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주도하는 석유화학 산업 재편이 예상보다 늦어질 전망이다. 앞서 정부는 1분기 말까지 대상 기업들이 최종 사업 재편안을 제출할 것으로 예상했으나, 울산·여수 지역 기업들은 아직 최종 사업 재편안을 마련하지 못한 상황이다.

31일 석유화학 업계에 따르면 울산(에쓰오일·대한유화·SK지오센트릭), 여수(LG화학·GS칼텍스) 산단은 계속 석유화학 사업 재편 방안을 협상하고 있다. 정부가 제시한 사실상 마감 기한은 이날까지였으나, 지배 구조, 감산 규모, 기업 가치 등을 두고 기업 간 이견이 커 최종 합의안을 도출하지 못했다.

여수 산단 내 NCC 2공장 모습/뉴스1

지난해 8월부터 정부는 '석유화학 산업 경쟁력 제고'를 목표로 기업들에 자발적인 구조 조정을 독려해왔다. 구조적 공급 과잉에서 벗어나기 위해 국내 나프타분해설비(NCC) 용량을 최대 370만톤(전체 생산량의 25%) 줄이고, 고부가가치 화학제품 생산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방향을 제시했다.

가장 먼저 충남 대산석유화학단지에 있는 대산 1호(롯데케미칼·HD현대케미칼·HD현대오일뱅크)가 사업 재편안을 제출했고, 정부는 2조1000억원 규모의 지원 방안을 약속했다. 이달 여수 1호(롯데케미칼·여천NCC·한화솔루션·DL케미칼)가 최종 재편안을 제출해 정부 승인을 기다리고 있다.

울산 산단은 기업 간 셈법이 복잡해 사업 재편 논의 속도가 더디다. 석유화학 업계가 에틸렌 생산량 감축을 고심하는 와중에 에쓰오일의 신규 설비인 '샤힌 프로젝트'가 가동을 앞두고 있어서다. 정부가 제시한 감축 목표를 고려하면 울산 지역에선 100만톤 이상이 줄어야 한다.

현재 각 사의 에틸렌 생산량은 연간 기준 SK지오센트릭 66만톤, 대한유화 90만톤, 에쓰오일 18만톤이다. 아람코가 9조2580억원을 투자한 샤힌 프로젝트가 연내 가동되면 에쓰오일에서는 연간 에틸렌 180만톤이 추가로 생산된다.

에쓰오일은 효율적인 생산 구조를 구축하기 위해 신규 설비를 감축 대상에서 제외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결국 연식이 오래된 대한유화, SK지오센트릭에서 설비 가동을 줄여야 하는데, NCC 설비 가치를 두고 이견이 크다. 울산 지역은 아직 다운스트림 설비 최적화 방안조차 마련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진다.

여수 2호도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앞서 LG화학이 NCC 일부를 GS칼텍스에 매각하고 합작 회사를 설립하는 방안을 제시했지만, 이후 진전이 없는 상황이다. 두 회사 간 이해관계가 달라 조율이 어려운 것으로 알려진다.

여수는 국내 최대 석유화학 단지로, 에틸렌 생산량이 연간 650만톤에 달한다. 이 중 LG화학 여수 공장이 208만톤, GS칼텍스가 90만톤의 생산 능력을 갖고 있다. GS칼텍스는 에틸렌 생산량이 적은 데다 정유 사업도 영위하고 있어 상대적으로 사정이 나은 편이다. 이와 달리 LG화학은 본업이 석유화학업이다.

GS칼텍스 지배 구조도 협상을 어렵게 하는 요인이다. ㈜GS가 GS에너지를 자회사로 두고, GS에너지는 미국 셰브론과 지분 50%씩 나눠 GS칼텍스를 갖고 있다. 만약 합작 법인이 설립되면, ㈜GS의 증손자회사에 해당한다. 현행 공정거래법상 손자회사는 증손자회사 지분을 100% 보유해야 해 합작 법인이 설립될 수 없는 구조다. 셰브론의 동의도 거쳐야 한다.

해당 기업들은 정부가 제시한 마감 기한을 넘겼으나, 구조 개편을 계속 논의한다는 입장이다. 다만 업계에선 '무임승차' 기업들에 대한 불만이 최고조에 달하고 있다. 한 석유화학 업계 관계자는 "다 같이 손해를 감수하겠단 것이었는데, 결국 이기적으로 사업 재편안을 제출하지 않은 기업만 경쟁사 감산의 반사이익을 누리지 않을까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작년에 정부가 '무임승차하는 기업에는 범부처 차원에서 단호하게 대응하겠다'고 말했는데, 원칙대로 적용돼야 한다"며 "자율 참여인 데다 마감 시한까지 넘겼으니, 아직 안 낸 기업들은 참여 유인이 더 낮아지지 않겠느냐"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