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재산분할 파기환송심에서 최 회장이 노 관장에게 재산분할금으로 9440억원을 지급해야 한다고 판결한 가운데 최 회장이 분할금을 어디서 조달할 지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그룹 경영권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재계에서는 최 회장이 재산분할금을 마련하기 위해 SK그룹의 지주사인 SK㈜의 주식을 담보로 대출을 받거나 지분 일부를 매각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향후 지배구조에 변수가 될 수도 있는 상황이다.
서울고등법원 가사1부는 24일 오후 2시부터 진행된 두 사람의 재산분할 소송 파기환송심 기일에서 이같이 선고했다. 재판부는 최 회장이 보유한 SK㈜ 주식을 분할 대상으로 판단하고 재산분할 비율은 노 관장 3분의 1, 최 회장 3분의 2로 정했다. 노 관장 몫의 주식 중 부족한 부분은 최 회장이 현금으로 지급하도록 했다.
분할 대상 주식의 가치 산정 기준일은 이혼 소송의 사실심(항소심) 변론 종결일인 2024년 4월 16일로 정했다. 당시 SK㈜ 종가는 16만원이었다.
이번 선고가 나오기 전 법조계에서는 SK㈜ 주식이 분할 대상이 될 경우 가치 산정 기준일이 언제가 될 지가 최대 관심사였다. 최 회장 측은 기존 항소심 변론이 종결된 2024년 4월 16일을 삼아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노 관장 측은 재산분할 사건을 다시 심리한 파기환송심의 변론 종결일인 올해 6월 26일을 기준으로 평가해야 한다고 봤다.
6월 26일 SK㈜ 종가는 81만5000원으로 2024년 4월 16일 종가보다 5배 이상 높은 수준이었다. 따라서 이날 법원이 노 관장 측의 손을 들어줬다면 분할 비율이 달라져도 최 회장은 수 조원의 재산을 분할해야 하는 처지에 몰릴 수 밖에 없었다.
최 회장은 최악의 상황은 면했지만, 1조원에 가까운 재산분할금을 마련해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됐다.
최 회장의 재산은 대부분 SK㈜ 주식으로 현재 전체 지분의 17.9%를 보유 중이다. 주식 수는 1297만5472주다. 이날 종가 63만원을 반영하면 현재 그의 지분 가치는 8조1745억원이다.
그는 SK실트론 지분 29.4%도 갖고 있다. SK디스커버리 주식도 보유하고 있지만, 지분율은 0.1%로 미미한 수준이다.
재계에서는 최 회장이 재산분할금 재원을 조달하기 위해 SK㈜ 지분을 담보로 대출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온다. SK㈜는 그룹 지배 구조의 정점에 있는 지주사 기능을 하는 만큼 최 회장이 이 주식을 팔아 지분율을 낮추기 어려울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주식담보대출을 받을 경우 지분율은 유지할 수 있지만, 향후 주가가 하락할 경우 금융기관으로부터 추가 담보를 요구 받을 가능성이 있다. 만약 주가가 큰 폭으로 떨어진다면 반대매매의 위험에도 노출된다. 또 연 8~9% 이르는 이자를 지급해야 한다는 부담도 있다.
때문에 최 회장이 지분을 매각할 수 있다는 예상도 나온다. 지분 매각은 가장 빠르고 확실한 현금 확보 수단이지만, 이 경우 최 회장의 그룹 지배력이 약화되고 주식 시장에서 대규모 매물이 쏟아져 SK㈜ 주가가 추가로 급락할 가능성이 있다.
금융 시장에서는 주식 담보 대출이나 지분 매각 모두 고민할 부분이 있는 만큼 최 회장이 일부 지분만 매각하고 나머지 재산분할금은 주식담보대출을 통해 조달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일각에서는 SK실트론 지분 매각도 거론한다. 현재 투자은행(IB) 업계에서는 부채를 제외한 SK실트론의 기업 가치를 3조~4조원 수준으로 추산한다. 따라서 최 회장의 지분 가치는 1조원대 안팎으로 평가돼 SK실트론 주식을 팔 경우 가장 빠르고 쉽게 재산분할금을 확보할 수 있다.
다만 재계에서는 지난해부터 SK그룹과 두산그룹이 최 회장의 보유 지분을 제외한 채 줄곧 협상을 진행해 왔던 점을 고려하면 그가 급하게 SK실트론 개인 지분을 매각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SK그룹은 지난해부터 재무구조 개선을 위한 리밸런싱(사업 재편)과 자산 유동화를 위해 SK실트론 매각을 추진해 왔지만, 매각 대상은 최 회장이 보유한 SK실트론 지분을 제외한 나머지 70.6%였다.
재계 한 관계자는 "최 회장은 2000년대 초반 글로벌 헤지펀드인 소버린의 공격을 받아 경영권을 위협 받은 기억이 있다"며 "SK㈜는 최 회장의 그룹 지배력과 직결되기 때문에 그가 대출이나 지분 매각에 나설 가능성은 작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최 회장은 SK실트론 지분 매각에 대해서도 소극적인 입장이라 당분간 재산분할금 마련 방법을 두고 골머리를 앓을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