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 최고 가격제 시행 이후 정부와 정유업계가 손실 보전 문제를 두고 치열한 물밑 수 싸움을 벌이는 가운데 손실 보전의 기준이 되는 석유 제품의 가격 산정 방식을 두고 입장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 정유사가 보유한 재고 자산의 가치 하락분까지 보상 범위에 포함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양측의 셈법이 더욱 복잡해지고 있다.

3일 증권업계의 실적 추정치 등을 보면 국내 4대 정유사인 SK이노베이션·GS칼텍스·에쓰오일·HD현대오일뱅크의 올해 1분기 영업이익은 각각 1조원대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중동 사태로 국제 유가가 급등하자 기존에 싸게 사온 원유로 만든 석유 제품 가격이 오르면서 일시적으로 이익이 늘어난 영향이다.

한국석유공사 여수비축기지에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 국영석유사(ADNOC)의 원유 200만배럴이 입고되고 있다./한국석유공사 제공

에너지경제연구원은 호르무즈 해협에 정상 통항이 가능해지면, 국제 유가가 내려갈 것이라 전망한다. 3월 초 배럴당 80달러 수준에서 움직이던 두바이유는 중순 이후 150달러 안팎으로 2배가량 뛰었다. 최근 미국과 이란이 휴전 상태에 돌입하면서 이날 105달러 선으로 떨어졌다.

정유업계는 유가 안정화에 따른 실적 악화를 우려하고 있다. 전쟁이 끝나서 전쟁 기간 동안 비싸게 구매한 원유 가치가 폭락하면 정유사의 재고 평가 손실 규모가 커지기 때문이다. 결산 과정에서 원가 이하 판매가 예상되거나 판매 불가능한 재고 자산은 바로 평가 손실로 처리된다. 즉 분기마다 재고 자산 평가액이 바로 산출된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장기 계약을 맺은 중동산 원유를 받지 못한 정유사들은 사우디, 미국 등 대체 수입처에서 웃돈을 주고 스폿(현물 거래) 물량을 확보해 왔다. 정세 불안, 운송 차질에 따른 프리미엄을 감안하면 일부 물량은 배럴당 140∼150달러 수준에서 구매한 것으로 추정된다. 국내 정유사들이 4∼5월 확보한 대체 원유 물량은 약 1억1000만 배럴에 달한다.

실제 국제 유가 변동에 따라 정유사 실적도 출렁인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이 발발했던 2022년 1분기 국내 정유 4사의 합산 영업이익은 4조7668억원이었고, 재고 관련 이익 비율이 전체의 40%에 달했다. 급등했던 유가가 급락하자 원유 재고가 발목을 잡으면서 4분기에는 4사 이익이 일제히 급감했다.

2분기 실적 악화가 예상되자, 정유업계에서는 재고 자산에 대해서도 손실 보상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조심스럽게 내놓고 있다. 정부가 앞서 석유 최고 가격제 시행에 따른 정유업계의 손실 보전을 약속했고, 정부 정책에 협조하는 과정에서 백방으로 비싼 원유를 구했다는 이유에서다.

정유 4사는 자체적인 손실액 산정에 착수했는데, 실제 보전 가능한 금액과 지급 시점은 정해지지 않은 상황이다. 정부는 정유사 손실 보전을 위해 4조2000억원의 목적 예비비를 편성한 상태다. 정산은 분기별로 이뤄지며, 정유사가 자체 산정한 손실액을 정부에 제출하면 정부는 '최고액 정산위원회'의 검증을 거쳐 금액을 확정하게 된다.

현재 쟁점은 휘발유, 경유 등 개별 석유 제품 원가 산정 방식이다. 정부는 원유 도입 원가를 기준으로 손실 보전을 하겠다는 입장인 반면 업계는 연산품인 석유 제품의 특성상 개별 원가 측정은 불가능하다며 제품가를 기준으로 보전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산업통상부는 정유사가 제품 원가를 자체 산정해 제출하면 원가산정위원회 검토를 거쳐 손실을 확정하겠다는 입장이다.

전문가들은 정부와 정유업계 간 손실 보전을 둘러싼 논쟁이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박동흠 회계사는 지난 28일 대한석유협회 기자아카데미에서 "이제부터 국제 유가가 떨어질 일만 남았는데, 정유사들은 비싸게 사온 원유를 손실 처리해야만 하는 상황이 됐다"며 "재고 자산 평가 손실이 나오면, 이 부분에서도 손실 보전 이야기가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