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24일부터 산업용 전기요금을 평균 9.7% 인상하기로 하면서 기업의 부담이 더 커지게 됐다. 특히 전체 산업용 전력사용량의 약 절반을 차지하는 대기업의 전기요금은 10.2% 인상돼 한국전력(015760)공사의 203조원 부채 탕감을 위해 대기업을 희생시킨다는 비판이 나온다. 기업들은 경기둔화, 3고(고물가·고금리·고환율)로 비용 부담이 커진 상황에서 전기요금 인상이라는 부담까지 안게 됐다.

정부는 가정용 전기요금은 동결하고 산업용 전기요금만 평균 9.7%를 인상한다고 23일 밝혔다. 대기업이 주로 사용하는 산업용(을·계약전력 300㎾ 이상) 요금은 10.2%, 중소기업 위주인 산업용(갑·300㎾미만) 요금은 5.2% 인상한다. 반면, 가정용 전기요금은 지난해 5월 인상된 이후 1년 4개월째 동결했다.

이번 전기요금 조정방안이 적용되면 대기업 전기요금은 ㎾h(킬로와트시)당 16.9원 오른다. 역대 최대 인상 폭이다. 대기업 전기요금은 2022년 10월 ㎾h당 16.6원 오른데 이어 지난해 11월에도 10.6원 올랐다.

우리나라 제철소 용광로에서 작업중인 한 노동자 <자료 사진> 2018.1.1/뉴스1 ⓒ News1 서순규 기자

재계 관계자는 “한전의 부채 해소를 위해 전기요금 현실화가 필요한 상황”이라며 “정부가 지지율과 연결되는 가정용 요금은 동결하면서 전기를 많이 쓰는 산업용 전기요금만 인상해 부채를 줄이겠다는 전략을 사용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번 전기요금 인상으로 20대 기업이 내야 할 전기요금은 연간 1조2700억원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곽상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한국전력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삼성전자(005930)·SK하이닉스(000660) 등 20대 법인이 사용한 전력은 8만5009GWh였으며, 납부한 전기요금은 12조4430억원이었다.

대표적으로 전력소비가 많은 업종은 반도체, 철강, 화학, 정유 등이다. 국내 기업 중 전력사용량 1위와 2위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이번 조치로 연간 전기요금이 각각 3000억원, 1000억원 이상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철강업계는 철광석·원료탄 등 원자재 가격이 오른 가운데 전기료 인상까지 겹쳐 부담이 커지게 됐다. 특히 현대제철(004020)동국제강(460860) 등 전기로 사용 비중이 높은 업체들은 원가 부담이 늘어나 수익성이 악화된다.

삼성전자 평택 반도체 공장.

최근 기업들은 경기둔화와 고물가, 고환율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원·달러 환율은 1381원까지 치솟으면서 원자재를 수입해 가공하는 중간재 기업의 원가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

최근엔 물류비 부담도 커졌다. 예멘 반군이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이후 홍해를 지나는 상선을 공격하면서 선박들이 수에즈운하 항로 대신 남아프리카 희망봉을 돌아가면서 해상운임이 뛰었기 때문이다. 지난 18일 기준 상하이컨테이너운임지수(SCFI)는 2062.15로 집계됐다. 지난 8월 고점(3097.63) 대비 낮아졌지만, 연초(1061.14)와 비교하면 여전히 2배 이상 높다.

전기 계량기의 모습 /뉴스1

이번 산업용 전기요금 인상으로 제품 원가가 오르면 결국 소비자에 일부 부담이 전가된다. 기업이 원가 상승을 다 감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지난달 302개 제조기업을 대상으로 ‘에너지비용 부담 실태조사’를 실시한 결과, 중소기업 10곳 중 9곳이 “전기요금이 부담된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전의 부채 상황을 고려하면 결국 주택용 전기요금을 현실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기요금은 2022년 이후 총 7차례에 걸쳐 올랐지만, 여전히 한전의 부채를 해소하기엔 부족한 상황이다. 지난 6월말 기준 한전의 총부채는 202조9900억원으로, 작년 말보다 4400억원가량 늘었다. 하루 이자 비용만 122억원이다.

에너지 업계 관계자는 “인공지능(AI), 반도체, 데이터센터 등 첨단산업의 발전은 폭발적인 전기수요를 예고한다”며 “국내 송배전망 투자가 시급한 상황이라 한전의 부채를 줄일 방안을 빨리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