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이란 공습으로 중동산 원유와 액화천연가스(LNG) 수급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는 가운데 정부가 전략비축유를 언제 방출할 지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정유업계에서는 전쟁이 4주 이상 장기화할 경우 정부가 전략비축유를 방출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한국석유공사가 보유한 전략비축유 방출은 산업통상부 결정에 따라 이뤄지며 국내 정유 4사가 공급받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정유업계는 정부의 전략비축유를 받는 것 이외에 짧은 기간 내에 원유 인도가 이뤄지는 스팟 시장(Spot Market)에서 원유를 구매하는 방안도 강구 중이다.
LNG의 경우 전체 수입 물량 중 중동산 비중이 20% 남짓으로 크지 않아 현재로서는 수급에 큰 차질이 빚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4일 정부와 정유업계에 따르면 전략비축유 방출은 '석유 및 석유 대체연료 사업법'에 따라 이뤄진다. 전략비축유 방출은 크게 세 종류다. 정유사가 요청하는 긴급 대여, 정부 판단 아래 이뤄지는 정책 대여, 미국의 이란 공습과 같은 대외적인 상황에 의해 비롯된 수급 안정용 비상 대여가 있다.
전략비축유 방출은 현물 대여 방식으로 진행된다. 산업통상부가 비축유 방출 물량과 시점을 결정해 정유사에 원유나 정제된 상태의 석유를 빌려준다. 비축유 대여 물량은 정유사별 일일 원유 정체 능력, 수급에 차질을 빚는 물량 등을 고려해 정해진다.
정유사는 60일에서 1년 안에 대여받은 원유나 정제된 상태의 석유를 정부에 반납한다. 미국의 이란 공습으로 인해 전략비축유가 방출될 경우 정유사는 1년 이내에 대여분을 반납하면 된다.
정부가 전략비축유 방출을 결정한 것은 1990년부터 2022년까지 32년 동안 다섯 차례였다.
걸프전이 벌어진 1990년 8월부터 1991년 11월까지는 494만배럴이 방출됐다.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미국 남동부를 강타했을 때인 2005년 9월부터 2006년 9월에는 292만배럴이 방출됐다. 리비아 사태가 발생했을 때인 2011년 7월부터 2012년 6월에도 347만배럴이 시장에 공급됐다.
미국 정부의 요청으로 전략비축유가 방출된 사례도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원유 수요가 급증한 상황에서 산유국이 증산을 거부하면서 국제 유가가 오르자 조 바이든 전임 미국 행정부가 유가 안정을 위해 한국·일본·중국 등에 비축유 공동 방출을 요구했다. 당시 2022년 1월부터 2023년 3월 사이 320만배럴이 방출됐다.
가장 최근에 전략비축유가 방출된 것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때문이었다. 2022년 3월부터 2023년 8월 사이에 1165만배럴의 전략비축유가 방출됐다.
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정부의 석유 비축량은 1억배럴 규모다. 한국석유공사는 여수·거제·울산·서산 등지에 9개 비축 기지를 뒀다. 국제에너지기구(IEA) 기준 비축일수는 117일분이다.
여기다 정유 4사의 재고량을 합치면 208일 정도를 버틸 수 있다는 것이 에너지업계의 판단이다. 정유 4사는 석유 및 석유 대체연료 사업법에 따라 자체적으로 4~5주 정도의 재고를 비축한다. 이에 미국의 이란 공습이 4주 이상 지속되면 전략비축유가 방출될 가능성이 크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호르무즈 해협을 통할 경우 중동산 원유는 배송에 3~4주가 걸린다"며 "지금처럼 호르무즈 해협이 사실상 막힌 상황에서 민간 정유사가 비축해둔 물량이 소진되는 시점에 전략비축유 방출이 시작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과거에도 사태 발생 후 약 4주 후에 방출이 시작됐다"고 덧붙였다.
한 정유사 관계자는 "정유사는 3개월 전에 원유 구매를 완료하고 보통 두 달 치의 비축유를 가지고 있다"며 "미국과 이란의 전쟁이 한 달 안에 끝나면 원유 수급 이슈는 없을 테지만, 장기전으로 간다면 스팟 시장에서 원유를 구매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또 다른 정유사 관계자 역시 "전쟁 장기화로 전략비축유가 방출된다고 해도 한 번에 필요한 만큼 주지는 않을 것"이라며 "전쟁이 한 달 이상 지속되면 가동률을 줄이거나 중동 외 다른 지역에서 원유를 공급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중동산 원유라도 호르무즈해협을 통하는 아라비아해가 아니라 홍해 쪽을 통과할 수 있는 항구에서 선적하는 방안은 가능한지 체크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국가스공사가 보유한 LNG 비축량에 대해선 공식적으로 공개된 수치가 없다. 천연가스 시장 특성상 비축 물량이 공개되면 판매하는 국가에서 가격을 올릴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다만 한국가스공사는 인천·평택·통영·삼척·제주도 기지에 있는 특수 설비에 마이너스 162도로 천연가스를 액화해 저장 중이다. 저장량은 당장 문제가 일어날 수준은 아닌 것으로 알려졌다.
관세청 자료를 보면 2024년 기준 국내에 들어온 LNG는 4000만~4500만톤으로 이 중 가스공사가 3500만톤 내외를 수입한다. 나머지는 민간 직도입자가 수입하고 있다. 특히 가스공사가 중동에서 수입하는 LNG 물량은 전체의 20% 내외라 이란의 호르무즈해협 폐쇄 위협에도 영향을 적게 받을 것으로 보인다.
가스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카타르산 LNG는 전체의 14.91%, 오만 4.11%, 아랍에미리트 0.53%로 중동에서 수입한 LNG는 전체의 19.55%다.
가스공사 관계자는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물량이 20% 수준이고 매일 타국에서 수입한 LNG가 들어오고 있다"며 "호주와 캐나다에 지분 투자한 것도 있어 LNG 수급에 큰 영향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한국은 원유의 70.7%, LNG의 20.4%를 중동에서 들여오고 있다. 중동산 원유와 LNG 대부분은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해 한국으로 들어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