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아연이 24일 열린 제52기 정기 주주총회에서 최윤범 회장을 사내이사로 재선임했다. 이날 주총은 주주 명부 확인 과정에서의 중복 위임장 문제와 명부 기재 과정에서의 오류 등으로 인해 당초 예정보다 3시간이 넘어 시작되는 등 진통을 겪은 끝에 오후 6시가 돼서야 마무리됐다.

24일 오전 서울 중구 코리아나호텔에서 고려아연이 제52기 정기 주주총회를 진행하고 있다. /고려아연 제공

고려아연은 이날 오전 서울 중구 코리아나 호텔에서 주총을 열고 최 회장 재선임을 포함해 38건의 안건을 상정·의결했다. 이날 주주총회에는 전자투표와 위임장 제출을 포함해 3250명의 주주(1858만209주)가 참석했다. 이들이 보유한 주식은 의결권 있는 주식 총수의 91.14%에 달한다.

당초 고려아연은 이날 주총을 오전 9시부터 진행하려 했지만, 주주 명부 확인 과정에서의 중복 위임장 문제와 명부 통합 기재 과정에서의 오류 등을 이유로 3시간 넘게 지연됐다. 고려아연 관계자는 "주주 간 명부를 통합해 수기 작성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오류와 중복 위임장에 대한 이견으로 지연됐다"고 말했다.

고려아연은 이날 오전 7시쯤부터 최 회장 측과 MBK·영풍 측이 중복 위임장 여부를 확인하도록 했지만, 정오가 지나서야 절차가 마무리돼 주총이 개회됐다. 통상 주총은 중복 위임장을 무효로 처리하는 경우가 많지만, 고려아연 주총의 경우 경영권 분쟁이 진행 중인 만큼 공정성을 기하기 위해 유효성을 따지면서 개회가 늦어졌다.

이날 주총에서는 영풍이 보유한 10주에 대한 의결권을 놓고도 입씨름이 오갔다. 주총 의장을 맡은 박기덕 대표는 고려아연의 자회사인 호주 썬메탈홀딩스(SMH)가 영풍의 지분 10.30%를 갖고 있어 영풍의 고려아연 주식(10주)은 순환출자에 따라 의결권이 제한된다고 했다.

이에 영풍 대리인은 "주식회사가 아닌 외국 회사인 SMH를 상법상 자회사에 포함된다고 해석하는 것은 명시적 규정 없이 주주의 의결권을 제한하는 행위"라며 "당장 멈춰 달라"고 했다. 그러나 박 의장은 "앞선 법원의 가처분 판례에 따라 해당 주장은 받아들이기 어렵다"며 회의를 계속 진행했다.

하지만 개회 이후에도 중복 위임장 처리와 주주 명부 통합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서 수차례 정회가 반복됐다. 고려아연 주식 33만8210주를 가진 유미개발의 표가 중복 집계되기도 했고, 다른 주주의 주식 3만2327주가 잘못 기입돼 명부 수정이 이뤄지기도 했다. 명부는 확인 작업이 시작된 지 7시간 만인 오후 2시 13분이 돼서야 확정됐다.

주주명부를 둘러싸고 양측이 첨예하게 대립한 이유는 경영권 분쟁 상황에서 양측의 지분 격차가 3%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MBK·영풍 연합은 의결권 지분 약 42.10%를, 최 회장 측은 약 27.90%를 갖고 있다. 최 회장 측의 우호 지분으로 분류되는 미국 통합 제련소 프로젝트를 위한 전쟁부와의 합작법인 지분율 10.80%를 더하면 최 회장 측은 38.70%를 확보하고 있다.

나머지 19%는 국민연금과 외국계 기관 등이 보유하고 있다. 이 중 국민연금이 5.30%를 갖고 있지만, 국민연금은 최 회장 선임 안건 표결에는 참여하지 않기로 했다. 이 때문에 소액 주주들의 표심이 각 안건의 승인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다.

24일 오후 서울 중구 코리아나호텔에서 열린 제52기 정기주주총회에서 주주들이 외국인 주주들의 과소 표결 관련 처리에 대해 항의하고 있다. /양범수 기자

양 측은 외국인 주주 과소표결에 대한 처리 방식을 놓고도 갈등을 빚으며 10분 넘게 고성이 오가기도 했다. 논란이 된 과소표결은 집중투표제에서 선임 이사 수에 따라 배수로 부여된 의결권이 모두 행사되지 않아 발생한다.

해외 기관 투자자의 경우 특정 후보에 대해서만 의결권을 행사하기도 하는데, 고려아연은 해당 주주가 보유 주식의 일부에 대해서만 의결권을 행사한다는 의사를 밝힌 경우를 제외하고는 해당 주주의 표결에 총 의결권 수를 비례 배분하는 방식을 적용했다.

MBK·영풍 연합은 고려아연이 지난해 정기 주총과 마찬가지로 의결권 수를 비례 배분하지 않고 집계 기준 그대로 인정해야 한다면서 "기준 변경은 표결 결과에 영향을 미치기 위한 조치가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 주주는 "박기덕 의장은 주주총회를 모든 주주에게 평등하게 진행했는지 돌아보라"며 "이런 모든 문제의 중심엔 최윤범 회장이 있다. 최 회장을 선임하면 고려아연 거버넌스 회복이 불가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과소표결 문제가 회사의 방식대로 처리됐고, 집중투표제로 표결이 이뤄지면서 최 회장은 사내이사에 재선임돼 경영권을 방어하는데 성공했다. 최 회장은 전체 의결권 9299만3444표 중 16.78%의 동의를 받아 전체 후보 7명 가운데 2위로 재선임됐다.

24일 오전 고려아연 52기 정기주주총회가 열리는 서울 중구 코리아나호텔 앞에서 고려아연 노동조합이 피켓 시위를 벌이고 있다. /양범수 기자

이날 주총장 앞에서는 고려아연 노조가 영풍과 MBK를 비판하는 피켓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이들은 'MBK의 먹튀 경영과 무책임 경영이 노동자와 함께할 자리는 없다. 고려아연 경영 참여를 당장 중단하고 국가 기간 산업에서 철수하라' 등의 문구가 적힌 현수막을 들고 주총장 앞에서 농성을 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