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 이후 기름값이 오르자, 유류세 인하율 확대 가능성을 검토하고, 유가 보조금 지급 카드를 꺼낼 준비를 하는 가운데 과거 사례에 비춰보면 유류세 인하로 인한 기름값 인하 효과는 생각보다 적었고, 이로 인해 국민의 기름값 하락 체감 효과도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유가 보조금 지급은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는 분석이 많다.
물론 국제유가가 상승할 때 국민 경제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유류세 인하, 유가 보조금 등 동원할 수 있는 정책 수단을 실행하는 것이 그렇지 않은 편보다는 낫다. 하지만 그보다 더 우선돼야 할 것은 석유 소비 감소를 위한 정책과 국제 유가 급등에 영향을 적게 받는 저소비 고효율 에너지 경제 체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12일 조선비즈가 지난 2000년 국내에서 유류세 인하가 최초로 시행된 이후 발간된 유류세 인하, 유가 보조금 지급 효과를 분석한 다수의 보고서를 살펴본 결과, 유류세 인하보다 유가 보조금 지급이 보다 효과적이라는 결론이 주를 이뤘다.
정부가 유류세 인하 조치를 내린 것은 지금까지 총 네 번이다. 정부는 2000년 3월 휘발유와 경유 유류세를 2개월 동안 각각 5%와 12% 인하했다. 2008년 3월에는 국제유가가 배럴당 140달러까지 급등하자 10개월 동안 휘발유·경유·LPG·부탄 유류세를 각각 10% 인하했다.
2018년 11월부터는 6개월간 유류세를 15% 인하했고 이후 인하 폭을 7%로 축소한 후 기간을 연장해 2019년 8월 말까지 유류세를 인하했다. 현재도 유류세는 휘발유와 경유가 각각 7%, 10%씩 인하돼 있는데 2021년 11월 시행된 조치가 20차례 연장·변동된 것이다.
◇ "유류세 인하분 전체, 휘발유·경유 판매 가격에 반영 안 돼…오히려 인하분보다 오르기도"
고유가 시기에 유류세 인하 조치는 반복적으로 시행됐으나, 정부가 원하는 만큼의 효과가 나타났는지에 대해선 부정적인 분석이 많다. 우선 유류세 인하 효과는 국제 유가 올라갈 때는 오히려 적어진다. 판매 가격에서 차지하는 유류세 비중이 낮아지기 때문이다.
유류세는 교통에너지환경세, 주행세(교통에너지환경세의 26%), 교육세(교통에너지환경세의 15%)로 구성돼 있고 리터당 가격이 고정돼 있다. 휘발유는 리터(L)당 694원, 경유는 476원의 유류세가 부과된다. 유류세에 세전가격(정유사의 주유소 공급가격)을 합한 금액의 10%를 부가가치세로 더한 가격이 판매 가격이 된다. 때문에 국제 유가 상승 시 공급 가격이 올라가고, 이에 따라 판매 가격이 상승하면 유류세 비중은 작아진다.
유류세를 인하한다고 해서 인하 폭만큼 판매 가격에 반영되지도 않는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의 학술지인 '에너지경제'에 장희선 전북대 경제학부 조교수와 최봉석 국민대 국제통상학부 부교수가 2023년 1월 발표한 '유류세 인하 정책의 효과와 시사점' 보고서를 보면 휘발유의 경우 유류세 인하분의 26~49%, 경유는 12~27%만 판매 가격에 반영됐다.
유류세 인하분이 전혀 반영되지 않은 기간도 있다. 네 번째 유류세 인하 정책이 시작된 2021년 11월 12일보다 유류세 인하 폭이 10%포인트(P) 상승해 30%가 적용됐던 2022년 5월 1일~2022년 6월 30일에는 판매 가격이 유류세 인하분을 넘어서 상승했다. 이에 기름값이 잡히지 않자, 정부는 2022년 7월 1일 유류세 인하율을 37%로 상향 조정했다.
해당 보고서의 저자는 "고유가 상황이 지속되고 시장의 불확실성이 높은 상황에서는 정부의 유류세 인하 정책이 소비자들이 지급하는 판매 가격에 효과적으로 반영되기 어렵다는 점을 시사한다"며 "유류세가 인하되더라도 판매 가격에는 적절히 반영되지 않기 때문에 소비자 입장에서는 체감하기가 어렵다"고.분석했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이 2024년 7월 내놓은 보고서에도 비슷한 분석이 담겨있다. '수송용 유류세 한시적 인하에 따른 경제적 효과 및 정책 개선 방안 연구(김태환·정준환 에너지경제연구원 연구원)'라는 제목의 보고서에는 "방대한 실증 자료의 분석 결과, 주유소 판매 가격은 유류세 인하분이 완전히 반영되지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며 "비록 일부 주유소는 판매 가격을 유류세 인하분만큼 낮추었다 하더라도 시장 평균 가격은 유류세 인하분만큼 감소하지 않았다는 점이 다양한 통계 분석을 통해서 확인된다"는 내용이 있다.
또한 유류세 인하처럼 가격을 일괄적으로 할인해 주는 정책은 기름을 많이 소비하는 사람들에게 더 많은 혜택이 돌아간다는 분석도 있다. 장 조교수와 최 부교수는 "유류세 인하의 경우 휘발유와 경유를 많이 소비하는 사람들이 더 많은 혜택을 받게 되고, 일반적으로 소득수준이 높아질수록 휘발유와 경유 소비가 증가하는 경향이 있다"며 "고소득 가구일수록 유류 소비 지출이 높고, 유류세 인하의 혜택을 더 많이 받는다"고 말했다. 이들은 "고유가에 대응한 정책을 시행해야 한다면 유류세 인하보다 필요한 대상에게 유가 보조금이나 유류세를 환급하는 정책이 더 바람직하다"고 제안했다.
◇ "유가 보조금, 화물차주 소득 불평등도 완화에 긍정적"
실제로 유가 보조금 지급은 효과적이라는 분석이 많다. 국내에선 2001년부터 '1차 에너지 세제 개편'에 따라 경영상 어려움이 예상되는 화물차주를 위해 유가 보조금 제도가 시행되고 있다.
당시 정부는 휘발유 가격에 비해 상대적으로 크게 낮은 경유와 LPG 가격을 유류세 변동을 통해 2006년 7월까지 단계적으로 상향 조정하기로 했다. 이에 운수업계의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유류세 인상분의 일부를 보조금으로 지원하는 것이 유가 보조금이다. 유가 보조금 대상이 되는 차량은 경유와 LPG를 이용하는 영업용 화물 차량과 버스 및 택시다.
국회입법조사처는 2021년 12월 펴낸 '화물자동차 유가 보조금 제도의 입법 영향 분석(구세주 국토해양팀 입법조사관) 보고서에서 "2015년~2020년 화물자동차 운송실태조사 자료를 이용해 분석한 결과 유가 보조금이 순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 수준으로 유가 보조금 제도가 화물차주의 소득 개선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으며, 화물차주의 소득 불평등도를 완화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입법 목적을 달성하고 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역시 2018년 발간한 '화물차 유가 보조금 제도의 개혁 방안 연구'(이동규·성명재·김승래 연구원)에서 "유가 보조금은 중·저소득층이 주된 수혜 계층인 만큼, 환급에 따른 가처분소득 증가가 소비지출을 증대시키는 효과가 크다"고 분석했다.
앞서 정부는 유가 보조금 지급 지침을 개정해 지난 2월 말 만료된 경유 유가 보조금을 4월 말까지 2개월간 연장해 지급한다고 11일 발표했다. 기존에는 기준 금액인 리터당 1700원 초과분의 50%만 지원했으나 지급 비율도 70%로 상향할 계획이다.
◇ "시장 가격 기능에 개입 대신 대중교통 이용 확대·촉진해야"
다만, 유류세 인하와 유가 보조금 지급은 현재의 유류 소비 성향을 그대로 유지한 상태에서 경기 조절과 가격 안정만을 기대한다는 문제가 있다. 중동 사태로 인해 호르무즈 해협이 사실상 봉쇄, 공급이 줄어든 상황에서 유류 소비가 그대로 유지되면 기름값은 오를 수밖에 없지만, 기름값만 인위적으로 잡겠다는 게 유류세 인하와 유가 보조금 지급이다.
이와 관련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유류세 인하가 온실 가스 감축 등 기후위기 대응에 역행하는 조치라고 지적한 바 있다. 유가 보조금 역시 화물차 상당수가 경유차라는 점에서 동일한 맥락의 지적을 받을 수 있다.
한국의 석유 사용량은 국제에너지기구(IEA) 기준으로 2025년 세계 8위이고 일일 소비량은 약 275만배럴에 달한다. 문제는 원유 전량을 수입에 의존한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국제유가 급등은 물가 상승, 경제 성장률 하락을 초래하고 고유가 때마다 유류세 인하, 유가 보조금이 언급된다. 에너지 업계 관계자는 "최근의 논의에서 정작 유류 소비를 줄이자는 이야기는 빠져 있고 기름값 인하 이야기만 있다"고 말했다.
김태환·정준환 에너지경제연구원 연구원은 보고서에서 "고유가 시기 대중교통 이용 확대 및 촉진 정책을 한시적 유류세 인하 조치에 우선해 시행해야 한다"며 "대중교통 이용의 확대 및 촉진 정책 역시 고유가 시기 국민경제의 부담 완화라는 동일한 정책 목표를 두고 있고, 시장의 가격 기능에 정부가 직접 개입하지 않는다는 측면에서 석유 소비의 왜곡을 초래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고유가 시기 이동 수단으로 자가용을 선택하는 가계는 대중교통을 대체 수단으로 선택할 때 가처분 소득 증진을 도모할 수 있다"며 "정부는 고유가 시기 가계가 대중교통 수단을 선택하도록 기대편익을 대폭 키우고 그에 맞는 재원을 투입하는 것이 자원의 효율적 배분과 사회적 후생 증진에 더 부합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