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들이 정상회의를 계기로 대규모 방산 계약을 쏟아냈다. 글로벌 안보 위기 속에서 방산 공급망을 동맹 내부로 결속하는 '카르텔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는 분석이다. 최근 한국이 60조원 규모 캐나다 차기 잠수함 사업에서 고배를 마시며 나토의 높은 벽을 실감한 가운데, 정부가 나토와 추진 중인 '조달 기본협정'이 동맹의 장벽에 균열을 낼 수 있을지 주목된다.

7일(현지시각) 로이터통신과 디펜스인더스트리유럽 등에 따르면, 나토 회원국 방산업체들은 이날 튀르키예 앙카라에서 열린 나토 국방포럼에서 대규모 조달 계약과 파트너십을 일제히 체결했다. 현지 매체들은 "이날 발표된 핵심 계약들은 회원국 간의 광범위하고 긴밀한 협력 관계를 보여준다"고 했다.

이재명 대통령과 김혜경 여사(오른쪽)가 7일(현지시간) 튀르키예 앙카라 대통령궁에서 열린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 부부 주최 공식 환영 만찬에서 참가국 정상 부부들과 함께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NATO 제공

이번 포럼에서는 다양한 방산 분야의 대규모 협력이 가시화됐다. 먼저 나토는 스웨덴 방산업체 사브의 공중 조기경보통제기(AWACS) '글로벌 아이(GlobalEye)' 10대를 도입하기로 했다. 글로벌 아이는 확장형 레이더와 첨단 센서, 다중 영역 지휘통제 시스템을 갖춘 기체다. 스텔스기와 드론, 탄도미사일, 극초음속 미사일 등을 원거리에서 탐지할 수 있다. 캐나다 봄바디어의 '글로벌 6500' 제트기를 기반으로 제작되며, 대당 가격은 4억~4억5000만달러(약 6000억~6800억원)다.

지상 화력 분야에서는 미국과 독일의 동맹이 굳건해졌다. 미국 록히드마틴과 독일 라인메탈은 독일 현지에 '에이태큼스(ATACMS)' 지대지 미사일 생산기지를 구축하기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사거리 약 300㎞의 에이태큼스가 미국 영토 밖에서 생산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아울러 라인메탈은 우크라이나 지원을 위한 수천만유로 규모의 155㎜ 포탄 추가 공급 계약도 함께 공개했다.

공중 기동 및 감시 자산의 공동 확충도 이어졌다. 나토는 작전 유연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에어버스 'A400M' 기종 기반의 새 전략수송기 편대를 출범하고, 'A330 다목적 공중급유기(MRTT)' 1대를 추가 구매하기로 했다. 이와 함께 노르웨이, 핀란드, 독일, 덴마크 4개국은 미국 노스롭그루먼의 고고도 무인 정찰기 '트라이튼'을 최대 5대 공동 도입한다. 마르크 뤼터 나토 사무총장은 "우리는 함께할 때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다"며 동맹 간 결속을 강조했다.

방산업계는 이번 무더기 계약을 두고 향후 서방 안보 공급망을 나토 내부에서 자급자족하겠다는 신호탄으로 해석하고 있다. 한 방산업계 관계자는 "회원국들이 증액된 군비로 서로의 무기를 사주며 '밀어주고 끌어주는' 분위기가 팽배하다"며 "상호 계약을 통한 내부 결속은 앞으로 더욱 가속화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실제로 최근 캐나다가 차기 잠수함 사업(CPSP)의 우선협상대상자로 한국의 한화오션 대신 독일의 티센크루프마린시스템스(TKMS)를 낙점한 것 역시 이러한 '나토 우선주의' 맥락과 궤를 같이한다. 한화오션의 잠수함은 가성비, 납기, 성능 면에서 우위를 인정받았음에도, 나토 동맹국 간의 '완전한 상호 운용성'을 전면에 내세운 독일의 벽을 넘지 못했다. 캐나다 마크 카니 총리는 나토 정상회의 참석 직전 이 같은 결과를 전격 발표하며 동맹 결속의 상징성을 더했다.

이처럼 장벽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정부는 나토와의 '조달 기본협정' 체결을 위한 공식 협상에 착수하며 정면 돌파를 시도하고 있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이날 "세계 최대 규모의 나토 방산 시장 진출을 위한 발판을 확보한 것"이라며 "협정 체결 시 연 15조원으로 예상되는 나토 공동 조달 시장에 우리 기업이 참여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이 마련되는 것"이라고 밝혔다.

국내 방산업계는 일단 정부의 협상 개시를 환영하면서도, 실효성 있는 후속 조치가 담겨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방산업계 관계자는 "나토가 전 세계 방산 시장의 절반 이상(55%)을 차지하는 만큼 조달 기본협정 같은 돌파구 마련은 필수적"이라면서도 "다만 혈맹으로 묶인 나토 내부의 진입 장벽을 완전히 허물 만큼의 강력한 구속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는 지켜봐야 할 대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