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이 고려아연의 경영권을 놓고 영풍과 분쟁을 벌이고 있는 최윤범 회장의 사내이사 선임을 사실상 반대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대해 고려아연 노조는 계획을 철회하라고 요구하며 최 회장 측을 옹호한 반면 영풍은 "국민연금이 현 경영 체제를 신뢰하지 않는다는 뜻"이라며 상반된 입장을 보였다.
20일 재계에 따르면 고려아연 노조는 이날 입장문을 내고 "국가기간산업을 투기자본에 상납한 국민연금의 기만적 결정을 강력히 규탄한다"고 밝혔다.
국민연금 수탁자책임 전문위원회는 지난 19일 제5회 위원회를 열고 오는 24일 열리는 고려아연의 주주총회 안건 중 최윤범 사내이사 선임, 황덕남 사외이사, 박병욱 기타비상무이사 선임에 대해 의결권 '미행사'를 결정했다.
해당 안건은 집중투표제에 따른 이사 선임에 관한 것이다. 집중투표제는 선임하려는 이사의 수만큼 의결권을 주주에게 부여하고 원하는 후보에게 몰아주는 방식으로 투표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를 말한다. 국민연금이 의결권을 행사하지 않기로 한 것은 사실상 최 회장의 재선임에 반대한 것으로 해석된다.
노조는 "국민연금이 최 회장의 재선임 안건에 미행사를 결정하고 투기자본인 MBK파트너스 측의 인사들이 이사회에 진입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줬다"며 "이는 사실상 약탈적 사모펀드의 손에 세계 1위 제련소의 열쇠를 쥐어준 매국적 방관"이라고 꼬집었다.
MBK가 인수해 운영하다 경영 악화로 지난해 법정관리를 신청한 홈플러스의 사례를 언급하기도 했다. 노조는 "MBK는 홈플러스 인수 후 11년 간 일해온 노동자들을 거리로 내몰고, 알짜 점포를 팔아 치워 자신들의 배만 불린 기업 사냥꾼"이라며 "국민연금이 그들에게 국가 기간 산업을 먹잇감으로 던져주는 것은 국민에 대한 배임이자 노동자에 대한 선전포고"라고 지적했다.
고려아연이 미래 산업의 핵심 소재를 공급하는 국가 안보 자산이라는 점도 강조했다. 노조는 "국민연금이 열어준 성문을 통해 MBK가 입성하는 순간 수십 년 간 쌓아온 독보적 기술은 해외로 뿔뿔이 흩어질 것"이라며 "이로 인해 벌어질 산업 생태계의 붕괴와 국부 유출의 책임은 결정에 참여한 위원들과 국민연금 수뇌부가 져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노조는 국민연금에 "국가 기간 산업 수호와 고용 안정을 위해 즉각 미행사 결정을 철회하고, 산업 안보와 관련한 대책을 즉각 수립하라"고 촉구했다.
반면 영풍 측은 국민연금의 결정을 지지한다는 뜻을 보였다. 영풍은 이날 낸 입장문을 통해 "국민연금의 결정은 현 경영진의 적격성에 대한 판단을 유보하거나 사실상 부정적으로 평가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영풍은 "국민연금은 회사가 추천한 감사위원 후보들 2명에 대해서도 '기업가치 훼손 및 주주권익 침해'를 사유로 명시적인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이는 고려아연 이사회 및 감사기구가 본연의 감시·견제 기능을 충분히 수행하지 못했다는 점을 공식적으로 지적한 것에 해당된다"고 거듭 강조했다. 또 이 같은 판단이 ISS 등 외부 글로벌 자문기관들의 권고와도 일치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