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원자력 발전소 건설 업체는 한국산 원자로와 기술을 선호한다. 그런데 한국의 진정한 강점은 원자로 설계가 아니라 건설 문화다. 한국인의 워크 에식(Work Ethic·직업 윤리)은 특별하다."
메수트 우즈만(Mesut Ouezman) 미국 '페르미 뉴클리어(Fermi Nuclear)' 대표는 '2026 한국원자력연차대회' 참석을 위해 찾은 부산 벡스코에서 지난 22일 조선비즈와 만나 이렇게 말했다.
우즈만 대표가 한국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내놓는 것은 과거 경험에 기반한다. 우즈만 대표는 페르미 뉴클리어 대표를 맡기 전까지 한국·미국·중국·아랍에미리트(UAE) 등에서 20년 이상 원자력 프로젝트를 맡았던 원전 전문가다. 그는 한국의 첫 해외 원전 사업인 UAE 바라카 원전의 엔지니어링 담당 부사장을 지내며 한국 원전 전문가가 일하는 모습을 곁에서 봤다.
우즈만 대표는 미국과 한국의 건설 현장을 비교하며 한국인의 직업 윤리를 추켜세웠다. 우즈만 대표는 "만약 미국 건설 현장에서 문제가 생기면 누가 책임을 져야 하는지, 누가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지부터 따지기 시작한다"며 "합의점을 찾는 동안 공사는 중단된다"고 말했다.
그런데 우즈만 대표가 바라카 원전 건설 현장에서 본 한국인은 달랐다. 그는 "한국 엔지니어들은 책임을 전가하지 않고 밤을 새우거나, 주말을 반납하면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집중했다"며 "자신이 맡은 프로젝트에 대한 주인 의식, 책임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정말 특별하다"라고 강조했다.
바라카 원전은 한국전력공사가 한국수력원자력, 현대건설, 삼성물산, 두산에너빌리티 등을 포함한 '팀 코리아'를 이끌고 2009년 12월 수주한 해외 원전 1호 사업이다. 총용량은 5600메가와트(MW)로 총 4호기로 구성돼 있다. 팀 코리아는 2012년 7월, 1호기 착공을 시작으로 마지막 4호기가 2024년 9월 상업 운전을 개시한 약 15년 동안 원전 건설을 맡았다.
우즈만 대표는 "한국은 전 세계에서 원전 관련 독자 기술은 물론 '정해진 예산 내 적기 준공(On Time, On Budget)' 능력을 갖춘 유일한 나라"라며 "원전 기술이나 설계를 넘어 한국의 원전 건설 방식은 윤리적이다. 한국 원전 업계의 차별화 요소이자 페르미 뉴클리어가 한국 기업과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 맨해튼 절반 크기에 대형 원전 4기 등 건설…"현대건설·두산에너빌리티 등과 협업"
페르미 뉴클리어는 미국 민간 에너지 개발사인 '페르미 아메리카'의 자회사다. 페르미 아메리카는 '프로젝트 마타도르(Project Matador)'라는 이름 아래 미국 텍사스주 아마릴로 외곽, 약 7570에이커 (약 30.6 km²) 부지에 세계 최대 복합 전력 단지를 만들고 있다. 부지 면적은 뉴욕 맨해튼 육지 면적(약 59 km²)의 절반을 넘어선다.
프로젝트 마타도르는 대형 원전 4기(4GW), 소형모듈원자로(SMR, 2GW), 가스 복합화력(10GW), 태양광 및 배터리에너지저장시스템(1GW) 등 총 17GW 규모의 전력 공급 인프라를 갖추는 사업이다. 인공지능(AI) 부상으로 전력 수요가 급증한 상황에서 기존의 공공 전력망에 의존하지 않고 민간 주도로 전력을 생산·소비하는 것이 목표다. 사유지에 자체 발전 시설을 지어 전력을 직접 공급하는 것이 사업의 골자다.
프로젝트 마타도르의 핵심은 원전 건설이다. 페르미 뉴클리어는 프로젝트 마타도르에 들어설 웨스팅하우스의 AP1000 원자로 4기 건설을 담당한다. 이를 위해 페르미 뉴클리어는 한국 기업과 긴밀한 협력을 진행 중이다.
현대건설은 지난해 10월 페르미 뉴클리어와 대형 원전 4기 건설에 대한 기본설계 용역 계약을 체결했다. 현대건설은 기본설계와 본공사 준비를 병행하며 올해 상반기에 설계·조달·시공(EPC) 계약을 체결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또한 페르미 뉴클리어는 두산에너빌리티와 주기기, 원전 증기 발생기 제작을 위한 소재 구매 계약을 체결했다.
우즈만 대표는 "한국은 페르미 뉴클리어의 전략적 파트너"라며 "한국의 원전 건설 기술뿐만 아니라 직업 윤리를 페르미 뉴클리어에 도입하고 싶다"고 말했다.
◇ "원전 건설에 AI 도입, 꾸준히 원전 건설한 韓 데이터 필요"
우즈만 대표는 한국 원전 업체와 협력해야 하는 이유로 직업 윤리 외에 원전 건설 관련 데이터를 꼽았다. 페르미 뉴클리어가 원전 건설에 인공지능(AI) 도입을 추진 중인 가운데 AI 활용을 위해선 데이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우즈만 대표는 "데이터로 AI를 학습시켜 원전 건설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위험 요인을 파악·예방할 수 있다"며 "AI는 데이터가 없으면 무용지물인데, 미국과 유럽이 원전 건설을 중단했을 때도 원전을 계속 건설한 한국은 원전 건설·공정·안전 관련 데이터를 보유하고 있기에 페르미 뉴클리어에 필요한 존재"라고 말했다.
우즈만 대표는 "페르미 뉴클리어와 페르미 아메리카는 미국 기업이지만, 한국 파트너와의 미래를 구상하고 있다"며 "한국의 원전 건설 역량과 미국의 AI 혁신이 만나 새로운 역량을 창출할 것이다. 우리는 경쟁이 아니라 협력 관계"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