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아라비아가 아시아로 수출하는 원유의 6월 판매 가격을 인하한 가운데, 추가로 가격이 내려갈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최근 석유수출국기구(OPEC)를 탈퇴한 아랍에미리트(UAE)가 원유를 싼 값에 수출할 가능성이 커지자, 아시아 지역 고객을 놓치지 않기 위해 선제적인 조치에 나선 상황이다.

사우디아라비아 수도 리야드의 킹 압둘라 금융지구에 위치한 사우디아라비아 국영 석유회사 아람코 본사. / AFP 연합뉴스

11일 블룸버그 등에 따르면 사우디 국영 석유회사인 아람코는 아시아 판매용 주력 유종인 '아랍 라이트'의 6월 인도분 공식 판매 가격(OSP·Official Selling Price)을 5월 인도분보다 4달러 낮춘 배럴당 15.5달러로 책정했다.

OSP는 산유국이 지역별로 기준이 되는 유가에 할증 또는 할인을 얼마나 할 지 나타내는 가격이다. 아람코는 기준 유가인 두바이유와 오만유의 평균 가격에 OSP를 더하거나 빼서 판매 가격을 정한다. 6월 OSP가 15.5달러라는 것은 6월 두바이유와 오만유의 평균 가격에 15.5달러를 더 붙여서 판매한다는 뜻이다.

사우디는 미국과 이란의 전쟁으로 호르무즈 해협이 막혀 석유 공급에 차질을 빚자, 지난달 초 5월 선적분 아랍 라이트 OSP를 역대 최고 수준인 19.5달러로 인상한 바 있다. 아람코의 아시아 수출용 원유 OSP는 올 들어 3월까지 0달러대였지만, 4월에는 2.5달러, 5월 19.5달러로 수직 상승했다.

사우디는 현재 호르무즈 해협 반대편에 위치한 홍해 연안의 얀부항(港)으로 연결되는 파이프라인을 통해 원유를 일부 수출한다. 전쟁으로 해협이 막혀 석유 수출에 차질을 빚자 5월 OSP를 큰 폭으로 올렸지만, 6월에는 다시 소폭 낮추기로 한 것이다.

정유업계에서는 6월 이후에도 아람코가 OSP를 계속 낮출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OPEC을 탈퇴한 UAE가 원유 생산을 늘리고 가격을 인하해 아시아에서 시장 점유율을 높일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지난달 28일 UAE는 이달 1일부로 OPEC을 탈퇴한다고 발표했다. UAE의 하루 원유 생산 능력은 480만배럴이지만, 그 동안 OPEC의 제약을 받아 320만배럴까지만 생산해 왔다. UAE는 내년 원유 하루 생산량을 500만배럴까지 끌어올릴 예정이다. UAE는 또 호르무즈 해협을 거치지 않고 인도양의 푸자이라항에서 바로 수출할 수 있어 사우디 등 다른 중동 국가보다 유리한 상황이다.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된 이후 아시아 지역 정유사들이 비(非)중동산 중질유 확보에 나선 것도 아람코가 OSP를 낮출 수밖에 없는 요인으로 분석된다. 한국·중국·일본 등 아시아 국가들은 사우디 원유 수출의 80% 이상을 차지한다.

김태환 에너지경제연구원 석유정책연구실 실장은 "아시아 지역 바이어들이 브라질과 캐나다에서 나오는 중질유를 수입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며 "사우디가 OSP를 인하한 것은 아시아 고객사들을 지키기 위한 조치로 보인다"고 말했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미국과 이란의 휴전 협상이 진전돼 중동 정세가 안정을 찾을 경우 사우디는 OSP를 더욱 낮출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