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세대 열관리 기술로 꼽히는 액침 냉각 시장에 국내 정유 4사(SK이노베이션(096770), S-Oil(010950), GS칼텍스, HD현대오일뱅크)가 모두 진출하며 사업 다각화에 나섰다. 액침 냉각은 냉각유에 직접 제품을 침전시키는 기술로 데이터센터, 에너지 저장 장치(ESS·Energy Storage System) 등에 활용하면 기존 공랭식(공기로 냉방)이나 수랭식(냉각수로 냉방)보다 전력 효율은 높이면서 화재 위험과 장비 손상을 줄일 수 있다. 제한된 공간에 더 많은 장비를 배치할 수 있어 경제성도 높아진다.
24일 업계에 따르면 HD현대오일뱅크는 자사의 액침 냉각 전용 윤활유 ‘엑스티어 E-쿨링 플루이드(XTeer E-cooling Fluid)’가 세계 최대 액침 냉각 시스템 기업인 GRC(Green Revolution Cooling)로부터 일렉트로세이프(Electrosafe) 프로그램 인증을 받았다고 최근 밝혔다. 회사 관계자는 “조만간 국내 데이터센터 업체와 실증 사업도 진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HD현대오일뱅크의 액침 냉각 시장 진출로 국내 정유 4사는 모두 관련 사업을 영위하게 됐다. 국내에서 가장 먼저 액침 냉각 시장에 진출한 곳은 SK이노베이션(096770)의 윤활유 사업 자회사 SK엔무브로, 지난 2022년 미국 GRC에 2500만달러(약 360억원) 규모의 지분 투자를 단행한 바 있다. 이후 SK엔무브는 지난해 9월 신규 브랜드 ‘지크 이플로(ZIC e-FLO)를 출시했다.
GS칼텍스는 지난해 11월 액침 냉각유 브랜드인 ‘킥스 이머전 플루이드S(Kixx Emersion Fluid S)’를, 에쓰오일(S-Oil(010950))은 올해 10월 고인화점 액침 냉각유 제품 ‘에쓰오일 e-쿨링 솔루션(S-Oil e-Cooling Solution’을 각각 출시하며 시장에 뛰어든 상태다.
국내 정유사들이 미래 먹거리로 액침 냉각을 선택한 것은 안정적인 수익원 확보를 위해서다. 울산, 여수 등에 대규모 정제 설비를 갖춘 정유사들은 매일 중동 등에서 들여온 수십만배럴(Bbl·1배럴은 약 158.9리터)의 원유를 정제해 각종 석유 제품을 만들어 국내에 유통하거나 수출한다. 그러나 세계적인 탈탄소화 추세에 따라 약 10년 전부터 설비 확장 투자는 멈추고 공정 고도화 투자만 진행하고 있다.
정유사의 수익성 지표인 정제 마진은 휘발유, 경유 등 정제된 연료와 석유화학 제품 가격에서 생산비용을 뺀 금액이다. 통상 1배럴당 4~5달러를 손익분기점으로 보는데, 올해 3분기엔 1배럴당 3.6달러를 기록하는 등 수익성이 악화했다. 업계 관계자는 “정제마진은 지정학적 분쟁 등 대외 요소들에 큰 영향을 받는데, 지난 몇 년간 국제 분쟁이 심화하며 유가 변동이 커졌고 전방 수요도 둔화해 안정적인 수익을 담보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액침 냉각유를 포함한 윤활유 사업은 비교적 꾸준한 수요를 바탕으로 정유사에 일정한 규모의 이익을 가져다주고 있다. 특히 액침 냉각은 데이터센터와 배터리에 모두 사용 가능한 기술로 향후 급격한 수요 증가가 예상된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인 마켓앤마켓리서치(Market&Market research)에 따르면, 액침 냉각 시장 규모는 올해 5000억원에서 2040년 약 42조원 수준으로 연평균 약 18.5%씩 성장할 것으로 전망됐다.
액침 냉각 기술은 기존 공랭식 대비 데이터센터 냉각 비용을 95% 절감할 수 있다고 알려졌다. 업계 관계자는 “리튬이온배터리를 액침 냉각하면 하나의 배터리셀에 문제가 생겨 불이 붙어도 산소에 노출되지 않아 화재가 인근 셀로 전이되지 않는 효과가 있다. 액침 냉각은 향후 전기차에도 활용되는 기술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