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수십년간 중국 기업이 장악한 국내 에스컬레이터 시장에 국산화 바람이 불고 있다. 현대엘리베이(017800)터와 중소기업은 붕괴한 생산기반을 재건하기 위해 부품과 완제품 개발에 나서기로 했다.

30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 에스컬레이터 시장은 한선엘리베이터 등 중국 업체가 장악하고 있다. 에스컬레이터 생산이나 유지·보수 사업을 하는 국내 중소기업이 부품 제작을 주문하면, 중국 업체가 부품을 제작해 한국으로 수출한다. 국내 중소기업은 이를 받아 완제품을 만들어 설치한다.

서울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에 설치된 에스컬레이터가 유지·보수 공사를 하고 있다./조선DB

지하철 역사 등에 설치된 에스컬레이터는 대부분 중국산이다. 서울교통공사가 설치한 에스컬레이터 1854대, 한국철도공사(코레일)의 약 2700대는 국내 중소기업이 주문자위탁생산(ODM)방식으로 중국산 부품을 받아 조립한 제품이다. 지하철에 있는 국내 기업의 에스컬레이터는 신분당선 신사역(12개), 강남역(25개), 정자역(17개) 등 9곳 약 200개에 불과하다. 모두 현대엘리베이터 제품이다.

현대엘리베이터의 에스컬레이터에는 국내 기술력이 담겼지만 중국에서 생산된다. 2014년 에스컬레이터의 국내 생산기반을 자사 중국법인으로 이전했기 때문이다. 당시 중국산 제품이 대거 유입되면서 가격 경쟁력에서 밀린 여파였다. 또 공공기업의 발주 방식도 영향을 줬다. 공공부문의 에스컬레이터 사업은 엘리베이터와 함께 통합 발주되는데, 현행법상 엘리베이터는 대기업이 참여할 수 없다. 현대엘리베이터가 공기업의 에스컬레이터 사업을 수주하지 못하는 이유다.

중국산 에스컬레이터가 늘면서 유지·보수 사업은 잘 되지 않고 있다. 한 중소기업 관계자는 “부품 요청을 했는데 한 달이 되도록 입고되지 않은 부품도 있었다”며 “중국으로부터 받은 부품의 품질도 좋지 않았다”고 말했다. 중소기업은 생산 부지 확보, 연구개발(R&D) 여력이 부족해 국산화를 아예 시도조차 할 수 없는 구조다.

지난 25일 경남 거창 본사에서 K에스컬레이터 출범 기념행사가 열렸다. 왼쪽 다섯 번째부터 오른쪽으로 김용균 행정안전부 안전예방정책실장, 신성범 국회의원, 구인모 거창군수, 조재천 현대엘리베이터 대표이사./현대엘리베이터 제공

현대엘리베이터는 자회사 현대엘리베이터서비스를 통해 에스컬레이터 국산화를 시도하고 있다. 현대엘리베이터서비스와 중소기업 5곳은 에스컬레이터 생산법인 ‘K에스컬레이터’를 만들었다. 현대엘리베이터는 국산 에스컬레이터가 중국산보다 다소 비싸지만, 품질에서는 앞서기 때문에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본다.

국내 에스컬레이터 시장은 노후화된 제품 교체, 수도권 광역 전철망 구축, 지방·서울지하철 환승 구간 증·개축 등 수요가 계속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정부도 에스컬레이터 제품 국산화의 필요성을 느껴온 것으로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