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생각을 맹목적으로 따르거나 성급하게 행동하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인공지능(AI) 로봇이 인간의 고민에 조언을 해주는 세상이 오고 있다. 휴머노이드 로봇이 제조·서비스업을 넘어 믿음의 영역인 종교 분야까지 진출하며 나타나는 현상이다. 전세계적으로 로봇 도입을 시도하는 종교가 늘고 있지만 로봇이 단순 소통과 학습의 영역이 아닌 인간의 개성과 존엄성을 대체할 수 없다는 목소리도 크다.

9일 종교·학계에 따르면 동국대학교 AI안전로봇혁신센터는 대형언어모델(LLM)을 통해 불교 교리와 사찰 정보 등을 학습한 휴머노이드 '혜안 스님'를 개발하고 성능 고도화를 진행하고 있다.

연구진은 지난 1월 27일부터 28일까지 서울 삼성동 봉은사에서 참배객들을 대상으로 시연을 진행했다. AI로봇인 혜안스님은 주지스님과 합장을 하며 인사를 나누고 참배객들에게 한국어·영어로 108배에 대해 설명했다.

인도 힌두교에서 신께 기도며 초를 켜는 의식을 로봇 팔이 대신하고 있다. /유튜브 캡처

조계종은 이 로봇을 5월 부처님 오신날 연등회 때 등장시키는 안을 추진 중이다. 로봇 개발에 참여한 한 관계자는 "불교 교리 기반의 마음 돌봄, 심리 상담, 명상 콘텐츠 등 마음을 돌봐주는 종교의 기능을 더 개발하려고 하고 있다"고 했다.

휴머노이드의 종교계 진출은 해외에서도 활발하다. 유로뉴스 등 외신에 따르면 구마가이 세이지 일본 교토대학교 미래인간사회연구소 교수는 최근 AI로 불교 경전을 학습한 휴머노이드 로봇 '붓다로이드'를 공개했다.

중국 로봇업체 유니트리 기반의 이 휴머노이드도 인간 승려처럼 합장을 하고 고개를 숙이며 사람들 사이를 돌아다닌다. 사찰을 찾아 고민을 나누는 사람들에게 "마음을 진정시키고 그 생각 자체에 대한 집착을 버리라"고 조언도 건넨다.

동국대학교 AI안전로봇혁신센터가 개발한 혜안 스님(오른쪽·세미 휴머노이드 스님)이 서울 삼성동 봉은사 주지 원명 스님(왼쪽)과 합장하며 인사하고 있다. /동국대학교 AI안전로봇혁신센터 제공

고령화와 농촌 인구 감소 속도가 빠른 일본에서 종교계의 휴머노이드 도입은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19년에는 400년 전통의 교토 고다이지 사찰에서 승려 로봇 '민다르'가 등장해 사람들과 소통한 적이 있다. 부족한 승려를 대신하기 위해 방대한 분량의 불교 경전을 학습한 이 로봇들은 개인적인 고민부터 사회 문제까지 소통할 수 있도록 개발됐다.

교토 대학 연구진은 미래에 이들이 전통적으로 인간 승려들이 수행해 온 일부 종교 의식을 보조하거나 대체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인도에서는 힌두교의 행사에서 신에게 기도를 드리며 촛불을 켜는 아르티라는 의식을 로봇 팔이 대신 수행하기도 한다. 이에 일부 종교인들은 우려를 표했지만, 일각에서는 '로봇은 타락하지 않는다'면서 로봇이 인간보다 신을 더 잘 숭배할 수 있다는 입장을 내기도 했다.

일본 교토대학교 미래인간사회연구소가 개발한 휴머노이드 스님 붓다로이드(왼쪽)가 합장하고 있다. /유로뉴스 캡처

독일에서는 로봇이 현재처럼 발달하기 전인 2017년 개신교에서 종교개혁 5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미리 프로그래밍된 축복을 전달하는 로봇 '블레스U-2'을 공개한 바 있다.

한국 종교계의 AI 및 로봇 도입에 대한 입장과 속도는 조금씩 다르다. 조계종 관계자는 "국내외 사찰의 휴머노이드 도입 움직임은 전통 종교가 디지털 시대와 어떻게 소통할 지에 대한 하나의 실험"이라면서 "다양한 보조적 역할을 할 수 있겠지만 수행은 사람의 몫이고 전통성과 상징성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고 했다.

한국천주교 주교회의는 AI 활용 관련 지침을 마련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마산 교구는 국내 최초 AI위원회를 설립하고 각계 전문가를 초청해 AI 심포지엄을 진행할 예정이다. 임민균(그레고리오) 한국천주교 주교회의 홍보국장은 "AI가 교리 공부 등 종교 활동에도 충분히 도움을 줄 수 있다"면서도 "천주교에서 말하는 인간학적 가치 중 하나인 인간의 존엄성인 만큼 우리 고유의 얼굴, 인격, 개성을 대체할 수 없다고 본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