스케는 11위에 그쳐 18년 만에 10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1979년에는 제2차 오일쇼크로 물가가 치솟았다. 지가(地價)가 물가보다 높은 상승률을 기록하며 땅 부자가 더 늘어났다. 상위 100인 가운데 59명이 토지를 매각한 사람이었으며, 억만장자 수는 전년보다 두 배 증가했다.

최인한 시사일본연구소 소장일본 전문 저널리스트, 전 일본 유통과학대학 객원교수, ‘일본에 대한 새로운 생각’ 저자 사진 최인한

2024년 억만장자, 시대를 앞서간 기업가들

‘포브스 재팬’은 5월 말 ‘일본 억만장자 순위(日本長者番付)’를 발표했다. 올해 최고 부자 50인의 자산 합계액은 전년보다 4% 증가한 2000억달러(약 276조원)를 기록했다. 일본 주가 상승이 엔화 약세에 따른 자산 감소를 일부 상쇄한 것으로 풀이된다. 50인 가운데 절반 이상이 1년 새 자산이 줄어들었다. 자산이 늘어난 부호는 16명에 그쳤다. 50위 부자의 자산액은 9억8000만달러(약 1조 3522억원)에 달했다. 올해 억만장자 순위 1위는 전년과 마찬가지로 의류 브랜드 유니클로를 운영하는 패스트 리테일링의 창업자 야나이 다다시(柳井正) 회장이다. 패스트 리테일링은 올해 창립 40주년, 주식 상장 30주년을 맞았다. 1949년생인 야나이 회장의 보유 자산은 5조9000억엔(약 51조3300억원)에 달한다. 그는 1984년 일본 최초 제조·직매형 의류(SPA) 브랜드인 유니클로를 설립한 뒤 세계적인 패션 기업으로 키웠다. 2002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가 3년 만에 복귀한 뒤 20년째 회사를 이끌고 있다. 야나이 회장은 올 5월 창립 40주년 기념사를 통해 “창업 이후 ‘사회에 옳은 것은 무엇일까’를 항상 고민하고, 장기 관점에서 경영을 실천해 왔다”며 “올바른 경영을 실행하고, 장기적으로 성장을 계속하는 것이 모든 주주의 신뢰에 보답하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그의 경영 철학은 40년 전과 마찬가지로 ‘옷을 바꾸고, 상식을 바꾸고, 세계를 바꿔 간다’이다.

2위는 손정의 소프트뱅크그룹 회장

2위는 소프트뱅크그룹 창업자인 손정의(孫正義·손 마사요시)가 차지했다. 보유 자산은 전년보다 61억달러(약 8조4168억원) 늘어난 270억달러(약 37조2546억원)를 기록했다. 올해 부호 순위 50위권에 들어간 억만장자 가운데 자산이 가장 큰 폭으로 증가했다. 손정의는 1957년 규슈 사가현에서 재일교포 3세로 태어났다. ‘조센진(朝鮮人)’이라는 차별 속에서 자란 그의 어린 시절 꿈은 초등학교 선생님, 화가, 정치가, 사업가였다.

19세의 손정의는 인생 50년 계획을 세우고 미국 유학을 떠나 인생 계획표를 만들었다. ‘20대에 회사를 세우고, 세상에 나의 존재를 알린다. 30대, 최소 1000억엔(약 9000억원)의 자금을 모은다. 40대, 조 단위 규모의 승부를 건다. 50대, 사업을 완성한다. 60대, 다음 세대에 사업을 물려준다.’ 그는 목표대로 사업에 성공했으나, ‘60세 은퇴’ 일정은 번복한 뒤 현역으로 왕성하게 활동 중이다. ‘정보 혁명으로 사람을 행복하게 한다’는 ‘경영 이념’을 잃지 않고 IT 관련 사업에서 승부를 걸어 대부호가 됐다.

2024년, 일본 억만장자 주인공들

3위는 공장 자동화용 센서 등을 생산하는 키엔스의 다키자키 다케미쓰 명예회장이었다. 보유 자산은 전년보다 16억달러(약 2조 2077억원) 줄어든 210억달러(약 28조9758억원)를 기록했다. 상위 50인 가운데 가장 큰 폭으로 감소했다. 1945년생인 다키자키는 자동화 센서, 측정 기기, 디지털 현미경 등을 제조·판매하는 키엔스 창업자다. 그는 1974년 키엔스를 설립한 뒤 2015년 회장 자리에서 물러났다. 아마가사키공고를 졸업한 뒤 외국계 플랜트 제어 기기 메이커에서 근무했다. 첫 번째, 두 번째 창업에서 실패하며 쓰라린 경험을 맛본 후 세 번째로 도전한 키엔스를 일본 최고 제조 메이커로 키워냈다.

4위는 산토리홀딩스 대표를 맡고 있는 사지 노부타다(佐治信忠)가 차지했다. 2001년 산토리 4대 사장에 오른 사지는 취임 이후 ‘사람과 자연의 조화’를 기업 이념으로 내걸고 청량음료, 맥주 등 신제품 개발로 사세 확장에 크게 기여했다.

5위는 반도체 제조 장치를 만드는 디스코(Disco)의 세키야 카즈야(關家一馬) 사장이다. 그는 1966년생으로 미국 유학을 다녀온 뒤 1989년에 디스코에 입사했다. 1992년 기술본부에 근무할 당시 주력 장치의 소형화 프로젝트를 진두지휘하며 큰 성과를 냈다. 일본 정부가 반도체 산업의 부활을 향해 야심차게 투자에 나서자 디스코 주가는 최근 1년 새 세 배 가까이 급등했다. 창업자 3대손인 세키야 사장의 보유 자산 가치도 전년 대비 150% 증가했다.

새 얼굴 5인, 최연소 33세 벤처기업가

올해 50위권에 처음 진입한 억만장자는 5명이다. 그중 가장 순위가 높은 인물은 자전거 부품 메이커 ‘시마노(島野)’를 물려받은 시마노 요조(島野容三) 회장으로 20위를 차지했다. 이어 32위의 나가타 히사오(永田久男) 트라이얼(TRIAL)홀딩스 회장이다. 그는 경쟁사보다 한발 앞서 소매업에 AI(인공지능) 기술을 도입한 디스카운트 스토어(할인점) 업계의 샛별이다. 이 회사는 창업 후 ‘현실과 IT, AI를 융합해 고객이 편리하고 즐겁게 쇼핑할 수 있는 환경 구축’을 비전으로 내걸고 유통 혁명을 선도 중이다. 1956년 후쿠오카현 출생으로 1984년 트라이얼컴퍼니를 설립했다.

올해 가장 주목받은 인물은 억만장자 클럽의 새 얼굴인 33세 벤처기업가 사가미 슌사쿠(佐上峻作) ‘M&A 종합연구소’ 대표다. 그는 AI를 활용한 중소기업의 M&A 중개 사업으로 단기간에 큰돈을 모아 41위에 랭크됐다. 결제 및 스트리밍 서비스 사업을 전개하는 ‘U-NEXT HOLDINGS’의 우노 야스히데(宇野康秀) 대표가 43위였다. 49위는 일본 최대 우동 체인점 ‘마루가메세이멘’을 운영하는 아와타 타카오(粟田貴也) 트리돌홀딩스 창업자다. 아와타 사장은 1961년생으로 1990년 고베에서 트리돌코퍼레이션을 설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