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지난 상반기에 중국산 원료를 활용해 한국에서 생산한 알루미늄에 반덤핑 관세를 부과했다. 중국산 제품은 다른 나라에서 가공하더라도 미국으로 수출할 수 없다는 원칙을 적용한 것이다. 업계는 향후 중국산 열연 강판을 국내에서 가공해 수출하는 제품에도 미국이 관세를 부과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지난달 미국은 멕시코를 통해 우회 수출되는 중국산 철강에 25%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11일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코트라)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미국의 수입 규제는 55건으로 나타났다. 품목별로는 철강·금속이 40건을 차지해 전체의 72.7%를 기록했다. 이 외에 플라스틱·고무 4건, 섬유·의류 4건, 화학 4건, 전기·전자 2건, 기타 1건 등이다.

중국 철강사 바오강이 생산한 열연 코일. / 바오강 제공

철강·금속 규제 중에는 중국산 알루미늄 포일·시트를 가져다 한국에서 완제품으로 만들어 수출한 알루미늄 품목 2건이 포함돼 있다. 알루미늄은 생산량 기준으로 국내에서 철 다음으로 중요한 금속으로 꼽힌다.

최근 중국이 철강을 저가에 밀어내고 있어 몇몇 국내 철강 업체는 중국에서 열연 강판을 수입해 가공한 뒤 판매한다. 열연 강판은 제철소에서 쇳물을 얇게 가공한 반제품 형태의 강판이다. 열연 강판은 선박 건조용 후판, 자동차 제조용 강판 등으로 가공할 수 있다. 열연 강판은 용광로가 있어야 제조할 수 있어 국내에선 포스코와 현대제철(004020) 두 곳만 생산한다. 동국제강(460860)세아제강(306200) 등은 이 열연 강판을 가져다 재압연·가공을 거쳐 제품을 생산하는 후공정 업체로 분류된다.

포스코 광양제철소 용광로. / 포스코 제공

한국거래소(KRX)에 따르면 지난 5일 기준 수입 열연 강판 유통가는 톤(t)당 77만원으로, 국내 유통가인 80만원보다 3만원 저렴하다.

후공정 업체들은 가격이 싼 중국산 열연 강판의 비중을 높여 왔다. 그러나 중국산 원재료의 우회 수출에 민감한 미국이 향후 이를 문제 삼을 수 있다. 알루미늄처럼 중국산 열연 강판을 재가공해 만든 한국산 철강 제품에 관세를 물릴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달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는 멕시코를 거쳐 미국으로 들어오는 중국산 철강과 알루미늄에 25%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멕시코는 미국과의 무역협정으로 그간 관세를 적용받지 않았는데, 중국이 이를 이용해 우회 수출을 한 데 따른 것이다.

동국제강 형강·후판 제품. / 동국제강 제공

올해 11월로 예정된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되면 미국의 보호무역 기조는 더 강화될 가능성이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대통령 재직 시절인 2018년 중국산 제품에 대한 평균 관세율을 25%로 올려 중국과의 무역 전쟁을 시작했다. 당시 정책은 현재 바이든 행정부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트럼프 전 대통령은 평균 12%인 중국산 제품에 대한 관세율을 당선 이후 60% 이상으로 올리겠다고 언급했다”며 “이 경우 중국의 우회 수출 통로로 여겨지는 한국산 철강에도 중국산 제품에 준하는 관세가 매겨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