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아연(010130)의 경영권을 탈취하려는 MBK파트너스·영풍(000670) 연합군의 시도가 4개월 가까이 이어지는 가운데 재계에서는 우리나라 실정에 맞게 실효성 있는 경영권 방어 수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사모펀드(PEF)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대기업도 적대적 인수합병(M&A)을 당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진 것이다.
금융감독원은 지난 12일 기관 전용 사모펀드 운용사 12곳의 대표이사를 불러 간담회를 열었다. 이복현 금감원장이 ‘신(新)금산분리’를 언급한 후 사모펀드의 책임성 강화와 건전한 역할을 주문하기 위한 자리였다. 이 원장이 언급한 ‘신금산분리’는 통상 5년 정도 투자하고 자금을 회수하는 사모펀드가 장기적인 관점에서 경영해야 하는 기업을 인수하는 게 주주가치 제고에 도움이 되는지 고민이 필요하다는 내용이다.
실제 사모펀드의 M&A 시도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반응이 더 많다. 여론조사 전문업체 리얼미터가 지난 18~19일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4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서 ±3.1%포인트)를 진행한 결과, 금융자본의 산업자본 지배를 두고 부작용을 우려하는 응답(52.1%)이 그렇지 않다(23.2%)는 답변보다 배 이상 많았다. 사모펀드의 M&A 시도에 대한 대응 방안을 묻는 말에는 규제 강화(45%)가 가장 많았고, 경영권 방어 수단 강화(33.6%)가 뒤를 이었다.
재계에서도 경영권 방어 수단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현재 유가증권시장 정관에 있는 경영권 방어 수단으로는 ▲초다수결의제 ▲황금낙하산 ▲이사 자격 제한 ▲시차 임기제 등이 있다. 그러나 초다수결의제는 주주 평등 원칙에 어긋나 상법상 허용되지 않는다. 황금낙하산 제도는 대주주, 기존 경영진의 사익 추구를 위한 제도로 비판받고 있다.
이에 차등 의결권, 포이즌필(신주인수선택권) 등이 대안으로 거론된다. 차등 의결권은 주식 종류에 따라 의결권 비율을 다르게 부여하는 것을 의미한다. 포이즌필은 기존 주주들에 저렴한 가격에 신주를 매입할 권리를 부여해 적대적 M&A를 중단하도록 만드는 경영권 방어 행위다. 우리나라와 달리 미국, 일본, 프랑스 등에서는 포이즌필과 차등의결권을 모두 도입해 기업의 경영권 방어 수단을 인정하고 있다.
한 재계 관계자는 “안정적으로 경영권이 확보돼야 기업도 안정적인 성장을 도모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