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사태로 인한 기름값 폭등을 막기 위해 정부가 석유 최고가격제를 시행 중인 가운데, 손실 보전 범위를 놓고 정부와 정유사가 다른 그림을 그리고 있어 향후 치열한 수싸움이 벌어질 전망이다. 무엇보다 정유사는 석유 최고가격제 시행으로 인해 잃어버린 기회비용도 손실 보전에 포함하길 희망하지만, 정부는 이를 고려하지 않고 있다.

15일 정유업계에 따르면 지난 3월 13일 이후 1·2차 석유 최고가격제가 시행된 4주 동안 정유 4사가 추정한 매출 손실액은 약 1조2000억원이다. 1차 석유 최고가격제를 시행한 2주 동안 약 3400억원, 2차 석유 최고가격제를 시행한 2주 동안 약 8200억원의 매출 손실을 봤다고 추정한 값을 합한 값이다.

정유업계는 정부가 정한 석유 최고가격이 아닌 국제 석유 제품 가격으로 주유소에 공급했을 때를 가정해 2025년도 기준 일일 평균 기름 판매량을 곱해 매출 손실액을 추정한다.

14일 서울 시내의 주유소 유가정보판. / 뉴스1

정유사 입장에선 국제 석유제품 가격이 급등한 상황에서 수출 물량을 늘리거나, 수출가에 맞춰 국내 가격을 설정할 경우 매출을 늘릴 수 있다. 하지만 정부는 석유 최고가격에 국제 석유제품 가격 상승분 전체를 반영하지 않았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을 공격하기 직전인 2월 27일 대비 1차 석유 최고가격을 발표하기 하루 전인 3월 12일까지 국제 시장에서 휘발유는 68.3%, 경유는 115.6% 상승했다. 하지만 정부가 발표한 1차 석유 최고가격은 휘발유는 리터(L)당 1724원, 경유는 1713원이다. 주유소 마진을 리터당 200원으로 잡아도 2월 27일 대비 휘발유와 경유가 각각 13.7%, 19.8% 상승하는데 그치는 가격이다.

하지만 정부 입장에서 보면 정유사의 셈법은 상승한 국제 석유제품 가격에 판매했을 때를 가정한 기회비용에 그친다. 정유사가 생각하는 매출 범위와 정부의 생각이 충돌할 수 있는 지점이다. 이와 관련 산업통상부 관계자는 "국제 석유제품 가격에 대해선 보통 사람들의 상식과 논리에 따를 것"이라며 전체 상승분을 반영하지 않을 것임을 시사했다.

정부는 석유 최고가격제 시행 당시 정유사가 입은 손실을 보전하기 위해 재정지원을 하겠다고 발표했다. 다만, 정유사가 손실을 보전받기 위해서는 원가 등을 포함해 손실액을 산정, 공인 회계법인의 심사를 거쳐 산업통상부에 신고해야 한다. 이후 산업통상부는 회계·법률·석유시장 전문가가 참여하는 '최고액 정산위원회'를 구성해 정유사가 제시한 손실액을 검증해 적정 손실액을 산정할 예정이다.

정유업계는 정부가 말하는 원가가 국제 원유 가격인지, 원유 수입 가격인지 등 기준 자체를 알 수 없어 손실액 산정을 놓고 정부와 이견을 보일 수 있을 것이라 예상한다. 또한 정유사 별로 원가를 산정하는 기준 자체가 달라 정부가 일률적인 기준을 적용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한다.

A 정유사의 경우 원재료 가격을 재고의 평균 가격을 기준으로 산정한다. 반면 B 정유사는 먼저 들여온 원유를 먼저 정제시설에 투입한다는 가정 아래 원재료 비용을 계산한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정유사별로 원유 도입 시기도 각각 다른 만큼 획일적인 기준을 적용하기 쉽지 않고, 정유사별 사정을 전부 고려하기도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도 손실 보전과 관련해 고민하는 것으로 보인다.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은 전날 페이스북에 올린 석유 최고가격제 관련 글에서 "손실 정산의 신뢰성 문제는 가장 민감한 지점이다. 이를 위해 별도의 정산위원회와 외부 회계 검증 절차가 마련되어 있다"면서도 "다만 설계와 별개로 실제 원가 산정과 마진 계산을 둘러싼 논쟁 가능성은 여전히 존재한다. 이 부분은 향후 정책 신뢰를 좌우할 핵심 변수"라고 말했다.

정부는 정유사의 손실 보전을 분기 단위로 진행할 예정이다. 정유사의 준비 상황에 따라 이르면 6월에 정산이 이뤄질 전망이다. 산업통상부 관계자는 "정부가 실무적으로 준비를 빨리할수록 정산은 빨리 이뤄질 것"이라며 "원가에 적정한 필요 이윤을 더해 손실 보전이 이뤄질 텐데 추후 기업과 논의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정부는 '중동 전쟁 위기 극복을 위한 2026년 추가경정예산안'을 통해 석유 최고가격제 시행에 따른 정유사 손실 보전액을 5조원 규모로 잡았다. 양기욱 산업통상부 산업자원안보실장은 지난 9일 "석유 최고가격제가 얼마나 길어질지 현재로서 예상하기 어렵지만, 아직 한 달 반 차라 재원 소비 범위가 예상을 벗어났다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