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성호 자본시장연구원 AI·디지털금융연구센터 센터장 - 서울대 경제학, 미국 메릴랜드대 경제학 석·박사, 현 자본시장연구원 금융산업실 연구위원, 현 금융감독원 금융분야 AI 위험대응 TF 실무 워킹그룹 자문위원, 현 한국신용정보원 금융권 AI 플랫폼 자문위원, 전 미국 상장기업회계감독위원회(PCAOB) 선임 금융경제학자 /사진 노성호

해외에서는 인공지능(AI)이 인수 대상 기업을 스스로 찾아내는 인수합병(M&A) 딜 소싱(거래 발굴) 플랫폼이 이미 실무에 쓰이고, 기업 분석 리포트를 자동으로 작성하는 AI 에이전트도 등장했다. 반면 한국은 이 같은 업무에 쓰이는 AI 기술 개발이 사실상 전무하다. 자본시장연구원이 최근 발간한 보고서 '특허 분석을 통하여 살펴본 금융 투자업의 AI 활용과 시사점'에 따르면, 국내 투자은행 가치 사슬에서 딜 소싱과 인수 주선, 발행 단계의 AI 특허 비중은 자문, 자산 관리, 위탁 매매 같은 정형화된 업무와 비교해 현저히 낮았다.

같은 업무, 같은 수준의 AI 기술이지만 양국 활용도가 갈리는 이유는 기술력의 차이가 아니라 데이터 접근성의 차이라는 것이 이 보고서의 핵심 진단이다. 해외 AI 딜 소싱 플랫폼은 상장·비상장 기업의 재무·운영 정보가 표준화돼 축적된 환경에서 작동하지만, 국내에서는 M&A 문서, 투자 계약서, 실사 보고서 같은 핵심 데이터가 비공개·비정형·파편화된 상태로 흩어져 있다.

연구를 수행한 노성호 자본시장연구원 AI·디지털금융연구센터 센터장은 "M&A 업무 관련 AI 기술의 가능성에 대한 관심과 실제 업무 현장에서 활용 가능성이 아직 다른 속도로 움직이고 있다"고 말한다. 다음은 일문일답.

'AI발 M&A 열풍'이 한창인데 국내에서는 M&A 딜 업무에 AI가 가장 적게 쓰인다는 분석이 역설적이다.

"역설처럼 보이지만 서로 다른 현상을 관찰한 결과다. AI발 M&A 열풍은 AI가 투자 대상으로 가치가 높아진 현상이고, 보고서가 말하는 것은 M&A 업무 수행에 AI가 얼마나 활용되고 있느냐다. 딜 소싱, 인수 주선 같은 업무는 네트워킹·협상·현장 평가처럼 전문가의 재량과 경험이 중심인 비정형 활동이므로 AI가 학습할 패턴과 데이터 자체가 부족하다. 여기에 한 번의 오류가 대규모 손실로 직결되는 고위험 특성까지 더해지면서 국내에서는 단기간에 활용 가능한 AI 기술을 확인하기 어려웠다."

M&A 딜에서 어떤 단계는 AI가 파고들고, 어떤 단계는 끝까지 사람이 쥐고 있을 것으로 보나.

"AI는 객관적 자료에 기반한 분석 업무에서 먼저 도입되고 있다. 재무·비재무 데이터를 통합해 신용도나 기업 가치를 산출하는 작업은 정량적으로 표준화하기 쉬워 AI 특허 비중이 가장 높게 나타났다. 앞으로는 실사 단계의 문서 검토, 위험 요인 추출, 리서치 초안 작성 같은 정성적 분석 업무로 AI가 확산할 것으로 본다. 해외에서는 딜 소싱과 기업 분석 단계에서 이미 도입 사례가 나오고 있다."

국내에서 AI 딜 소싱이 저조한 이유로 '데이터 접근성'을 꼽았다. 한국과 해외의 격차는 결국 무엇 때문인가.

"AI 기술력 차이보다 가용한 데이터의 질적·양적 차이에 있다. 해외 AI 기반 딜 소싱 플랫폼은 상장·비상장 기업의 재무·운영·산업 동향 정보가 표준화돼 체계적으로 축적된 환경에서 작동한다. 반면 국내에서 딜 소싱과 실사에 핵심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데이터, 예컨대 M&A 문서, 투자 계약서, 실사 보고서, 감정 평가서 등은 접근 자체가 어렵고, 구하더라도 데이터베이스화되지 않은 채 흩어져 있다. 결국 비공개·비정형·파편화된 데이터 환경 그리고 이를 안전하게 공동 활용할 제도적 기반 부재가 격차의 본질이다."

'AI 실사'가 한국에서 표준이 되려면 어떤 인프라가 필요한가.

"세 가지가 핵심이다. 첫째, 익명화에 기반한 공통 데이터베이스 구축이다. M&A 실사 문서를 기업 기밀과 개인정보를 보호하면서 학습에 활용할 수 있도록 비식별화 기반의 공동 데이터 풀이 필요하다. 둘째, 문서 표준화다. 투자 계약서, 실사 보고서, 감정 평가서가 기관마다 다른 형식으로 작성되는 한 일관된 학습 데이터세트를 만들기 어렵다. 셋째, 감독 기관과 업계가 함께 참여하는 협력적 데이터 활용 체계다. 보안·규제 준수를 내재화한 안전한 공유 플랫폼을 통해 데이터 품질과 신뢰성을 확보해야 한다."

'AI가 잘못 판단했을 때 누가 책임지느냐'가 불분명하다는 문제는 기술이 발전하면 풀릴까.

"업계 전문가가 근본적으로 대체되는 상황은 현재로서 상상하기 어렵다. 정확성과 책임성 두 가지 관점에서 봐야 한다. 정확성 측면에서 허위 정보와 환각 생성 여부를 보는 '트루스풀QA(TruthfulQA)' 평가를 보면 인간 오답률은 6%인 반면 GPT-4도 41%에 달해, 고위험 의사 결정에 요구되는 신뢰성에는 아직 미치지 못한다. 물론 모델 성능이 개선되면 상당 부분 나아질 여지가 있다. 그러나 더 근본적인 것은 책임 문제다. AI가 잘못 판단했을 때 책임 소재가 불분명하면 최종 결정권은 사람에게 남을 수밖에 없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AI의 보조 효용은 높아지겠지만, 고위험 M&A 딜의 최종 결정과 책임은 제도적으로 사람 영역으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노성호 자본시장연구원 AI·디지털금융연구센터 센터장 - 서울대 경제학, 미국 메릴랜드대 경제학 석·박사, 현 자본시장연구원 금융산업실 연구위원, 현 금융감독원 금융분야 AI 위험대응 TF 실무 워킹그룹 자문위원, 현 한국신용정보원 금융권 AI 플랫폼 자문위원, 전 미국 상장기업회계감독위원회(PCAOB) 선임 금융경제학자 /사진 노성호

AI가 딜 메이커의 일을 '대체'하기보다 '증폭'시킨다고 봐야 하나. 인력 구성에는 어떤 변화가 예상되나.

"현시점에서는 대체보다 증폭에 가깝다. 골드만삭스의 GS AI 어시스턴트는 직원이 문서 작성 시간을 줄이고 전략적 판단에 집중하도록 돕는 보조 도구로 활용되고, 모건스탠리·JP모건의 생성 AI(Generative AI)도 리서치 초안 준비와 고객 응대 속도를 개선하는 방향으로 쓰인다. 뱅커의 핵심 역량인 관계와 판단은 여전히 사람 몫이다. 다만 조직 구조에는 변화가 예상된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반복적이고 정형화된 과업, 전문성이 낮은 초급 인력이 담당하던 업무에서 AI 도입 후 고용이 감소하는 현상이 발견되고 있다. 정형 업무로 경험을 쌓던 주니어 단계 비중이 줄고, 검증·판단·책임을 맡는 시니어 중심으로 무게중심이 옮겨갈 수 있다. AI 도입의 영향은 일자리 총량 감소보다 직무 구성 재편으로 이해하는 편이 적절하다."

국내 금융사가 자체 R&D보다 외부 기술에 의존하는 '외주화' 구조를 평가한다면.

"기회와 위험이 동전의 양면처럼 공존한다. 금융 투자 관련 AI 특허 출원인 약 67%가 비상장 SaaS(Software as a Service·서비스형 소프트웨어) 스타트업으로, 금융사가 외부 기술에 의존하는 구조가 이미 형성되고 있다. 기회 관점에서는 최신 AI 기술을 낮은 비용으로 도입해 자체 개발 부담 없이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 그러나 기술 공급자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는 만큼 제삼자 리스크 관리가 핵심 과제로 부상한다. 공급 업체의 안정성, 데이터 보안, 서비스 지속 가능성을 관리하는 역량이 곧 경쟁력이 될 것이다."

'AI발 M&A 딜 시대'가 본격적으로 확장할 때 한국 자본시장에서 달라질 점은.

"우선 AI 활용 편중이 심화하는 동시에 격차를 메우려는 노력도 치열해진다. 자산 관리, 투자 리서치 같은 정형화된 영역에서는 자동화가 빠르게 상용화되는 반면, 투자은행·사모펀드(PEF)처럼 비정형 데이터가 많은 부문에서는 고품질 데이터를 어떻게 확보하느냐가 AI 혁신의 핵심 병목이 된다. 아울러 금융기관과 비금융 AI 인프라 기관의 협력, 제도와 지배구조의 중요성이 더 강조된다. 올해 시행된 AI 기본법과 금융권 AI 가이드라인에 따라 금융기관은 설명 가능성, 책임성, 윤리성 요건을 갖춘 다층적 통제 체계를 정비해야 한다. 데이터 인프라, 외부 기관과 협업 구조, 지배구조를 누가 먼저 정비하느냐가 향후 자본시장 경쟁 구도를 가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