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9월 영풍·MBK파트너스의 기습적인 공개매수 선포로 시작된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이 4개월 가까이 이어지는 가운데, 이사회를 장악하기 위해 현 경영진과 영풍·MBK가 이달 23일 임시 주주총회에서 첫 표 대결을 벌인다. 양측의 지분이 비슷한 상황이라 비철금속 세계 1위 기업인 고려아연의 경영권 향방은 외국인·기관 주주들이 결정하게 됐다. 임시 주총의 주요 쟁점을 살펴본다.[편집자 주]

고려아연(010130) 경영권을 지키려는 현 경영진 측은 이번 주총 안건으로 ▲집중투표제 도입 ▲이사 수 상한 설정 ▲발행주식 액면분할 ▲소수 주주에 대한 보호 ▲사외이사 이사회 의장 선임 ▲배당기준일 변경 ▲분기배당 도입 등을 제안했다. 고려아연 경영권을 뺏으려는 영풍(000670)·MBK는 ▲집행임원제도 도입 ▲이사 14명 선임 등의 안건을 올렸다.

양측이 상대방의 주총 안건에 반대하는 것은 ▲집중투표제 도입 ▲이사 수 상한 19인 설정 ▲이사 14명 선임 등이다. 나머지는 양측 이견이 없어 무난하게 통과될 것으로 보인다. 외국인·기관 주주가 집중투표제, 이사 수 상한 등에 어떤 입장을 취하느냐에 따라 고려아연 경영권을 누가 가질지 결정된다.

임시주총에서는 집중투표제 도입 → 이사 수 상한 19명 → 양측 이사 후보 선임 순으로 표결을 진행한다. 집중투표제가 가결되면 같은 날 표결을 진행하는 이사 선임 안건에 즉시 적용된다. 이어 이사 수 상한을 19명으로 제한하는 안건에 대한 표결이 진행된다. 만약 집중투표제, 이사 수 상한 19인 안건이 모두 통과되면 현재 이사회 12명을 제외하고 남은 7명의 신규 이사를 집중투표제로 선임할 수 있다. 거꾸로 두 안건이 모두 부결되면 이사 수에 상한이 없다는 걸 전제로 보통결의(의결권 과반)를 통해 이사 선임 안건을 표결하게 된다.

고려아연 온산제련소 전경./고려아연 제공

◇ 고려아연이 공 들이는 집중투표제, 금융당국·야당도 추천

고려아연은 집중투표제 도입에 공을 들이고 있다. 집중투표제는 주식 1주당 이사 선임 안건 수에 맞춰 1주씩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는 제도를 뜻한다. 예를 들어 3명의 이사를 선임하면 주식 1주당 3개의 의결권이 부여된다. 의결권을 특정 후보에 몰아줄 수도 있어 대주주보다 소수주주에 유리한 제도로 평가받는다.

영풍·MBK는 이번 주총에서 14명의 이사를 새로 선임하려고 한다. 현재 고려아연 이사 수가 12명(사의 밝힌 성용락 사외이사 제외)이기 때문에 14명을 영풍·MBK 측 사람들도 채우면 과반으로 이사회를 장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영풍·MBK 측 사람이 이사회에 진입해도 고려아연은 현 경영진에 우호적인 인물을 더 많이 이사로 선임하면 경영권을 유지할 수 있는데, 집중투표제를 도입하면 우호적인 이사 선임이 쉬워진다.

영풍·MBK는 집중투표제 도입에 찬성하지만, 이번에는 최윤범 회장이 경영권을 방어하기 위해 도입하는 것이라 반대한다고 밝혔다. MBK파트너스는 “고려아연 경영진이 소수주주 보호 방안을 최 회장의 경영권 방어용으로 이용한다”고 주장했다. 영풍·MBK는 이번 주총에서 집중투표제 도입을 전제로 한 이사 선임 안건을 상정해선 안 된다며 지난달 30일 가처분을 신청했다.

금융당국은 소수주주 보호를 위해 집중투표제가 필요하다고 보고 기업지배구조보고서에 집중투표제 도입 여부를 명시하도록 하고 있다. 집중투표제는 정치권에서도 관심이 많은 사안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집중투표제 의무화, 배임제 폐지 등 상법 개정을 당론으로 밀고 있다.

고려아연 경영권을 노리는 영풍·MBK가 현 경영진의 경영권 방어 행위를 문제삼는 건 모순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만약 영풍·MBK가 이번 주총에서 이사회 과반을 확보하면 이후 주총에서는 거꾸로 영풍·MBK가 경영권을 지키기 위해 집중투표제를 쓸 수 있기 때문이다.

◇ 이사 26명으로 늘리려는 영풍·MBK… 의결권 자문사는 “20명 미만이 적정”

이번 주총의 관건은 양측이 이사 수를 얼마나 확보하느냐다. 현재 고려아연 정관에는 이사 수 상한 규정이 없다. 영풍·MBK는 14명의 이사를 선임해 과반을 확보하려고 한다. 고려아연은 이사 수를 19명으로 제한하고 사의를 표명한 성용락 사외이사 자리를 포함해 7명의 이사를 새로 선임하려고 한다.

영풍·MBK 측은 이사 수 상한에 반대하고 있다. 이사 수에 상한이 생기면 이사회 과반 확보 계획이 틀어지기 때문이다. 이번 주총에서 영풍·MBK가 추천한 이사 후보만 모두 선임되면 총 이사 수는 26명이 되고, 영풍·MBK 측 이사는 14명이 돼 이사회를 장악하게 된다. 영풍·MBK는 이사회 과반을 차지한 뒤 최윤범 회장의 해임을 추진할 계획이다.

고려아연은 영풍·MBK가 신규 이사 14명을 새로 뽑으려는 이유는 최 회장을 몰아내기 위한 목적밖에 없다고 비판한다. 14명은 이사회 과반 확보에만 초점이 맞춰진 숫자일 뿐 효율적인 이사회 운영과는 거리가 있다는 것이다.

실제 글래스루이스, ISS 등 글로벌 의결권 자문사들은 상장기업의 적정 이사 수를 20명 미만으로 보고 있다. 한국ESG기준원, 서스틴베스트 등 국내 의결권 자문사들도 이사 수가 지나치게 많으면 이사회 책임, 권한이 약화하고 안건 심의 기능을 떨어뜨릴 수 있다고 지적한다. 비대하고 비효율적인 이사회를 방지하기 위해 이사 수에 상한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고려아연이 올린 안건대로 이사 수가 19명으로 제한되면 7개의 신규 이사 자리가 생기더라도 영풍·MBK 측 입지는 좁아지게 된다. 고려아연 관계자는 “영풍·MBK가 신규 이사 14명을 뽑으려는 이유는 최윤범 회장을 몰아내려는 이유밖에 없다. 지금까지 이사 수에 제한을 두지 않았던 이유는 경영권 분쟁이 생길 것이라 예측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사 수를 19명으로 제한하려는 것은 이사회를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글로벌 의결권 자문사들의 권고를 따른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