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달 시작되는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을 앞두고 국내 기업들이 미국 신규 투자를 모색하고 있다. 그러나 과거 트럼프 1기 당시 여러 기업이 미국에 대규모 투자를 한 이후 기대만큼 성과를 거두지 못한 경우가 있어 기업들의 고민이 큰 상황이다. 최근 환율과 인건비도 올라 투자비도 급증했다.

24일 재계에 따르면 국내 기업들은 지난달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대선에서 승리한 이후 사내 미국 전문가와 대관 인력 등을 가동해 차기 미국 행정부와의 우호적인 관계를 구축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 기업인 출신인 트럼프 당선인은 외국 기업이 미국에 투자해 일자리를 창출할 때마다 공개적으로 칭찬한 적이 많았다.

도널드 트럼프(오른쪽) 미국 대통령 당선인과 손정의 일본 소프트뱅크 회장이 16일(현지시각) 미국 플로리다주 팜비치의 마라라고 리조트에서 기념촬영하고 있다. 손 회장은 미국에 1000억달러를 투자하겠다고 발표해 트럼프 당선인의 칭찬을 받았다./연합뉴스

국내 기업들은 트럼프 1기 행정부 때도 미국에 대규모 투자를 진행했다. 롯데케미칼(011170)은 2019년 31억달러(약 3조6000억원)를 투자해 미국 루이지애나주에 에틸렌 공장을 건설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에 트럼프 당시 대통령은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을 극찬했고, 국내 재계 총수 중에서 처음으로 백악관에서 단독 면담을 갖기도 했다.

삼성전자(005930)는 가전제품 공장과 반도체 생산 라인을 짓겠다고 했고, SK(034730)는 미국 셰일가스 개발 등에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현대차(005380)는 친환경·자율주행차 개발을 위해 미국에 투자하겠다는 내용의 계획을 발표했다.

그러나 트럼프 1기 행정부 때 국내 기업들이 진행했던 투자 중 일부는 성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대미(對美) 투자의 모범 사례로 치켜세웠던 롯데케미칼은 중국의 대규모 석유화학공장 증설로 직격탄을 맞으면서 최근 몇 년 간 실적 부진이 이어지고 있다. 롯데케미칼의 루이지애나 공장에서 만들어지는 에틸렌은 대표적인 공급 과잉 품목으로 꼽힌다.

SK는 미국 셰일가스 개발 기업에 2017년부터 2년 간 6억달러(약 8700억원) 이상을 투자했는데, 이후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에 따른 업황 악화와 유가 하락 등으로 큰 손실을 입었다. SK이노베이션(096770)은 수 년 간 적자에 허덕이던 미국 셰일가스 광구 지분과 설비 등을 지난 2021년에 매각했다.

롯데케미칼이 미국에 투자하기로 한 직후 도널드 트럼프(왼쪽) 전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과 만난 뒤 트위터에 "매우 기쁘다"는 글과 함께 올린 사진./X 캡처

이미 조 바이든 행정부에서 대규모 투자를 진행한 데다, 경기 침체 장기화로 신규 투자 여력이 부족해진 점도 국내 기업의 고민거리다. 현대차그룹은 10조원 이상의 자금을 투입해 지난 10월 미국 조지아주에 연간 30만대의 친환경차를 생산할 수 있는 공장인 ‘메타플랜트’를 준공했다. 트럼프 당선인은 전기차에 대한 혜택을 줄이겠다는 입장이라 메타플랜트는 당초 기대만큼 성과를 낼 지 여부가 불투명해졌다.

LG에너지솔루션(373220)과 SK온, 삼성SDI(006400) 등 미국에 공장을 짓고 있는 국내 배터리사들도 실적 부진이 지속될 가능성이 커 미국에 추가 투자를 하기 버거운 상황이다.

재계 관계자는 “많은 기업이 트럼프 1기와 바이든 행정부를 거치면서 섣부른 대미 투자로 낭패를 볼 수 있다는 교훈을 얻었다. 향후 미국의 정치 지형이 바뀌어도 영향을 덜 받을 만한 방향으로 신규 투자를 고민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