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이란의 전쟁 장기화로 불똥이 튀지 않을까 초조하게 상황을 지켜보던 국내 렌터카 업계가 안도의 한숨을 쉬고 있다. 전쟁에 따른 유가 급등으로 국내 항공편 유류할증료가 인상되면서 국내 여행 수요가 줄어들 것이라는 우려가 많았지만, 오히려 여행객 증가로 예약이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14일 렌터카 업계에 따르면 롯데렌탈의 5월 제주 예약률은 40%를 넘어섰다. SK렌터카도 이와 비슷한 수준의 예약률을 기록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예약률은 업체가 보유하고 있는 렌터카 총 대수 중 예약된 차량의 비율을 뜻한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해 9월 기준으로 롯데렌터카는 제주에서 3931대, SK렌터카는 3724대를 각각 보유하고 있다.
제주 렌터카의 경우 1개월 전부터 예약이 시작된다. 4월 초에 5월 예약이 절반 가까이 이뤄진 것은 예년에 비해 여행 수요가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롯데렌탈 관계자는 "현재 제주의 렌터카 예약 상황은 최대 성수기인 8월과 유사한 수준을 보이고 있다"며 "90% 이상의 가동률(전체 보유 차량 중 가동되고 있는 차량의 비율)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전체 지역의 4월 예약률도 안정적인 흐름을 보이고 있다. 롯데렌탈은 3월 가동률이 전년 동월 대비 5%포인트 상승했고, 4월 예약률은 이미 80%를 초과했다고 밝혔다. 4월 예약 건수는 2만대에 육박하며, 전년 대비 24% 상승했다. 5월 예약 건수 또한 1년 전보다 47% 상승한 약 8000대를 기록 중이다. SK렌터카도 전년과 유사한 수준의 가동률과 예약률을 기록했다고 설명했다.
당초 렌터카 업계에서는 미국과 이란의 전쟁에 따른 유가 급등으로 '유탄'을 맞을 수 있다는 우려가 많았다. 항공유 가격 상승으로 항공사들이 국내선 항공권 가격에 반영하는 유류할증료가 크게 오르면서 국내 여행 수요가 위축될 것이라는 이유에서였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다음 달부터 국내선 유류할증료를 기존 7700원에서 3만4100원으로 약 4.4배 인상한다고 밝혔다. 이 때문에 제주에 있는 렌터카 업체들이 타격을 입을 것이란 관측이 제기됐었다. 상당수 제주 방문객이 항공권, 숙박과 함께 렌터카도 예약하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예상과 달리 예약 실적이 호조를 보이고 있는 것에 대해 해외 여행을 계획했던 사람들이 국내로 눈을 돌리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국내선의 유류할증료 인상 폭이 국제선보다 큰 편이지만, 금액 기준으로 보면 국제선 할증료의 부담이 훨씬 크기 때문에 해외 여행 수요는 줄어들고 국내는 늘었다는 것이다.
대한항공의 경우 인천을 출발해 미국 뉴욕과 댈러스, 보스턴, 시카고, 애틀란타, 워싱턴 D.C. 등으로 가는 미주 노선의 편도 기준 유류할증료를 지난달 9만9000원에서 이달에는 3배가 넘는 30만3000원으로 올렸다. 왕복 항공권 기준으로 보면 유류할증료만 60만6000원이 붙는 셈이다.
다른 노선들의 항공권에 적용되는 유류할증료도 일제히 올랐다. 인천에서 로스앤젤레스(LA), 샌프란시스코 등 미국 서부로 가는 노선과 런던, 파리, 로마 등 유럽 노선의 편도 기준 유류할증료는 7만9500원에서 27만6000원으로 올라 3배 이상이 됐다.
실제로 이달 들어 여러 항공사들의 제주 노선 운항 예약률은 지난해보다 큰 폭으로 증가한 것으로 전해졌다. 국내 1위 LCC인 제주항공의 경우 이달 들어 12일까지 탑승률은 97%로 지난해 같은 기간 탑승률(80%대 후반)과 비교해 10%포인트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LCC 업계 관계자는 "지난해의 경우 2024년 말 무안공항 사고 여파로 인해 제주 노선 예약률이 많이 줄었는데, 최근에는 수요가 예년 수준 이상으로 늘었다"고 말했다. 그는 "제주 노선은 보통 4월부터 성수기가 시작된다"며 "유류할증료 인상으로 해외 항공권 요금이 뛰면서 여행객들이 동남아 대신 제주로 발길을 돌려 성수기 수요가 회복된 것 같다"고 덧붙였다.
다른 LCC 업계 관계자도 "이달부터 제주 노선은 거의 만석(滿席)을 기록하고 있다"며 "기온이 오르면서 수학여행 등 계절적 수요가 크게 늘어난 점도 제주 여행객 증가에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렌터카 업계는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가 발생했던 지난 2020년부터 2023년에도 큰 호황을 누린 바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 규제는 완화됐지만, 해외 출국은 막히면서 여행 수요가 제주를 포함한 국내로 쏠렸기 때문이다.
롯데렌탈은 2022년 연결기준 매출 2조7394억원, 영업이익 3095억원을 기록하며 당시 최대 실적을 달성했었다. SK렌터카도 당시 매출 1조2466억원, 영업이익 951억원을 달성했다.
렌터카 업계 관계자는 "미국과 이란이 일단 휴전에 합의했지만, 여전히 불확실성이 큰 상황이라 해외여행 수요는 당분간 계속 위축될 가능성이 크다"며 "해외여행 수요의 국내 전환 효과로 인해 현 상황이 렌터카 업체들에게는 오히려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