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동해 심해 가스전 사업인 이른바 ‘대왕고래 프로젝트’의 예산을 삭감하면서 사업을 진행하는 한국석유공사가 자금 조달 방안을 고심하고 있다. 석유공사는 내년도 사업의 우선순위를 바꿔 대왕고래 시추 자금부터 마련한다는 구상이다. 공사채를 발행하면 수년째 자본 잠식 상태인 석유공사의 재무 부담이 더 커질 전망이다.
19일 업계에 따르면 동해에 가스·석유가 묻혀 있는지 확인할 시추선인 웨스트카펠라호는 이날 첫 탐사 시추를 위한 굴착 작업에 나설 계획이다. 웨스트카펠라호는 지난 17일 포항에서 동쪽으로 약 50㎞ 떨어진 대왕고래 유망구조의 시추 예정 해역에 도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왕고래 유망구조는 동해 8광구와 6-1광구 북부에 걸쳐 동서 방향으로 길게 형성됐다.
석유공사는 해저 1㎞ 아래에서 암석 시료를 채취해 석유·가스 부존 여부를 판단하기로 했다. 드릴 작업으로 시료를 확보하는 데 2개월 정도 걸릴 것으로 보고 있다. 이후 시료 분석 등을 거치면 내년 상반기에는 첫 탐사 시추 결과가 나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문제는 비용이다. 대왕고래 프로젝트의 1차공 탐사 시추 사업에 들어가는 자금은 약 1000억원이다. 정부 예산으로 절반을 확보하고, 나머지는 석유공사가 충당할 계획이었는데 정부 예산의 98%가 삭감됐다.
정부 예산 지원이 막히면서 석유공사는 1차공 시추 비용을 전액 자체 부담하기로 했다. 시추 비용은 월별로 지급하는데, 이달 시추 작업을 시작하면 1월부터 매달 비용을 지급할 예정이다. 석유공사는 연내 이사회를 열고 대왕고래 프로젝트를 최우선으로 진행할 수 있도록 사업별 예산 배정, 순위를 조정한다는 구상이다. 석유공사의 한 해 예산은 5조원 정도인데, 뒤로 밀린 다른 사업은 진행이 어려울 수 있다. 석유공사는 석유 개발, 석유 비축, 유통구조 개선, 신에너지 사업 등을 영위한다.
대왕고래 프로젝트 사업비는 5년간 5761억원으로 책정됐다. 1차공 탐사 시추에 이어 추가 시추로 사업비가 늘어나면 석유공사는 공사채를 발행할 가능성이 크다. 공공기관인 석유공사가 발행하는 공사채는 정부 보증하는 채권으로 가장 높은 신용 등급인 AAA를 인정받는다.
조달 수요가 늘어나면 지난 2022년 한국전력(015760) 채권처럼 채권시장 수급을 교란할 가능성이 있다. 당시 탈원전 여파로 대규모 적자가 누적된 한국전력이 운영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27조원이 넘는 한전채를 순발행하자 시중 자금 쏠림 현상이 나타났다. AAA 등급인 한전채가 많이 발행되자 신용등급이 낮은 기업은 더 높은 자금 조달 금리를 부담해야 했다.
석유공사가 채권을 발행하면 2020년부터 자본 잠식에 빠진 재무구조가 더 취약해질 수 있다. 지난해 말 기준 석유공사 총차입금은 15조4000억원으로 차입금 의존도가 84.6%에 달한다. 연이자만 5000억원 정도다.
석유공사는 해외 투자 유치도 고려하고 있다. 공사 관계자는 “1차 시추 결과가 긍정적으로 나와야 방향성이 잡힐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