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EV) 시장의 캐즘(Chasm·일시적 수요 정체) 장기화로 보릿고개를 넘던 배터리 3사(LG에너지솔루션·삼성SDI·SK온)가 에너지저장장치(ESS)를 지렛대로 삼아 2분기 반격에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확충에 따른 전력망 안정화 수요가 급증하고 미국 내 첨단제조 생산세액공제(AMPC) 혜택이 맞물려 실적 개선을 이끌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6일 업계에 따르면 LG에너지솔루션(373220)은 오는 7일 2분기 실적을 발표할 예정이다. 삼성SDI(006400), SK이노베이션(096770)(SK온) 등은 이달 마지막 주로 실적 발표 일정을 조율하고 있다.
증권가에서는 LG에너지솔루션이 2분기 흑자 전환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국내 증권사가 최근 1개월 동안 예측한 LG에너지솔루션의 2분기 예상 영업이익 컨센서스는 2052억원으로 집계됐다.
LG에너지솔루션은 지난해 4분기와 올해 1분기에 각각 영업손실 1220억원, 2078억원을 기록해 부진한 실적을 냈다. LG에너지솔루션의 2분기 실적 개선 배경에는 ESS가 있다. 상업용·전력망용 ESS 배터리 생산이 늘어나 AMPC 수령액이 늘어날 예정이다.
AMPC는 현지에서 배터리 셀, 모듈을 생산하는 기업에 미국 정부가 사실상 현금 보조금을 주는 제도다. 이진명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미국 내 ESS 생산량 증가로 2분기 AMPC 규모만 전 분기(1898억원) 대비 38% 증가한 2620억원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메리츠증권 리서치센터는 LG에너지솔루션의 2분기 AMPC 규모를 2284억원, 한국투자증권은 2260억원으로 각각 추산했다.
미국 대법원의 상호 관세 위법 판결에 따른 환급도 수익성 개선에 기여할 전망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약 3000억원 규모 환급을 신청했고, 1000억원 정도를 돌려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삼성SDI 역시 7개 분기 만의 흑자 전환이 유력한 상황이다. 이 회사는 지난해 3분기 영업손실 5913억원을 기록한 후 4분기 2992억원, 올해 1분기 1556억원으로 적자 폭이 줄어드는 흐름을 보였다. iM증권은 2분기 예상 영업이익으로 70억원을 추정했다.
스텔란티스와의 미국 인디애나 합작법인인 스타플러스에너지 공장 라인 일부를 삼원계(NCA) ESS용으로 전환한 게 실적 개선에 긍정적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AI 서버용 배터리백업유닛(BBU) 수요 급증으로 소형 전지 부문의 수익성도 개선됐을 가능성이 크다.
SK온도 2분기 실적이 개선됐을 것으로 점치는 의견이 많다. 다만 다른 회사와 달리 적자가 줄어드는 정도다. KB증권 리서치센터는 2분기 배터리 부문 영업손실을 AMPC를 포함해 2150억원으로 추산했다. LS증권, iM증권은 2분기 예상 영업손실로 각각 1960억원, 3030억원으로 내다봤다. 지난 1분기 배터리 부문 영업손실은 3292억원이었다.
SK온의 2분기 실적에 ESS 판매는 잡히지 않는다. 전기차 배터리 판매가 늘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SK온은 3분기부터 미국 현지 공장을 활용해 ESS 생산에 들어갈 예정이다. 올해 SK온의 글로벌 ESS 수주 목표는 20GWh 이상이다. 유휴 설비를 ESS용으로 돌려 가동률을 끌어올리고, AMPC 보조금을 극대화하겠다는 구상이다. 리튬인산철(LFP) 배터리 수주에도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ESS가 배터리 업계의 구원투수로 떠오른 배경에는 미국의 대중(對中) 견제 정책이 자리 잡고 있다. 미 행정부가 중국산 ESS에 고율 관세를 부과하고, 해외우려집단(FEOC)에서 조달한 부품, 핵심 광물 비율을 엄격히 제한하면서 비중국계인 한국 기업에 시장이 크게 열린 것이다.
향후 전망도 밝은 편이다. 미국 청정전력협회(ACP)에 따르면 올 1분기 미국 신규 ESS 설치량은 8.4기가와트시(GWh)로 1분기 기준 역대 최대치를 경신했다. 글로벌 시장조사 기관 GGII는 AI 데이터센터용 ESS 배터리 출하량이 2025년 12GWh에서 2030년 272GWh로 폭발적으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다만 기업들은 국내 배터리 산업이 살아나기 위해선 정부의 실질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를 지속적으로 내고 있다. 세액 지원 중에서도 직접 환급이 필요하다는 게 골자다. 국내 배터리 셀·소재·부품 기업은 현재 대다수가 적자다. 세액공제율이 아무리 높아도 낼 세금이 없으면 혜택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이 이들이 직접 환급을 원하는 이유다.
배터리 업계 한 관계자는 "국내 배터리 산업은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유럽 산업가속화법(IAA) 등 외부 정책 변수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며 "중국 정부와 기업이 '팀 차이나'로 움직이는 것처럼 한국도 정부·기업 합동 태스크포스(TF)를 만들어 종합 지원 정책을 만드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