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선에서 승리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안티(Anti·反)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기조에도 국내 산업계의 ESG 관련 투자는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기업들이 고려하는 ESG 기준은 유럽 중심인 데다 미국에서도 양당이 모두 지지하는 탄소 규제 도입이 예고됐기 때문이다.

트럼프 당선인이 선거 운동 기간에 발표한 사전공약 성격의 ‘어젠다 47′은 화석연료 생산을 늘려 전통 에너지 산업을 활성화한다는 게 핵심이다. 트럼프 당선인은 바이든 행정부가 중요하게 여기는 기후변화에 부정적인 입장으로, 그린워싱(Greenwashing·친환경적인 척하는 행위), 낮은 수익률 등을 근거로 ESG 투자를 회의적으로 보고 있다.

일러스트=챗GPT

국내 산업계는 향후 정책 기조에 따라 속도 조절이 있을 수는 있지만, 탄소 배출량 감축 활동, 재생에너지 사용 및 사업 확대, 탄소배출권 프로젝트 개발, 전담 인프라 확충, 외부 컨설팅 등 ESG 투자는 이어간다는 방침이다. 트럼프 당선인은 탄소 감축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지만, 유럽연합(EU)의 규제는 점점 강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SK그룹은 계열사별로 탄소 감축을 위해 모빌리티용 수소 연료전지 기술(플러그파워), 전기차 충전 사업(에버차지), 소형모듈원자로기술(테라파워) 등에 투자했다. SKC(011790)는 폐플라스틱 열분해 기술, SK E&S는 액화수소 드론 등 개발에 뛰어든 것도 같은 이유다.

현대차(005380)그룹은 국내외 주요 사업장에서 쓰는 전력 일부 또는 전부를 재생에너지로 조달하고 있다. 인도, 인도네시아 생산법인, 국내 공장과 연구시설에서는 직접 태양광 발전시설을 운영하고 있다. 사업장의 에너지 효율화를 위해 폐열 회수 시스템, LED 조명 교체, 초절전 회로 구축 등 설비 투자도 늘리는 추세다.

포스코 포항제철소 제강공장에서 장입 래들에 담긴 쇳물을 컨버터에 붓고 있다. /포스코 제공

EU는 내년부터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등 관련 법안을 도입한다. CBAM은 EU가 역외 수출 기업의 제품 생산 과정에서 발생한 탄소 배출량만큼 세금을 부과하는 제도다. 철강·알루미늄·시멘트·비료·수소·전력 등 6개 품목이 대상이고, 석유화학, 원유정제 등으로 품목 수를 늘려간다는 계획이다.

지난해 한국의 대(對)EU 수출액은 약 683억달러(약 95조4560억원)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작년 연간 수출액 6327억달러(약 884조1349억원)의 10.8%를 차지했다. 주요 수출 품목은 자동차, 자동차 부품, 기계, 배터리 등으로 생산 과정에서 까다로운 탄소 규제가 적용되는 제품이 대부분이다.

미국이 CBAM을 의식해 도입을 준비 중인 청정경쟁법(CCA) 역시 기업들에는 부담이다. CCA는 철강·시멘트 등 원자재에 온실가스 1톤(t)당 55달러의 탄소세를 부과하는 법안으로 민주당뿐 아니라 공화당도 지지하고 있다.

한국경제인협회는 CCA가 도입되면 2025년부터 향후 10년간 국내 기업은 총 2조7000억원의 탄소세를 부담할 것으로 예상했다. 원자재와 완제품에 각각 1조8000억원, 9000억원 비용이 발생하는데, 업종별로는 석유 및 석탄(1조1000억원), 화학제조업(6000억원)이 가장 큰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