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풍·MBK파트너스와 경영권 분쟁을 벌이고 있는 최윤범 고려아연(010130) 회장이 소수주주의 과반 결의제(MOM·Majority of Minority Voting) 도입을 추진하겠다고 밝히면서 기관 투자자 및 소액주주의 마음 잡기에 나섰다. 지배주주에만 이득이 되는 결정을 내릴 수 없도록 견제장치를 만든다는 구상이다. 다만 우리나라 상법에 지배주주 견제 장치가 이미 존재하지만, 잘 쓰이지 않는 현실을 고려할 때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지는 미지수다.
최 회장은 지난 13일 기자회견에서 이사회 의장직을 내려놓고, 소액주주 권리 보호를 위해 MOM 도입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고려아연은 향후 주주총회에서 안건별로 영풍·MBK파트너스와 표 대결을 벌여야 해 소액주주, 기관 표심을 잡는 게 중요해진 상황이다.
MOM은 합병·분할합병·포괄적 주식교환 등 지배주주와 일반주주 간 이해충돌의 소지가 있는 안건에서 지배주주의 의결권 행사를 제한하는 제도다. 예를 들어 주주인 이사가 자신의 보수를 정하는 안건이나 오너 일가 구성원의 개인 자산을 회사에 넘기는 안건이 올라오면 이해 관계인은 의결권을 행사하지 못한다.
MOM은 한국에선 생소하지만, 미국에선 도입돼 있다. 모든 안건이 MOM을 거치진 않고 의사결정의 정당성을 확보하고 이사회 면책을 위해 진행하는 게 일반적이다. MOM을 통과한 안건은 차후 문제가 생기더라도 이사회가 배임 여부, 이해상충 등의 책임 소지에서 자유로워진다.
우리나라도 비슷한 지배주주 견제 장치를 두고 있다. 상법 제368조 제3항은 ‘총회의 결의에 관하여 특별한 이해관계가 있는 자는 의결권을 행사하지 못한다’고 돼 있다. 그러나 엄격하게 적용되는 건 아니다. 구체적으로 어느 정도까지를 ‘특별한 이해관계’로 봐야 하는지를 놓고 법조계에서도 이견이 있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상법에 지배주주 견제 장치가 있는데, 선례가 별로 없다. 주주들이 소송을 걸고 판례가 축적되면 따져볼 만한 사안이 많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고려아연이 MOM을 도입하면 영풍·MBK파트너스의 의결권 행사를 막을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안건에 따라 고려아연 특별 이해관계인에 영풍·MBK파트너스를 포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엔 양측 모두 의결권을 행사할 수 없게 된다. 국민연금 등 기관투자자의 마음을 얻으려는 의도도 있다. 국민연금은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를 뜻하는 Environmental, Social, Governance) 평가를 통해 소액주주 보호, 지배구조 개선 등을 실시한 기업에 우호적인 점수를 매긴다.
재계는 MOM 도입을 부담스러워하는 분위기다. 행동주의 펀드, 시민단체 등에서 소수주주 권리 강화를 위해 MOM 도입을 주장한 이력이 많기 때문이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미국엔 상법상 지배주주 견제 장치가 없어서 MOM을 도입한 것”이라며 “우리나라와는 상황이 다르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