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차기 행정부의 에너지 분야 내각을 친(親)화석연료주의자로 구성하면서 국내 정유업계의 셈법이 복잡해지고 있다. 미국이 원유 채굴을 확대해 생산량이 늘면 단기적으로 국제유가가 내려가 일시적으로 수익성이 악화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석유 수요가 늘어나면 정제마진(석유제품 가격에서 원유 가격과 정제 비용을 뺀 값) 상승효과를 누릴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트럼프 당선인은 지난 15일(현지시각) 더그 버검 노스다코타 주지사가 내무부 장관 겸 국가에너지 의장을 맡는다고 밝혔다. 이어 16일에는 크리스 라이트 리버티에너지 최고경영자(CEO) 겸 이사회 의장을 에너지부 장관 겸 국가에너지회의 위원으로 지명했다. 환경보호청(EPA) 청장으로는 리 젤딘 전 하원 의원을 지명했다.

일러스트=챗GPT·달리3

세 사람은 모두 화석연료에 우호적인 인물로 꼽힌다. 라이트 에너지부 장관 내정자는 미국 콜로라도 덴버에 본사를 둔 석유회사 리버티에너지의 최고경영자(CEO) 출신이다. 버검 국가에너지 의장 내정자가 주지사로 있던 노스다코타는 미국 내에서 석유 매장량·생산량이 세 번째로 많은 주(州)다. 젤딘 환경보호청장 내정자는 과거 하원의원 임기 동안 국립 야생동물 보호구역에서 석유·가스 시추를 막는 법안을 비롯한 각종 환경친화적 법안에 반대한 이력이 있다.

이번 에너지 관련 내각 인사는 예견된 결과라는 평가다. 앞서 삼정KPMG는 보고서를 통해 “트럼프가 재선에 성공하면 기존 규제를 강화했던 화석연료 생산을 확대하고, 파리 기후협약 재탈퇴와 함께 기후변화 대응에 소극적인 입장을 제시할 것”이라며 “석유·가스 시추 등 에너지 생산 규제 철폐 및 인허가 절차 간소화를 통한 전통 화석연료와 원자력 등 미국 내 모든 에너지 생산 증대를 도모할 것”이라고 전망한 바 있다.

국내 정유사들은 트럼프 당선인의 에너지 정책이 업계에 미칠 영향에 촉각을 세우고 있다. 단기적으로는 수익성이 악화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트럼프 정부가 물가 안정 등을 이유로 미국 내 원유 생산을 늘리면 국제 유가가 하락할 유인이 있기 때문이다. 정유사들은 통상적으로 원유 구매부터 정제 후 판매까지 2~3개월이 걸리는데, 과거에 산 원유의 가격이 내려가면 재고자산평가손실이 발생한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친(親)석유 정책에 따른 제품 수요 증가는 긍정적 요인이라는 평가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하향 안정화된 유가에 꾸준한 수요가 더해지면 정제마진이 상승해 수익성이 높아질 수 있다”고 말했다. 국내 정유사들은 통상 정제마진 손익 분기점을 배럴당 4~5달러로 보는데, 올해 3분기 평균 정제마진은 3.6달러 수준이었다.

국내 정유사들은 원유를 정제한 석유제품 가운데 약 60%를 세계 곳곳에 수출하고 있다. 대한석유협회에 따르면 올해 1∼3분기 석유제품 수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 4.4% 증가한 351억5000만달러(약 49조원)를 기록하며 국가 주요 수출 품목 중 반도체, 자동차에 이어 3위를 차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