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풍(000670)그룹을 공동 창업한 최씨 일가와 장씨 일가가 알짜 계열사 고려아연(010130)의 경영권을 놓고 다투는 가운데, 명분 싸움도 치열하게 펼치고 있다. 적대적 M&A로 보느냐 아니냐에 따라 사모펀드 운용사(PEF)인 MBK파트너스의 고려아연 인수 당위성이 갈리기 때문이다.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측은 장씨 일가가 MBK와 함께 적대적 인수합병(M&A)을 추진한다고 말했다. 반면 장형진 영풍 고문 측은 우호적 M&A라고 반박했다. 증권업계에서는 기존 경영진과 합의 없이 주식을 사들이는 건 절차상 적대적 M&A에 해당한다고 보고 있다.

김병주 MBK파트너스 회장(왼쪽),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각사 제공

김광일 MBK파트너스 부회장은 지난 19일 고려아연 경영권 인수 관련 기자회견에서 이번 공개매수가 적대적 M&A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고려아연의 1대 주주인 영풍 측과 공동 의결권 행사 계약을 맺고 공개매수를 진행하기 때문에 일반적인 바이아웃(buyout·지배권을 행사할 수 있는 만큼의 지분을 사들이는 것)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MBK는 고려아연 주식을 주당 66만원에 최소 144만5036주(발행주식 총수의 약 6.98%), 최대 302만4881주(14.61%) 공개매수할 예정이다.

바이아웃이나 적대적 M&A 모두 기업 주식을 산 뒤 일정 기간 후 매각하는 절차는 같다. MBK가 고려아연 공개매수에 활용하는 바이아웃 펀드 역시 일정 기간 후 자금을 회수해 투자자에게 돌려줘야 한다.

그러나 인수 당위성은 하늘과 땅 차이다. MBK는 고려아연의 지배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전문경영인으로 개입했다고 설명한다. 우호적 M&A에서 사모펀드는 기업을 잘 운영하기 위해 대주주와 협력하는 주체가 된다. 공개매수 성공 후 전문경영인인 MBK가 대주주인 영풍과 함께 고려아연의 성장을 도모하는 그림이다.

반면 최윤범 회장 측은 이번 공개매수를 적대적 M&A로 규정했다. 적대적 M&A로 보면 멀쩡한 기업의 경영권을 사모펀드가 빼앗는 게 된다. 적대적 M&A는 통상 기업의 중장기 경영 목표를 무시하고 단기 시세차익을 추구한다.

전문가들은 이번 공개매수가 절차상 적대적 M&A에 해당한다고 본다. 적대적 M&A를 가늠하는 기준은 경영진, 이사회와 협의 없이 일반 주주를 직접 상대했느냐 여부다. 경영진, 이사회는 주주총회에서 주주의 지지로 선임되며, 법적으로 회사를 대표하는 자격을 갖는다. 경영진, 이사회의 승인을 얻지 않고 향후 경영에 대한 충분한 상의 없이 진행하는 공개매수는 ‘적대적’으로 정의한다.

이번 공개매수는 기존 경영진과 상의 없이 기습적으로 이뤄졌다. 고려아연의 대주주는 영풍이지만, 장형진 영풍 고문은 영풍의 의사결정기구인 이사회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 영풍에서 경영상 권한이 없는 장 고문이 나선 점도 규정에 어긋나는 셈이다.

유효상 유니콘경영경제연구원 원장은 “작년부터 우리나라 자본시장에서 공개매수가 크게 늘었는데, 목적에 M&A라고 써둔 곳은 모두 적대적으로 진행됐다”며 “분쟁 상황이 계속되면 건실한 기업도 경영에 전념하지 못해 사업 기회를 잃게 되고 주주와 임직원, 협력업체 등 이해관계자들이 피해를 보게 된다”고 우려했다.

우리나라에서 공개매수가 적대적 M&A에 활용된 사례로는 2020년 행동주의 펀드인 KCGI, 반도건설, 조현아 전 대한항공(003490) 부사장 등 3자 연합이 한진칼(180640) 경영권을 인수하려던 사례가 있다. MBK는 형제 간 경영권 다툼이 있었던 한국앤컴퍼니(000240) 주식 공개매수도 시도했었다. 모두 경영권 확보에는 실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