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가 내수 부진, 통상 환경 악화에 탄핵 정국 여파라는 겹악재를 마주했다. 환율, 주식 등 금융 시장 리스크가 부각되는 가운데 입법 처리 부담이 심화하고 있다. 정부의 외교 행정 기능이 마비되면서 해외 사업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재계에 따르면 오는 17일 우원식 국회의장 초청으로 국회에서 경제단체 간담회가 열린다.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윤진식 한국무역협회 회장,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등이 참석해 기업의 애로 사항을 건의하고 입법 지원을 요청한다는 방침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한 3일 밤 정부서울청사에서 바라본 광화문 도심. /뉴스1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가운데 재계는 여야 이견이 없는 이른바 ‘무쟁점 법안’ 입법을 촉구하고 나섰다. 대한상의가 지난 10월 국회에 건의한 경제 분야 입법 과제 23개 중 여야가 공통으로 발의했지만, 계류된 법안은 총 12개다. 반도체 특별법, 인공지능(AI) 특별법, 첨단 전략산업기금법이 대표적이다.

반(反)시장, 반기업법 강행 처리 여부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대통령의 거부권(재의요구권)이 사실상 무력화된 만큼 야당 주도로 기업 경영 활동을 제약하는 법안을 밀어붙일 가능성이 제기되면서다. 재계는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기존 회사에서 회사 및 주주로 확대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상법개정안 등을 주시하고 있다.

기업들은 비상계엄 사태 이후 시장 불안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외환이나 주식 시장 변동성이 심화하면서 재무 상황에 악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원·달러 환율 상승은 중장기적으로 원자재 수입 비용 증가, 해외 투자 부담으로 이어질 수 있고 대외 신인도 하락으로 수출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다.

내년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을 앞두고 강달러(달러 강세) 흐름을 나타내던 원·달러 환율은 현재 1400원대 초중반에서 움직이고 있다. 지난달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되고 환율은 2년여 만에 최고치인 1410원대를 넘어섰고, 비상계엄 직후에는 1440원에 근접하며 2년 2개월 만에 최고치를 새로 썼다.

탄핵 여파로 경제 및 통상 외교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가능성도 점쳐진다. 내년 1월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이 예정된 가운데, 미국에 대한 통상 협상력이 약화하면서 관세 부과, 인플레이션감축법(IRA) 폐지 등에 대한 우려는 한동안 지속될 전망이다.

삼성, SK(034730), 현대차(005380) 등 주요 기업들은 내년 상반기까지는 보수적인 경영 전략을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 3일 한국경제인협회에 따르면 매출액 500대 기업 중 내년 투자 계획을 아직 수립하지 못한 기업은 56.6%, 투자 계획이 없는 기업은 11.4%로 집계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