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 지역 내 여러 액화천연가스(LNG) 개발 프로젝트가 비용 문제로 첫 삽을 뜨지 못하면서 해당 프로젝트와 관련된 국내 기업들도 계획에 차질을 빚을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에너지·자원 개발사 등은 저렴한 가격에 LNG를 조달할 길이 막혔고, 조선사와 건설사 등도 일감을 확보하기 어려워진 상황이다. 특히 미국과 이란의 전쟁으로 LNG 수급 문제가 불거지는 상황이라 관련 기업들은 더 애를 태우고 있다.
11일 에너지 업계에 따르면 미국, 캐나다에서 최소 7개 이상의 LNG 터미널 프로젝트가 최종 투자 결정(FID·Final Investment Decision)을 미루고 있다. 미국 루이지애나주의 레이크찰스 LNG, 커먼웰스 LNG, 델핀 LNG, 텍사스주의 텍사스(Texas) LNG 등이 이에 해당된다.
미국산 천연가스를 멕시코 항만을 이용해 수출하는 사구아로 에네르지아 LNG와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의 크시 리심스 LNG도 개발을 시작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보통 LNG 프로젝트는 사업 구상부터 인·허가, 설계·조달·시공(EPC) 계약, 구매자 확보, FID 순으로 진행된다. FID는 리스크 검토, 자금 조달 등 모든 과정을 마친 후 최종 계약서에 도장을 찍는 단계다. FID 이후 본격적인 개발이 시작되며 첫 가스 생산까지 4~5년의 공사 기간이 소요된다.
북미 지역의 LNG 개발이 늦어지고 있는 것은 원자재 가격, 인건비 등 각종 비용이 가파르게 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 에너지 컨설팅사인 우드맥킨지에 따르면 대규모 LNG 개발이 이뤄지는 미국 텍사스주, 루이지애나주의 숙련공 임금은 지난 3년 간 약 40% 상승했고, LNG 프로젝트의 전체 EPC 비용은 50% 이상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수년 전 LNG 사업 계획을 세울 때와 비교해 이자 부담이 늘어난 점도 사업이 지연되고 있는 이유로 꼽힌다. 대규모 자금이 필요한 LNG 프로젝트는 전체 사업비의 상당 부분을 금융사에서 차입하는 프로젝트 파이낸싱(PF)으로 조달한다.
미국 기준금리는 2022년 3월까지 0%대를 유지하다가 2023년 7월 5%대로 뛰었고, 최근엔 3%대를 기록 중이다. 시장 금리가 오르면 PF는 차입 비용 증가, 대출 심사 강화, 사업성 악화라는 삼중고를 겪게 된다.
현지 프로젝트를 통해 LNG를 구매하려던 국내 기업들은 사업 지연 소식에 애를 태우고 있다. SK가스는 레이크찰스 LNG 개발사인 에너지 트랜스퍼와 대규모 장기 구매 계약을 지난 2022년 체결했다.
당초 목표는 올해부터 연간 40만톤(t) 규모의 LNG를 18년 간 도입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건설비 급등, 인허가 지연 등으로 레이크찰스 LNG의 FID가 수년째 늦어지면서 국내 도입 시점도 무기한 늦춰지고 있다.
미 루이지애나주 사빈패스 LNG 프로젝트의 경우 5단계 확장 프로젝트에서 자금 조달에 난항을 겪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미국 정부는 한국에 루이지애나주 LNG 수출 터미널 건설 프로젝트 사업에 참여하라고 요구한 것으로 전해진다. 정부는 구체적인 프로젝트에 관해선 확인이 어렵다는 입장이다.
포스코인터내셔널도 지난 2024년 멕시코 사구아로 에네르지아 LNG 터미널 운영사인 멕시코 퍼시픽과 연간 70만t 규모의 LNG를 20년간 도입하는 장기 계약을 체결했다. 당초 목표는 2024년 FID 절차를 마무리하는 것이었지만, 잦은 경영진 변경과 환경 파괴 논란 등이 겹치며 아직 최종 계약서에 도장을 찍지 못하고 있다.
사구아로 에네르지아 LNG 프로젝트는 미국산 천연가스를 파이프라인을 통해 멕시코 서부 해안으로 가져온 뒤 액화해 수출하는 사업이다. 파나마 운하를 통과하지 않고 곧장 아시아로 LNG를 보낼 수 있어 물류비와 운송 기간을 줄일 수 있다. 포스코인터내셔널에 앞서 싱가포르, 중국, 말레이시아 기업들도 장기 구매 계약을 체결했다.
한 민간 발전업계 관계자는 "개발이 지연되면 물량 확보 계획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기업들은 한 곳에서 가스를 가져오는 게 아니라 여러 공급처를 확보하는 경우가 많다"며 "북미 LNG 사업이 늦어지더라도 큰 지장이 없도록 준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국내 조선·건설업계도 북미 LNG 개발 지연에 따라 타격을 받고 있다.
삼성E&A는 텍사스 LNG 프로젝트의 초기 사업 구상 단계부터 참여해 지분 투자도 단행했다. EPC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으나, 공사가 언제 시작될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텍사스 LNG는 브라운스빌 항구에 44만5154㎡ 규모의 LNG 생산 시설, 저장 탱크를 건설하는 사업이다.
미국 델핀 LNG 프로젝트의 파트너로 선정됐던 삼성중공업도 FID 절차가 늦어지면서 아직 최종 계약을 체결하지 못하고 있다. 델핀 LNG 프로젝트는 루이지애나 해상에 최대 3~4기의 부유식 액화천연가스 생산 설비(FLNG)를 투입해 연간 약 1320만t의 LNG를 생산해 수출하는 사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