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전쟁으로 인한 나프타(naphtha·납사) 공급 차질로 국내 석유화학 기업들이 줄줄이 생산 시설 가동을 중단하고 있다. 석유화학업계에선 보유한 나프타 재고량이 2주 치에 불과해 나프타 분해 시설(NCC) 가동을 중단하는 기업이 더 늘어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석유화학 산업의 쌀이라고 불리는 NCC가 가동을 멈추면, 중간재 생산이 끊어지면서 국가 경제 전반에 충격을 줄 수 있다. NCC는 나프타를 쪼개서 에틸렌, 프로필렌, 부타디엔 같은 기초 유분을 만드는 설비다. 이를 이용해 플라스틱, 비닐, 자동차 내장재 등 우리 주변의 물건들을 만들어 낸다.
23일 전남 여수 국가산업단지 소재 기업 등에 따르면 LG화학 여수공장은 이날부터 여수산단 내 NCC 2공장 가동을 중단했다. 나프타 공급이 원활해질 때까지 2공장을 멈추고, 1공장만 가동한다는 구상이다. 공장별 에틸렌 생산량은 1공장 연간 120만톤(t), 2공장 80만t가량이다.
여천NCC도 이날부터 올레핀 전환 공정(Olefin Conversion Unit) 가동을 중단했다. 나프타 분해 시설(NCC) 가동률이 60∼65%에 그치자, 생산량을 조정하는 차원에서 수요가 적은 공정부터 가동을 중단하기로 했다. 국내 최대 에틸렌 생산 기지인 여천NCC는 이달 4일 고객사에 '공급 불가항력(Force Majeure)'을 공식 선언하기도 했다.
롯데케미칼은 생산 시설 가동을 멈추는 대정비 작업(Turn Around·TA) 일정을 예정보다 앞당겼다. 애초 다음 달 18일로 예정된 대정비를 3주가량 앞당겨 오는 27일부터 시작한다. 나프타 공급이 어려운 상황에서 재고량도 많지 않아 원료 공급에 지장이 있을 것으로 보고, 정비 일정으로 대처한 것이다.
국내 나프타 수입량의 절반 이상이 통과하는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되면서 원재료를 공급받지 못한 영향이다. 한국화학산업협회에 따르면, 올해 1월 t당 595달러였던 나프타 가격은 이달 20일 1141달러로 뛰었다. 에틸렌도 705달러에서 1425달러로 폭등했다.
정부 주도로 석유화학업계 구조 조정이 진행되는 와중에 원재료 공급난이 더해지면서 NCC 설비 가동 중단을 결정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 지난해 8월부터 정부는 생산 능력을 4분의 1가량 감축하는 것을 목표로 석유화학 기업들의 구조 조정을 추진해 왔다.
지난해 8월 여천NCC 3공장이 가장 먼저 문을 닫았다. 이어 대산 1호 프로젝트 일환으로 롯데케미칼은 대산공장에 있는 연간 110만t 규모의 NCC 설비 가동을 향후 3년간 전면 중단하기로 했다. 대한유화 등 울산 석유화학 기업들의 NCC 설비 가동률도 크게 떨어진 것으로 전해진다.
한 석유화학업계 관계자는 "나프타 재고량이 2주일 치밖에 없다는 얘기가 많다"며 "원재료 가격이 오른 게 문제가 아니라 이마저도 구하지 못해 고객사에 물건을 납품하지 못할 상황을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