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모든 제철소에서 생산할 수 있는 철근의 양은 1200만톤(t) 정도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750만톤만 만들고 있어요. 건설 업황이 기울면서 철근 수요가 크게 줄어 더 만들수록 손해입니다."(한 대형 철강업체 관계자)

전 세계에서 1인당 철강(조강)생산량이 13년째 가장 많은 '철강 강국'이 흔들리고 있다. 철강 내수의 40%를 차지하는 건설업이 불황을 맞으면서다. 건설업은 그간 철근, H빔 수요를 대량으로 일으키며 철강 수요를 견인해왔다.

16일 세계철강협회(WSA), 한국철강협회 등에 따르면 우리나라 1인당 철강생산량은 지난해(추정치) 기준 약 1213 kg을 기록했다. 2012년부터 13년째 전 세계에서 1위를 차지하고 있다.

2위는 대만으로 약 870kg, 3위는 중국으로 약 681kg다. 한국의 1인당 철강생산량은 전 세계 주요국 중 압도적인 1위다. 제조 강국으로 일컬어지는 일본(약 656kg), 독일(약 421kg)과 비교해도 2~3배 수준이다.

서울 시내 한 건설 현장에 철강 자재들이 쌓여 있는 모습./뉴스1

우리나라의 철강생산량은 건설과 자동차, 조선 등 3대 산업과 함께 급성장했다. 건설업은 국내 철강 수요의 40%를 차지하는 산업이다. 1989~1996년 분당, 일산 등 1기 신도시 개발 당시 철근 수요는 408만톤(t)에 달했다. 철근 내수는 1988년 299만톤에서 1996년 1006만톤으로 늘었다.

2000년대 들어서도 2기 신도시 건설과 아파트 공급 확대로 건설 경기가 활황을 보이면서 철강소비량이 비약적으로 증가했다. 2003년 국내 철근 수요는 약 1226만톤으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같은 시기 현대차·기아를 필두로 자동차 국내 생산량도 비약적으로 늘었다. 주로 냉연 강판과 초고장력 강판, 자체, 부품 등이 자동차 생산에 투입됐다. 국내 자동차 생산량은 1995년 300만대를 넘어섰고, 2007년 520만대를 기록했다. 자동차 한 대에는 약 1톤 내외의 철강이 투입된다. 현재 자동차가 철강 내수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5~30%다.

조선의 비중은 15~18%다. 선박 건조와 해양플랜트 건설 등에 후판이 주로 쓰인다. 2000년대 초반 한국 조선업이 수주 잔량과 건조량에서 세계 1위를 기록, 후판(두꺼운 강판) 소비량이 급증했다. 다만 내수로 전량 소비되는 건설업과 달리 자동차, 조선은 직·간접적으로 수출되는 물량이 더 많다. 조선에 투입되는 철강은 거의 90% 이상, 자동차는 60~70%가 수출돼 해외에서 소비된다고 봐도 무방하다.

'철강 큰손'인 건설업이 불황을 겪으면서 철강업은 직접적인 영향을 받고 있다. 대표적으로 건설에 많이 투입되는 철근 내수 수요를 통해 이를 확인할 수 있다. 건설 경기가 침체됐던 2011년 철근 수요는 800만톤대로 추락했다. 그러다 2017년 부동산 호황기를 맞아 1000만톤을 다시 넘어섰고, 2024년 고금리, 건설 프로젝트파이낸싱(PF) 경색을 겪으며 780만톤까지 줄었다. 지난해부터 건설업이 장기불황에 돌입하면서 지난해 철근 수요는 700만톤을 밑돌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올해 철근 수요는 더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이는 건설 관련 통계 중 철근 수요와 직결되는 착공면적을 보면 알 수 있다. 착공면적은 실제 철강(철근, H빔 등)이 현장에 투입되기 시작하는 시점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해 착공면적 전망치는 6500만㎡ 이하로 전년 대비 16% 감소했다. 착공면적은 2023년 7570만㎡로 31.7% 급감한 후 2024년에는 기저효과로 7800만㎡를 기록, 2~3% 상승했다.

건설 경기는 올해 하반기를 저점으로 서서히 회복될 것으로 전망된다. 올해 사회간접자본(SOC) 예산은 21조1000억원으로, 지난해 보다 8.2%(1조6000억원) 늘었다. 다만 우리나라가 '철강 강국'의 위상을 이어나갈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인도와 동남아의 아세안 국가들이 건설, 인프라 확충에 돌입하며 철강생산량을 크게 늘리고 있어서다. 인도의 철강생산량은 지난해 1억6490만톤으로 1년 전에 비해 10% 넘게 늘었다. 다만 인구(약 14억2000만명)가 많아 1인당 철강생산량은 약 116kg로, 6위에 그친다.

박성봉 하나증권 연구원은 "건설업의 약세로 철강 내수가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지만, 올해 저점을 확인할 것"이라면서 "정부를 중심으로 한 인프라 확대는 철강 수요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전망"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