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조선업계와 철강업계가 하반기 후판(두께 6㎜ 이상의 두꺼운 철판) 공급가격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후판은 수천억원짜리 선박 제조 원가의 약 20%를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크다. 이 때문에 후판 가격은 조선사 수익과 직결된다.

조선업계는 철광석 가격이 하락하는 추세라 하반기 후판 공급 가격이 상반기(톤(t)당 90만원 초반)보다 낮아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후판의 원재료인 중국산 철광석의 현물 가격은 8월 기준 t당 98달러(약 13만원)로, 지난해 같은 기간(120달러)보다 저렴하다.

포스코 포항제철소 3후판공장에서 후판 제품이 생산되고 있다. / 포스코 제공

지난 2021년 철광석 가격이 t당 160달러로 급등하자 국내 조선사는 적자 폭이 커졌다. 당시 HD한국조선해양(009540)한화오션(042660)(당시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010140)은 공사손실충당금(미래에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는 손실을 미리 잡아 놓은 것)으로 각각 8960억원, 1조3000억원, 3720억원을 반영했다. 그해 조선 3사의 영업손실률은 HD한국조선해양 8.9%, 한화오션 19.8%, 삼성중공업 39.1%였다.

조선업계는 중국산 후판 가격이 국산보다 20~30% 저렴하다는 걸 내세우고 있다. 중국 조선사가 사용하는 현지 후판 가격은 t당 70만원대로, 올 상반기 국내 조선·철강업계가 협의한 가격보다 t당 약 20만원 싸다. 조선업계는 가격 협상이 원만하게 진행되지 않으면 중국산 후판 사용 비중을 늘리겠다는 방침이다.

한화오션 조선소에서 한 근로자가 선박 외장 그라인딩 작업을 하고 있다. / 한화오션 제공

철강업계는 상반기에 후판 공급 가격을 낮췄지만, 산업용 전기요금이 올랐고 중국산 저가 공세·전방 산업 부진 등으로 실적이 악화해 더 이상의 공급가 하락은 어렵다는 입장이다. 철강업계는 과거 조선업계가 수주난을 겪을 때, 후판 가격을 낮춰가면서 조선업계를 도운 사례를 언급하고 있다. 수주 호황기에 접어든 조선업계가 이번에는 철강업계를 도울 차례라는 것이다.

중국산 철강재의 품질과 공급 안정성도 문제 삼고 있다. 가격이 저렴한 대신 품질이 떨어지는 중국산 후판으로 선박을 만들면 장기적으로 경쟁력이 약해지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국내 철강사는 정부 정책의 영향을 많이 받는 중국과 달리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다는 점도 내세운다.

양측의 입장이 팽팽해 후판 공급가격 협상이 길어지고 있다. 상반기에도 협의가 잘 이뤄지지 않아 당초 5월에 마무리됐어야 할 공급가 협상이 7월 말까지 늘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